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 여유와 자본의 역설
홍콩을 여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자본이 세운 견고한 수직적 질서에 순응하거나, 혹은 그 틈새에 숨겨진 수평적 여유를 찾아내는 '안목의 싸움'과도 같습니다. 지난 1화에서 셩완의 비릿한 일상을 함께 지나오셨다면, 이제 우리는 산을 넘어 이 도시가 가장 아껴둔, 혹은 가장 비싸게 팔고 있는 풍경 속으로 진입해 보려 합니다.
셩완의 낡은 트램에서 내려 애드미럴티 역 뒤편 버스 터미널로 향하는 발걸음은 일종의 '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번 혹은 6X번 버스 2층 제일 앞 좌석을 확보해 보세요. 이 여정을 위한 가장 완벽한 관람석이 되어줄 겁니다. 버스가 해피밸리 경마장을 지나 타이핑 산의 어깨를 타고 오를 때, 창밖으로는 홍콩 특유의 기묘한 공존이 펼쳐집니다.
한쪽에는 산비탈을 가득 메운 공동묘지의 비석들이 보이고, 다른 한쪽에는 매주 수요일 밤 거대한 자본이 베팅되는 경마장의 푸른 잔디가 선명하게 대비를 이룹니다. 죽은 자들이 안식하는 명당과 산 자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는 도박장이 애버딘 터널이라는 어둠의 통로로 연결되는 순간, 여러분은 비로소 홍콩의 폐부로 들어왔음을 직감하시게 될 겁니다.
저렇게 묘지가 빽빽한 이유는, 당연히 임대료가 비싼 탓도 있지만, 최대한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서 입장을 하기 때문입니다. 비스듬히 세워서 매장을 함으로써 최대한의 공간 효율을 추구한다니, 참으로 홍콩답다고 해야겠네요.
터널의 어둠을 뚫고 버스가 속도를 줄이면, 시야는 갑작스럽게 남중국해의 에메랄드빛으로 확장됩니다. 바로 리펄스 베이입니다. 왼쪽 언덕 위로는 용이 바다로 나가는 길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건물 가운데를 뻥 뚫어버린 초고가 맨션, ‘더 리펄스 베이’가 위압적인 곡선을 그리며 서 있습니다. 풍수가 곧 자본의 가치를 결정하는 이 도시에서, 저 구멍은 단순한 건축적 위트가 아니라 수천억 원짜리 '용의 통로'인 셈이지요.
해변은 참 평화롭지만, 그 평화에는 사실 엄격한 가격표가 붙어 있습니다. 만약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자라면 여기서 오션 파크라는 옵션을 고민하시겠지요. 평일이고 폭염이 가신 계절이라면, 저는 디즈니랜드의 인공적인 환상보다는 오션 파크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수족관의 압도적인 규모와 해안 절벽을 타고 오르는 케이블카의 경험이 아이들에게 훨씬 풍요로운 기억을 선사하기 때문인데요.
케이블카로 올라가 정상의 스릴을 즐기고, 내려올 때는 오션 익스프레스라는 자본의 속도에 몸을 맡기는 것이 고수의 동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놀이기구를 타러 다니느라 흘린 땀을, 오션 익스프레스의 시원한 냉방이 식혀주죠. 비록 산을 관통하는 열차라서 바깥 구경을 하진 못하지만, 모니터에서 계속 보여주는 박진감 넘치는 영상이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을 겁니다.
해변 동쪽 끝으로 걸음을 옮기면 원색의 화려함으로 무장한 틴하우 사당이 나타납니다. 바다의 여신 틴하우와 관음보살을 모신 이곳은,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걷는 홍콩인들이 가장 원시적인 기복에 매달리는 흥미로운 현장인데요. 사람들은 정재신 상을 닳도록 쓰다듬으며 저마다의 숫자를 기도하곤 합니다. 그들의 간절한 손길에는 저 뒤편 초고가 맨션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갈망이 서려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재미있는 점은 이곳 매점 직원들이 아주 능숙한 한국어로 말을 걸어온다는 것인데요. 홍콩의 배금주의는 언어의 장벽마저 자본의 효율로 허물어버리나 봅니다. 신앙조차 시장 논리에 맞춰 최적화된 이 공간에서, 상어 지느러미를 탐하는 인간의 욕망과 그 지느러미를 잃고 천수만의 깊은 수심 속으로 가라앉는 상어들의 비통한 역설을 읽어내는 것은 오롯이 관찰자의 몫이겠지요.
버스는 다시 해안선을 따라 스탠리, 즉 첵쥐로 향합니다. 홍콩섬 남부를 처음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쇼핑을 위한 사우스 호라이즌 아웃렛이란 옵션이 유혹하겠지만, '득템'이 목적이 아니라면 그 인공적인 조명 아래 귀한 시간을 허비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쇼핑은 마지막 날 공항 가는 길에 시티게이트 아웃렛으로 미루어두는 것이 더 현명합니다. 물건도 더 많고 말이죠.
스탠리 종점 근처 퍼시픽 커피에서 갓 내린 커피 한 잔을 챙겨 해변 산책로로 나서보세요. 이곳은 홍콩 북부의 치열함과는 완전히 단절된, 유럽풍의 수평적 여유가 흐르는 곳입니다. 노천카페와 펍에서 맥주잔을 부딪히는 이방인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센트럴에서 벽돌 하나하나를 옮겨와 다시 세운 머레이 하우스의 고전적인 자태는 이 여정의 하이라이트가 되어줄 것입니다.
여정의 마무리는 다시 종점에서 이층 버스를 타고 삶의 터전인 셩완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약령시장의 쌉싸름한 한약재 향기 속에서 차찬탱의 따뜻한 밥으로 허기를 채우는 로컬의 정취는, 여행자를 다시 현실의 안락함으로 복귀시켜 줍니다.
하지만 홍콩의 밤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어제 미처 닿지 못했던 의회 광장의 정적을 지나, 란콰이퐁의 광기 어린 에너지 속으로 몸을 던져보시길 바랍니다. 단, 이곳의 규칙은 엄격합니다. 반바지는 피하시고 최소한의 드레스코드를 갖추는 것이 그 공간의 문화를 존중하는 방식입니다. 수요일 밤이라면 여성들에게 무료입장을 허락하는 클럽들의 활기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홍콩섬 남부의 해안선은 결국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이 자본의 질서 위에서 어떤 여유를 선택하시겠습니까? 한때 이 길 위 어딘가에 사랑을 두고 온 누군가에게는, 이 눈부신 수평선조차 지독하리만큼 아름답고 잔인한 그리움일 뿐이겠지만 말입니다.
결국 홍콩의 남쪽 해안선을 따라 걷는 이 여정은, 화려한 풍경을 감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자본의 층위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그저 정재신 상 앞에서 기복에 매달리지만, 안목을 가진 자는 그 사당 뒤편에 솟아오른 마천루의 숫자를 읽어내며 자신의 자리를 설계합니다. 낭만은 지불 가능한 자에게만 허락되는 일시적인 배려일 뿐, 도시의 본질은 언제나 차가운 수직의 논리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찬란한 수평선 너머로 해가 저물 때, 여러분은 단순히 소비자로 남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이 홍콩스러운 질서의 빈틈을 파고드는 전략가가 되시겠습니까. 홍콩은 그 답을 가진 이에게만 비로소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