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의 첫날, 홍콩의 붉은 전쟁 속으로
여러분, 2026년의 첫 아침이 밝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떡국 한 그릇 먹으며 차분하게 한 해를 계획하지만, 지금 홍콩의 거리에는 그야말로 ‘붉은 전쟁’이 한창입니다.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꿍헤이 팟초이(Kung Hei Fat Choy)!’라는 인사말과 함께, 어른들의 지갑을 기분 좋게 털어가는 마법의 빨간 봉투 ‘라이씨(利是)’가 춤을 추고 있거든요.
단순히 해가 바뀌는 것을 넘어, 온 도시가 복을 부르기 위해 뜨겁게 달아오르는 홍콩의 신년 풍경은 언제 봐도 참 압도적입니다. 오늘처럼 설레는 새해 아침, 제가 직접 보고 겪었던 그 화려하고도 치열한 홍콩의 설날 풍경 속으로 여러분을 안내해 드릴게요.
홍콩의 새해 인사, "꿍헤이 팟초이"
공희발재라고 쓰고 꿍헤이팟초이라고 읽습니다. 뜻은 아주 간단하게, "돈 많이 버세요!" 또는 "부~~ 자 되세요!"라는 뜻인데요. 말로만 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홍콩 사극에서 자주 본 장면인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 쥐는 '포권' 자세를 하고 말합니다.
(많이 본 자세죠?)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오른손을 감싸 쥐어야 한다는 점이고요. 만약 반대로 하면 애도나 조의를 표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서로 민망해질 수가 있습니다.
홍콩의 세뱃돈, 라이씨(利是)
홍콩의 설날에는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꿍헤이 팟쵸이~ 로 서로에게 덕담을 하고, 연장자가 손아래사람에게, 또는 상사가 부하에게 빨간 봉투인 홍빠오를 건네는데요. 보통 그 속에는 홍콩의 세뱃돈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이씨가 들어가 있습니다.
적게는 HKD10에서 많게는 HKD1,000 달러까지 주고받는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데요. 보통 조부모가 손자손녀에게 줄 때는 좀 많이 주는 경우가 많고, 따로 봉투 안에 초콜릿이나 쿠키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사장님이 일괄적으로 주는 HKD500 정도가 든 홍빠오와 부서장이 주는 HKD500을 받았는데요. 제 부하직원에게도 비슷한 돈이 나가므로 나중에 계산해 보면 주고받는 금액은 비슷해집니다.
그리고 꽤 중요한 사람들인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들에게도 HKD100 이상은 주어야 합니다. 자주 마주치는 분들이고 고마운 분들이니까요. 그 외에도 자주 가는 바의 직원들에게도 주는 경우가 있고, (친분이 있다면) 자주 가는 식당의 직원과 주방장에게도 줍니다. 이때는 HKD100 정도면 서로 만족할 정도의 라이씨고요. 오다가다 그냥 안면만 있는 사람들에겐 HKD20 정도면 에티켓에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단, 세뱃돈이므로 미리 한두 달 전에 HKD2000 정도는 은행에서 신권으로 바꿔놓아야 하는 게 일입니다. 홍빠오를 열었는데 헌 돈이 나오면 큰 실례거든요. 여하튼 라이씨를 많이 줄수록 더 부자가 된다고 해서 이 풍습을 꺼리는 홍콩인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현금으로 주고받기 때문에 설 연휴에는 돈이 많이 풀리는 시기죠.
불꽃놀이
춘절을 기념하여 불꽃놀이가 빅토리아만에서 펼쳐지는데요. 본 행사만 1시간 가까이 쉴 새 없이 터트리는데,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사람들이 가득 들어찬 스타의 거리)
명당자리는 보통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모이는 그곳인데요. 불꽃놀이 행사 때는 평소의 수십 배의 인파가 모입니다.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차량 통행이 통제되고, 버스도 중간에서 회차하죠. 택시도 서지 않으니 회차지점까지 찾아가야 합니다.
불꽃놀이를 위한 30분 동안 터트리는 화약의 비용도 엄청난데요. 홍콩달러로 8백만 달러 정도가 든다고 하니,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15억 정도를 불꽃처럼 날려버리는 셈이네요. 보기엔 멋지지만, 그날 밤은 온 홍콩이 화약냄새로 뒤덮입니다.
깜쾃(금귤) 화분
그리고 각 가정이나 상가에는 이렇게 금귤을 심은 화분이 등장하는데요. 이때가 홍콩의 꽃시장이 가장 기다리는 최고 대목입니다. 저 금귤을 황금으로 생각하고, 새해엔 재운이 넘치길 바라는 마음에서 들여놓는데요. 저렇게 홍빠오를 장식하기도 합니다.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관상용이라 사람이 먹을 것은 못 된다고 하는군요.
푼초이(盆菜)
홍콩의 원주민인 하까(객가)족 사람들이 설이면 먹었다는 전통요리, 푼초이입니다. 영원한 따꺼 주윤발도 하카족의 피가 흐른다는데요. 아마 윤발 형님도 설이면 가족들이 둘러앉아 푼초이를 먹을 겁니다. 진귀한 해산물로 만드는 냄비요리인데요. 전문 식당에서는 미리 예산을 상담해서 예약을 받고 요리를 해준다는군요.
홍콩식 떡국, 쳉쇼이통 위엔(清水湯圓)
맑은 국물에 경단을 넣어서 먹는 요리입니다. 우리나라의 떡국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아시아권이라 그런지 비슷한 음식이죠?
웡타이신(황대선) 사원
평소에도 가족 중에 환자가 있거나 하면 쾌유를 위해, 또는 그냥 복을 빌기 위해서 웡타이신 사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춘절에는 평소 인파의 열 배 이상이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에, 그냥 가지 말라고 말리고 싶네요.
바로 앞에 전철역이 있는데요. 평소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지 않지만, 춘절 기간에는 전철부터 웡타이신 사원까지 사람들에게 밀려서 움직입니다. 꽤 넓은 주차장이 있지만,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으므로 춘절 기간엔 차가 못 들어가게 통제하기도 합니다. 그냥 전철을 이용하는 게 정답이에요.
(평소의 본당 모습)
(춘절의 본당 모습)
웡타이신 사원의 본당인데요. 위 사진을 비교해 보시면 춘절기간에 사람이 얼마나 많아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본당에 들어가기 전부터 향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밖에서 보면 화재가 난 것처럼 연기가 자욱합니다.
저기서 산통을 흔들며 올해의 복을 점쳐보는데요. 괘의 번호를 그 자리에서 적어서는, 왼쪽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점집에서 해설을 듣습니다. 보통 광둥어로 하지만, 영어나 보통화가 가능하다는 광고가 붙은 점집도 많아요. 점이 꽤 잘 맞는다고 하니, 춘절을 피해서 한 해의 신수를 점쳐보는 것도 재미있겠습니다.
홍콩의 신년은 단순히 달력을 넘기는 행위가 아니라, 일 년치 복을 쟁취하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전사들의 축제 같은 시간입니다. 웡타이신 사원에 향 하나를 꽂기 위해 수천 명이 달려가는 그 야성적인 모습이나, 주변 모든 이들에게 라이시를 뿌리며 덕담을 나누는 그들의 문화 속에는 ‘함께 잘 살자’는 투박하면서도 진한 마음이 담겨 있죠.
비록 우리는 지금 홍콩의 그 시끄러운 폭죽 소리 사이에 있지는 않지만,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만큼은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의 2026년도 홍콩의 라이시 봉투처럼 묵직하고, 밤하늘의 불꽃처럼 찬란하게 빛나길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꿍해이 팟초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