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이야기(10): 당신이 홍콩에서 꼭 보아야 할 것

당신이 놓친 홍콩의 1%, 진짜는 2층 버스 맨 앞자리에 있습니다

by 동물의삽


오늘 제가 여러분께 들려드릴 이야기는 흔한 여행 가이드북에 적힌 '가야 할 곳'들의 나열이 아닌데요. 여행객의 시선으로 포착한 홍콩의 밀도,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떻게 나만의 공간을 발견하고 시간을 귀하게 쓰는지에 대한 소박한 기록입니다.


이번 10회부터 앞으로 7회에 걸쳐서, 홍콩섬-구룡반도-란타우 섬- 신계지- 마카오와 심천에 이르는 여정을 연재하려 하는데요. 여행 책자에서는 볼수 없었던 것들을 얻어가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홍콩은 제게 늘 묘한 설렘을 주는 도시입니다. 좁은 땅덩어리 위에 건물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이 도시에 발을 들이면,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남들이 닦아놓은 뻔한 길 위에서 줄을 서며 시간을 보낼 것인지, 아니면 조금 더 영리하게 움직여 홍콩의 진짜 얼굴을 마주할 것인지 말입니다.



비릿한 삶의 냄새, 셩완에서 시작하는 하루


홍콩 국제공항에 도착해 AEL(공항철도)에 몸을 싣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됩니다. 짐을 들고 길 위에서 허비하는 시간만큼 아까운 것도 없지요. 저는 홍콩역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셩완(Sheung Wan)의 숙소로 향합니다. 왜 셩완이냐고 물으신다면, 이곳이 홍콩의 과거와 현재가 가장 정직하게 공존하는 곳이기 때문이라 답해야겠네요. (아울러 저렴한 숙소도 많이 있습니다)


western-market-tram-iStockJasonLam-1024x600.jpg 셩완의 랜드마크 웨스턴 마켓 건물입니다. 당연히 들어가 볼 수 있죠

짐을 풀고 밖으로 나오면 코끝을 찌르는 건어물 냄새가 저를 반깁니다. 누군가는 이를 낯설어하겠지만, 제게는 홍콩을 지탱해 온 치열한 삶의 냄새로 다가옵니다. 화려한 쇼핑몰의 조명 아래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이 도시의 원초적인 생명력이죠.


Dried_Seafood_Street_1920x960.jpg 온갖 진귀한 건화가 넘쳐나는 홍콩입니다

특히 약령시장의 한켠을 가득 메운 비린내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말린 생선 껍데기와 샥스핀, 그리고 어패류인데요. 홍콩인들은 신선한 생물도 좋아하긴 하지만, 일단 재료를 공을 들여 말린 재료인 건화를 더 가치 있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약령시장의 상가에는 백 년 묵은 제비집부터 전복, 진귀한 말린 재료들이 즐비한데요. 비록 바다의 냄새는 어쩔 수 없지만, 가격표를 보시면 절로 눈이 커질지도 모르겠습니다.


central-market-carousel-1920x1080-1-a.jpg 이곳에서 육교로 미드레벨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 케네디 타운발 트램을 타고 중완 까이씨(중환가시)로 향합니다. 100년 넘은 낡은 쇳덩어리가 덜컹거리며 내뿜는 소리 속에서, 저는 비로소 홍콩의 습도와 공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창밖으로 스치는 낡은 간판들과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이 도시가 품은 시간의 층위를 가늠해 봅니다. 그다지 빠르지 않은 트램이지만, 정해진 길을 따라서 가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센트럴(쭝완) 역 근처의 쭝완까이씨에 다다르게 되는데요. 앞으로 내리면서 빠다통을 대면 됩니다.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바라본 수직의 도시


central-mid-levels-escalators-01.jpg 출근시간에는 하행만 있으니 오전 열시 넘어서 찾아주세요

쭝완에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면 홍콩이라는 도시가 가진 독특한 구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지대가 높아질수록 풍경이 변하고, 사람들의 걸음걸이와 공기의 색깔이 달라집니다. 에스컬레이터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소호(Soho)에 다다르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늦은 점심을 즐길 곳을 찾으시면 좋겠네요.


image.jpg 유명한 란퐁윈입니다. 입구는 아담하지만 안은 생각보다 넓죠

대단한 미식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번잡한 거리 한복판에서 잠시 멈춰 서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요. 현지인들과 한 테이블에 합석하여 음식을 시키고, 바삐 움직이는 인파를 관조하며 즐기는 차 한 잔의 여유는,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사치이자 즐거움입니다.




자연조차 정교하게 설계된 곳, 홍콩 공원


식사를 마친 뒤 홍콩 공원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조류원의 새소리와 다구 박물관의 고즈넉함은 분명 들러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그 정적인 아름다움 너머를 한 번 보셨으면 합니다.


