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의 18 시즌, 결국 전설로 남다
브라이언 세이빈의 역사는 화려한 선수 시절의 훈장이 아닌, 타인의 잠재력을 읽어내는 관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대학 야구 코치와 감독을 거치며 숙련된 그의 안목은 양키스의 스카우트 책임자로서 마침내 빛을 발하게 되는데요. 데릭 지터, 마리아노 리베라, 호르헤 포사다, 앤디 페티트로 이어지는 'Core Four'와 훗날 자이언츠의 안방을 지킬 J.T. 스노우까지, 세이빈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양키스 왕조의 기틀을 단단히 다져놓았습니다.
1996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전권을 쥔 세이빈은 부임과 동시에 추상같은 결단을 내리는데요. 팀의 상징인 맷 윌리엄스를 보내고 제프 켄트를 데려오는 파격적인 트레이드에 팬들은 원성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는 돌대가리가 아니다"라는 일갈과 함께 화이트삭스로부터 3명의 투수를 수혈하는 기민한 움직임으로, 부임 이듬해인 1997년 곧바로 지구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의 안목을 실력으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배리 본즈라는 전무후무한 태양을 중심으로 자이언츠는 2004년까지 평균 92승을 거두며 서부의 강자로 군림했습니다. 하지만 2002년 월드 시리즈는 세이빈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겨주는데요. 시리즈 초반 본즈가 에인절스의 철벽 마무리 퍼시발을 정면 승부 끝에 홈런으로 무너뜨리는 괴력을 발휘했음에도, 본즈를 뒷받침할 유기적인 시스템의 부재는, 결국 6차전의 역전패와 준우승이라는 아쉬운 결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새 구장 퍼시픽 벨 파크의 천문학적인 부채를 갚아야 했던 구단주의 '위닝 나우' 방침은 세이빈의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굴레가 되었는데요. 흥행을 위해 이름값 높은 베테랑을 끊임없이 수혈해야 했던 이 시기, AJ 피어진스키 영입은 최악의 악수가 되었습니다. 팀 케미스트리를 해치는 이기적인 선수가 조직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목격한 세이빈은, 이 실패를 거울삼아 훗날 버스터 포지라는 필드의 사령관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합니다.
2005년부터 시작된 리빌딩의 과정은 사실 거대한 도약을 위한 인내의 시간이었는데요. 세이빈은 본즈와의 재계약을 과감히 포기하는 대신, 린스컴, 케인, 범가너, 포지로 이어지는 팜 출신의 영건들을 수집하고 육성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2009년 88승으로 가능성을 증명한 자이언츠는, 마침내 2010년 56년 만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투수 왕국'의 완성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관리형이지만 포스트 시즌에는 갑자기 작두를 타는 명장 브루스 보치 감독과 손을 잡은 세이빈은, 구단이 직접 길러낸 영건들을 대거 중용하는 끈끈한 운영으로, 5년 내 3회 우승이라는 구단의 역사를 썼습니다.
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맥고완 구단주의 무리한 요구와 팬들의 비난을 묵묵히 견뎌내며 위닝 팀을 완성한 그는, 이제 양키스의 보좌역으로 돌아가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고 있는데요. 비록 자리는 바뀌었을지언정, 자이언츠 팬들의 기억 속에 브라이언 세이빈은 영광의 시대를 설계한 명단장으로 살아 숨 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