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지: 엑스 재팬을 지키려던 소리 없는 비명

요시키의 눈물보다 뜨거웠던 타이지의 베이스, 엑스의 진짜 엔진

by 동물의삽

사람들은 요시키(YOSHIKI)의 눈물에 열광하지만, 나는 그 눈물 뒤에 가려진 타이지(TAIJI)의 ‘헌신’을 본다. 엑스 재팬이라는 거대한 신화는 요시키의 탐미주의적 눈물이 아니라, 타이지의 정교한 베이스 위에서 지어졌다. 하지만 세상은 늘 영악한 리더만을 기억할 뿐, 정직한 테크니션의 헌신은 기록하지 않는다. 우리가 30년 넘게 ‘엑스’라 불러온 그 이름의 진짜 주인, 사와다 타이지를 비평의 수면 위로 복원해야 하는 이유다.



1. 설계된 '기레이'를 압도한 타고난 '야성'


90년대 초 도쿄돔, 리더 요시키는 자신의 왜소함을 신비주의와 드레스로 포장하며 ‘기레이(아름다움)’의 신화를 설계했다. 그것은 밴드를 하나의 거대 브랜드로 만들기 위한 철저한 경영적 판단이었다. 하지만 타이지는 그 인위적인 틀에 갇힐 남자가 아니었다.


174cm의 평범한 키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대 위에서 압도적 위압감을 뿜어냈다. 서구적인 골격과 가죽 재킷이 어울리던 그의 피지컬은 요시키의 ‘정제된 미학’과는 결이 다른 날것의 야성이었다. 밴드 내 최장신 178cm의 파타(PATA)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예스맨’의 역할을 수행할 때, 타이지는 무대 전체를 장악하는 포식자였다. 요시키가 화장 뒤로 자신을 숨길 때, 타이지는 화장조차 자신의 야성을 강조하는 전사의 도색(War-paint)으로 삼았다. 그것은 연출된 신비주의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진짜’의 아우라였다.



2. 멜로디의 요시키, 설계의 타이지와 히데


흔히 엑스의 음악을 요시키의 독창적 산물이라 오해하지만, 밴드 초창기 사운드의 실질적인 설계자는 타이지와 히데(HIDE)였다. 요시키가 화려한 멜로디라는 밑그림을 가져오면, 이를 정교한 록 사운드로 편곡하고 악기 간의 밸런스를 조율해 ‘팔리는 음악’으로 완성한 것은 타이지의 탁월한 편곡 능력이었다. 여기에 히데의 감각적인 아이디어가 더해져 엑스 특유의 입체적인 사운드가 탄생했다.


https://youtu.be/MXSdt79gOJ4


타이지의 베이스는 단순히 박자를 맞추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는 요시키의 독주를 제어하며 사운드의 균형을 잡았던 음악적 ‘주권자’였다. 그가 재적했던 ‘X’ 시절의 음악들이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은 이유는 타이지가 심어놓은 탄탄한 편곡의 힘 덕분이다. 그가 떠난 뒤 엑스의 사운드가 급격히 요시키의 피아노와 스트링 위주의 ‘심포닉 신파’로 기울었음을 상기할 때, 타이지가 지켰던 록 밴드로서의 정체성이 얼마나 거대했는지 알 수 있다.



3. 실력은 최고, 처세는 최악


요시키의 완벽주의가 제국을 건설해갈 때, 타이지는 그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굽히지 않았다. 타이지는 밴드의 투명한 운영과 아티스트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했고, 요시키에게 엑스는 자신의 통제 하에 완벽하게 움직여야만 하는 절대 왕정이었다. 여기서 비극이 시작된다.


시스템은 종종 팀을 키운 1등 공신보다, 리더의 말에 토를 달지 않는 ‘관리하기 편한 인력’을 택한다. 요시키는 자신에게 저항하는 천재 에이스(타이지) 보다 순응하는 기술자(파타)를 곁에 두는 실리적인 선택을 내렸다. 해고 직후, 타이지가 일본 헤비메탈의 자존심 라우드니스(Loudness)에 영입되어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타카사키 아키라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사실은 그의 실력이 결코 정치적인 수사로 가려질 수 없었음을 증명한다. 업계 최고의 거물은 그의 가치를 알아봤으나, 자신의 팀 리더는 그 빛을 감당하지 못했다.



4. 닫혀버린 문과 소리 없는 비명


타이지는 비즈니스맨이 되기엔 너무나 순수했고, 록스타로 남기엔 세상이 너무나 영악했다. 그는 최고의 하드웨어를 가졌으나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처세에는 무지했다. 엑스라는 뿌리를 잃은 후 술과 방랑 속에 자신을 방치했던 그를 붙잡고 있던 마지막 끈은 중재자 히데였다.


https://youtu.be/ROa8pBmTDZU


1998년, 히데의 죽음은 타이지에게 단순한 상실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엑스로 연결되는 마지막 문이 영원히 닫혀버린 사건이자, 생존 의지를 꺾어버린 트리거였다. 히데의 장례식에 나타난 초췌한 타이지의 모습은, 엑스의 '육체'였던 남자가 '정신'마저 잃어버렸음을 보여주는 비극이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감정에 지나치게 솔직했을 뿐이다. 실력은 최고였으나, 그 실력을 세속의 저울 위에 올려놓고 흥정할 줄 모르는 정직한 바보였다.



5. 결론: 전설은 눈물 속에 있지 않다


2011년 사이판에서의 의문사. 그의 마지막은 제목처럼 소리 없는 비명(Voiceless Screaming)이었다. 타이지는 엑스의 뼈대였지만 정작 자신의 삶이 무너지는 것은 막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요시키가 구축한 화려한 신화의 포장지를 뜯어내야 한다. 엑스 재팬의 황금기는 요시키의 눈물 위가 아니라, 타이지와 히데가 벼려낸 사운드와 편곡의 기초 위에서 가능했다. 타이지가 연주를 멈췄을 때, 록 밴드로서의 엑스도 사실상 멈췄다. 우리는 살아남아 거장이 된 요시키의 성공만큼이나, 가장 찬란한 순간에 자신을 불태우고 사라진 타이지의 야성을 복원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진짜'를 대우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타이지는 엑스 재팬이라는 거대한 도박판에서 요시키가 끝내 감당하지 못했던, 유일하고도 찬란한 조커였다.

매거진의 이전글그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우리가 몰랐던 고귀한 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