Hong_Kong_Park_Overview_2009.jpg 센트럴 도심에 자리한 홍콩 공원, 바로 근처 은행가에 중국은행을 비롯한 마천루가 보입니다

조류원의 거대한 그물망 너머로 보이는 중국은행 타워(Bank of China Tower)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보신 적이 있나요? 숲 속의 평화로움과 그 뒤를 병풍처럼 두른 차가운 마천루의 대비. 자연조차 도심의 마천루 아래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는 그 기묘한 조화가 참 홍콩답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숲 속을 걸으면서도 끊임없이 빌딩 숲의 존재를 자각하게 되는 이 이질적인 매력이 제가 홍콩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영리한 여행자의 선택: 2층 버스 맨 앞자리


이제 오늘 여정의 하이라이트인 피크(The Peak)로 향할 차례입니다. 대다수 여행객은 피크트램을 타기 위해 긴 줄을 서곤 합니다. 물론 트램의 낭만도 있겠지만, 저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해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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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증권거래소 아래 터미널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15번 이층 버스정류장을 찾으면 되는데요. 전략은 간단합니다. 기점에서 출발하는 빈 차에 가장 먼저 올라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저 없이 2층 맨 앞자리, 그중에서도 오른쪽 좌석을 차지하세요.


현지인들에게는 그저 일상적인 이동 수단이겠지만, 여행자에게 이 자리는 홍콩이라는 도시를 가장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명당입니다. 산복도로를 굽이굽이 오를 때, 오른쪽 통유리 너머로 발밑에 쏟아지는 빌딩 숲의 압박감은 오직 이 자리에 앉은 사람만이 온전히 누릴 수 있는 풍경입니다. 남들이 트램 안에서 앞사람의 뒷모습을 볼 때, 여러분은 홍콩의 스카이라인을 가슴 벅차게 독점하게 되는 것이지요.



야경의 가치는 '조금 더 걷는 수고'에서 완성됩니다


피크에 도착하면 화려한 조명이 빛나는 피크 타워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팔각정은 잠시 지나치셔도 좋습니다. 누구나 찍는 똑같은 각도의 야경보다는, 조금 더 호젓하게 이 밤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으니까요.


lugard-road-lookout.thumb.800.480.jpg 루가드 로드입니다. 밤에 오시면 더 좋아요

산책로(루가드 로드)를 따라 딱 5분만 더 걸어 들어가 보세요. 시끄러운 소음이 잦아들고 숲의 어둠이 깔리는 그곳에서, 비로소 홍콩의 야경이 온전한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빅토리아 항구의 불빛들이 바다에 번지는 광경을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홀로 마주하는 순간, '아, 정말 홍콩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드실 텐데요. 남들이 몰리는 명당보다, 내 다리로 직접 찾아낸 고요한 장소가 주는 감동은 훨씬 더 깊고 오래갑니다.



완벽한 밤의 갈무리, 맥도널드와 맥주 한 잔


내려오는 길 역시 이층 버스를 이용합니다. 이번에는 방향을 바꿔 왼쪽 좌석을 사수해 보세요. 올라올 때 미처 다 보지 못한 야경의 또 다른 디테일을 챙기는 재미가 있습니다.


og.jpg 홍콩 멕도널드 특선 에비(새우) 버거 스페셜 메뉴입니다

숙소인 셩완으로 돌아가는 길, 트램의 덜컹거림 속에 하루의 피로를 싣습니다. 버스 안에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작은 에티켓을 지키며, 다가올 보상의 시간을 기다립니다. 가방 속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며 호텔 근처 맥도널드에 들릅니다. 야식을 사고 편의점에서 시원한 캔맥주 몇 개를 집어 들 때의 그 기분은 여행자만이 아는 행복이죠. 혹시 이벤트 기간일지 모르니 키오스크나 카운터의 메뉴를 잘 살펴보세요. 빅맥이 질린다면 이벤트 버거나 치킨버거를 권합니다. 심야에는 싸게 파는 경우가 많으니, 뜻밖의 득템이 가능할지도 몰라요.


화려한 레스토랑의 서빙도 좋지만, 씻고 나와 침대 머리맡에서 즐기는 야식과 맥주 한 잔은 그 무엇보다 정직하고 확실한 위로를 주는데요. 하루 종일 버텨준 다리에 선물을 주며 술기운이 알딸딸해질 때쯤, 홍콩의 첫날밤도 그렇게 고요하고 평온하게 저물어갑니다.



흥미 있게 읽으셨는지 모르겠는데요. 이 기록이 여러분의 다음 여정에 작은 보탬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저는 다음 주 목요일, 홍콩섬 남부의 또 다른 풍광과 함께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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