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의 품위로 작품을 완벽하게 만드는, 이상적인 배우
화려한 조명 아래서 손을 흔드는 '무비 스타'는 아니다. 잡지 커버를 장식하는 전형적인 미남 배우의 계보와도 거리가 있다. 하지만 스크린 어딘가에서 날카롭고 서늘한, 때로는 뜨거운 푸른 눈빛이 번뜩일 때 우리는 직감한다. 이 영화는 무게감을 가질 것이라고.
'스포트라이트에서 한 발 물러서 있는 진정한 배우들'을 재조명하는 첫 번째 순서로, 할리우드의 살아있는 연기 장인 '에드 해리스(Ed Harris)'를 이야기하려 한다.
에드 해리스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주인공의 앞길을 막아설 때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소리를 지르거나 맹목적인 파괴를 일삼는 1차원적인 악당이 되기를 거부한다. 대신 그는 악역에게조차 관객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논리'와 '신념'을 부여한다.
영화 <더 록(The Rock)>의 프랜시스 험멜 장군을 보라. 그는 테러리스트이기 이전에,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부하들의 명예를 되찾으려 했던 참군인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광기가 아닌 고뇌와 슬픔이 서려 있었고, 그 비장미는 영화를 단순한 액션 블록버스터 이상의 드라마로 승화시켰다.
https://youtu.be/3 AIQdfW2 Pds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속 윌포드 또한 마찬가지다. 인류 최후의 생존을 위해 잔혹한 시스템을 유지해야만 했던 그는, 시스템의 관리자로서 서늘한 합리성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그들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을지언정, 에드 해리스가 빚어낸 그들의 '이유'는 부정할 수 없다.
그의 연기력이 정점에 달했던 순간은 각본가 앤드류 니콜의 상상력이 빚어낸 <트루먼 쇼>였다. 리얼리티 쇼의 창조자 '크리스토프' 역을 맡은 그는 영화 내내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목소리와 지시만으로 거대한 세트를 통제할 뿐이다.
하지만 에드 해리스는 이 '부재(不在)'를 압도적인 '현존(現存)'으로 뒤바꾼다. 트루먼이 잠든 모습을 어루만지듯 스크린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피조물을 사랑하면서도 통제하려 드는 오만하고 고독한 신(神)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아니었지만, 스포트라이트 그 자체를 조종하는 설계자였다.
물론 그가 차가운 이성만의 소유자는 아니다. 제임스 카메론의 <어비스(The Abyss)>에서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대의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심연 속으로 던지는 뜨거운 휴머니즘을 보여주었다.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심해로 하강하며 타자로 써 내려갔던 마지막 전송 메시지, "내려오기 전부터 편도 티켓인 걸 알고 있었어. 사랑해, 여보." 이 짧은 문장은 에드 해리스라는 배우가 가진 진정성과 결합하여 관객의 가슴을 울리는 명장면으로 남았다. <아폴로 13>의 지휘관 진 크란츠가 보여준 "실패는 없다"는 리더십 또한 이러한 휴머니즘의 연장선에 있다.
많은 이들이 <함정(Just Cause)>나 <폭력의 역사> 같은 작품에서 그가 보여준 섬뜩한 존재감을 기억한다. 짧은 등장만으로도 공기의 흐름을 바꾸고, 주인공의 등 뒤에 서늘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능력. 그것은 그가 자신의 스타성보다 배역의 기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프로페셔널'이기에 가능하다.
비록 아카데미는 네 번이나 그를 후보에 올리고도 빈손으로 돌려보냈지만, 그것은 어쩌면 그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들 만큼 완벽하게 배역 뒤로 사라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 시스템의 설계자, 그리고 고뇌하는 군인. 에드 해리스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밖에서 묵묵히 영화의 뼈대를 세우고 살을 입혀온 거장이다. 이제 우리가 그에게 마땅한 박수를 보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