핀스트라이프의 무게를 견딘 29년의 비즈니스
브라이언 캐시먼의 서사는 화려한 스타플레이어의 탄생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1986년, 24세의 나이로 뉴욕 양키스에 인턴으로 입사했을 때 그가 마주한 것은 낭만적인 야구가 아닌, '조지 스타인브레너'라는 폭군이 지배하는 혹독한 비즈니스 정글이었는데요. 그는 자신이 보좌하던 단장들이 보스의 호통 한 마디로 해고되는 제국의 생리를 몸소 체험했고, 1998년 마침내 31세라는 최연소의 나이로 단장직에 오릅니다.
하지만 그 자리는 명예로운 자리라기보다는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단두대와 같았는데요. 보스는 첫 17년 동안 17명의 감독을 갈아치운 전적이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캐시먼은 취임 직후부터 보스의 광기 어린 폭주를 온몸으로 막아내며 팀의 전력을 유지해야 하는 '방패'의 숙명을 짊어지게 됩니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쭉 변함없이 말이죠. 현재 구단주인 보스의 아들들도 거의 비슷한 성향이기 때문입니다.
캐시먼이 보스를 모시며 견뎌야 했던 가장 비참한 현실은 '잠들지 않는 전화기'였습니다. 조지 스타인브레너는 성적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화를 걸어 폭언을 마구 쏘아붙였는데요. 캐시먼은 훗날 여러 인터뷰에서 "보스는 내 휴대전화 전원을 끄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으며, 새벽 3시든 4시든 벨이 울리면 즉시 응답해야 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보스는 숨 쉬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승리라는 철학을 가진 구단주였는데요. 경기의 승패에 그만큼 민감한 사람은 양키스에 없었습니다. 캐시먼은 냉철한 데이터와 시스템으로 보스의 폭주를 제어하면서 팀의 전력을 유지하려 애썼는데요. 보스가 지고 있는 경기 중에 전화를 걸어 "당장 감독과 선수들을 해고하라"라고 소리쳐도, 캐시먼은 그 서슬 퍼런 압박을 온몸으로 버티며 팀의 근간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냈습니다.
운명의 장난처럼, 조지 구단주가 규정 위반으로 영구 제명 징계를 받아 팀을 떠나 있던 시기는 캐시먼에게 천금 같은 기회가 되었는데요. 보스의 간섭이 사라진 틈을 타 그는 팀의 기초를 다시 설계했습니다. 데릭 지터, 마리아노 리베라, 앤디 페티트, 호르헤 포사다로 이어지는 이른바 ‘코어 4’는 이때 비로소 양키스의 확고한 핵심 전력으로 부상하죠.
그 결과는 1998년부터 이어진 월드시리즈 3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돈으로 승리를 산 것이 아니라, 팜에서 길러낸 가성비 좋은 핵심 인력과 캐시먼의 정교한 운영이 결합한 결과였죠. 보스가 복귀했을 때, 그는 이미 부정할 수 없는 결과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 상태였습니다.
양키스라는 이름에는 '핀스트라이프 프리미엄'이 붙는데요. 뉴욕이라는 메트로폴리스는 엄청난 시장 규모와 함께, 전국으로 중계되는 YES 네트워크의 존재는 FA 선수들에게 단순한 연봉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합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 영입은 그 정점이었는데요. 당시 메이저리그 최고의 유격수였던 에이로드는 양키스에 입성하며 데릭 지터라는 팀의 캡틴에게 숙이고 들어갔습니다. 그는 자존심을 접어두고 3루수 전향을 받아들였는데요. 이는 제국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고도의 비즈니스적 합의였습니다.
비록 숙적 보스턴에 뼈아픈 역전패를 당하는 부침도 있었지만, 캐시먼은 2009년 다시 한번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루스가 지은 집"에서 "조지가 지은 집(뉴 양키 스타디움)"으로의 성공적인 이전을 축하했습니다.
2010년 4월, 조지 스타인브레너는 자신이 직접 지은 집인 뉴 양키 스타디움 개막식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보스는 사라졌지만 캐시먼은 남았습니다. 2010년 이후 양키스는 우승 반지를 추가하지 못하며 긴 가뭄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캐시먼이 단장을 맡은 이래로 양키스는 단 한 번도 승률이 5할 밑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가장 꾸준한 팀이었죠.
뉴욕 팬들은 무식하리만큼 뜨거운 야유를 퍼부으며 "Fire Cashman"을 외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야유는 양키스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캐시먼은 기록적인 사치세를 지불하더라도 필요한 선수는 아낌없이 영입했고, 거대 계약을 안겨주었는데요. 팬들의 아우성 속에서도 팀의 가치를 탄탄하게 유지하며 제국의 선장으로서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비록 언제나 좋은 결과를 낳지는 못했지만 말이죠.
6.2024년, 다시 제국의 깃발을 꽂다
2020년대 들어 연이은 삽질로 경질 위기에 몰리기도 했었지만. 하지만 그는 2023년, 샌프란시스코 왕조의 설계자 브라이언 세이빈을 고문으로 영입하며 조직의 전문성을 보강하는 승부수를 던졌는데요. 팜 출신의 '오른손 본즈' 애런 저지가 중심을 잡고, 신구 에이스들이 마운드를 지키는 양키스 특유의 밸런스가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2024년, 마침내 15년 만에 월드시리즈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냈습니다. 누구는 그를 운이 좋다고 말하지만, 29년 동안 단 한 번의 루징 시즌 없이 제국을 이끌어온 것은 운이 아닌 캐시먼의 확고한 비즈니스적 사고였습니다.
사실 그의 연봉은 보스 아래서 그의 폭주를 막아내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견디며 팀을 견실하게 꾸려온 데 대한 마땅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양키스가 엄청난 페이롤을 유지하면서도 전력 강화에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은, 예스 네트워크를 통한 시청자들에게 채널을 고정시킬 만한 대형 선수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새로 지은 뉴 양키 스타디움을 찾은 극성팬들에게,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들을 선보여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사치세 라인을 까마득히 넘었기 때문에 때로는 트레이드가 힘든 고액 다년계약자가 로스터 다수를 채우고 있었는데요. 조금 여유가 생겨서 지를 타이밍이 왔을 때도 사치세를 생각하면, 시장가의 두 배 이상을 주고 선수를 사 와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보스의 철학만큼이나 팬들에게 승리를 선사하는 것이 제1의 목표였기에, 다른 팀에서는 제국이라고 비아냥을 들어도, 양키스의 구단 가치는 천문학적으로 성장해 왔죠.
중간 규모의 팀에서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서 기회가 오면 한 번씩 우승에 도전하는 단장들도 있지만, 동부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의 시장에서 30년에 가깝게 팀의 경쟁력을 이어 오는 캐시먼 단장의 노고에도 찬사를 보냅니다. 사실 공과가 모두 있는 인물이지만, 아마도 언젠가 그가 양키스를 떠나고 나면 팬들은 캐시먼 단장에 대해서 재평가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