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의 시작
문명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7,000년에서 1만 년 전.
유목민들이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비옥한 평야에 정착하면서부터였다. 이들이 눌러앉게 된 것은 진흙 덕분이었다. 진흙으로 주전자, 낫, 도끼, 망치, 못, 벽돌까지 만들었다. 이 벽돌로 집을 지었고 집이 모여 인류 최초의 도시가 형성되었다.
최초에 도시 에리두가 생겼고 뒤를 이어 다른 도시가 생겨났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잉여 생산물이 생기자 다른 도시와 물건과 교환하기 시작했고, 진흙이 돈의 역할을 했다. 보리쌀 한 되는 원뿔, 양 한 마리는 원반 같은 형태의 징표를 진흙으로 만들어 거래를 기록했다.
상인들은 진흙 구(clay ball) 안에 징표를 넣고 구운 다음 표면에 표시를 해놓았다. 이 진흙 구는 채무를 갚으면 깨버렸다. 가장 흔한 형태의 채무는 세금이었다. ‘에스레투’로 불리며, 노동력이나 생산물의 10분의 1을 납부하는 십일조는 최초의 공식적인 세금제도로 볼 수 있다.
소득이나 수확량의 10분의 1을 헌납하는 관습은 메소포타미아뿐 아니라 중국, 이집트, 인도, 그리스, 로마, 카르타고, 페니키아, 아랍 등 거의 모든 고대 문명에 나타난다. 십일조를 보통 교회에 내는 세금이라고 생각하는데 고대에는 신, 왕, 지배자, 교회, 정부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서 전부 하나로 보았다. 일부 학자들은 우리 손가락이 10개고 보통 손가락을 사용하여 계산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10분의 1이라는 숫자가 나왔다고 주장한다.
시간이 지나자 굽는 대신 진흙 표면에 그림을 새겼는데 이것이 최초의 문자 체계였다. 문자로 제일 먼저 기록한 것은 세금이었다. 이렇듯 고대부터 회계, 화폐, 부채, 세금, 문자는 모두 나란히 발달했다.
고대 정착지가 번성하여 도시로 확장되자 도시 간에 자원을 두고 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움마와 라가시가 가장 사이가 안 좋았다. 전쟁 비용은 무엇으로 충당했을까? 물론 세금이다. 수자원을 쟁탈하기 위한 전쟁은 100년간이나 지속되다 마침내 라가시가 승리했고 움마는 저수지를 사용하려면 돈을 내야 했다.
그런데 라가시의 왕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자기 시민들로부터 계속 세금을 거둬들였다. 남자가 이혼하면 5셰켈의 은화를 내야 했고, 양치기가 양털을 깎아도 5셰켈의 은화를 내야 했으며, 남편이 죽으면 부인은 유산에서 일부를 내야 했다.
결국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반란이 일어나 우루카기나(Urukagina)가 왕을 폐위시킨 후 세제개혁을 단행하여 이전 세대의 관습을 없애버렸다. 세금징수관을 해고하고 세금을 줄여 악덕 세금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법을 제정했다.
문명의 발상지가 곧 세금의 발상지였다.
그 후 모든 문명에는 세금이 있었다.
* 위 글은 책 <세금의 세계사>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