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한복여행의 시작
도착한 날은 늦은 저녁이었어(2018년 1월 14일). 공항에서 내려 열차를 타고 시내로 올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30분에서 1시간 정도 사이에 길이 막혀버렸지. 살짝 당황했어. 그래도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고 와 무사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어. 중심가에 있으면서도 저렴한 숙소는 많은 여행자들에게 인기있는 곳이라고 하더라. 여행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위치가 굉장히 좋아 나는 아주 만족했어. 다음 날 우리는 아침 일찍 러시아 현지 음식 '블린'을 먹으러 나갈 채비를 했지.
전통한복에 휘항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았어. 어젯 밤, 시내를 돌아다니며 어느 정도의 추위일지 가늠해 보았는데, 액주음포 패딩이 없어도 괜찮을 것 같더라. 한국에서 영하 5도-10도 정도일때 보통 입는 한복이야. 한국이라면 내복을 입고 양단 저고리를 입고, 기모타이즈에 속바지, 위에 버선을 신었겠지. 오늘 러시아에서는 조금 특별한 차림이었어. 양단 저고리와 양단 치마는 같지만 치맛 속에 속치마를 입지는 않았지. 한국에서 특별히 제작해 온 솜 속바지와 단속곳을 입고 위에는 내복을 입었어. 여기에 덧저고리와 여우털, 속털을 따뜻하게 덧댄 휘항을 둘렀고 말이야. 휘항은 머리에서 어깨까지 덮어주는 전통 방한모야. 재질은 현대적이지만 한복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걸 봐. 너도 마음에 들거야.
너도 알겠지만, 내가, 우리가 한복을 입고 여행을 시작한 것은 무엇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야. 하지만 자연스럽게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좋은 이름표가 되지. 사람들은 흔히 지나쳐 가는 평범한 사람보다 뭔가 특이한 점이 있는 누군가에게 시선을 두게 돼. 언제나 내가 입은 한복은 그 시선의 중심에 있었어. 때로는 이런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는 시선으로 보는 이도 있어. too much 라고도 하더라.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여행옷으로서의 한복은 조금 오버스러운 무엇으로 보기도 하지. 전혀 모르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것도 사실이야. 어떤 도구든, 가치와 방법을 아는 사람만이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법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입고 있는 옷보다 이 옷을 입고 있는 나를 궁금해 하지만 말이야. 무엇보다 한복이 방한용 옷으로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여러차례 시도로 이미 알고 있겠지? 하나의 도전은 또 다른 도전을 부른다. 맞아. 네팔 히말라야의 영하 15도를 한복으로 경험한 이후, 나는 영하 30도에서 한복의 가능성을 확인하기로 했어. 러시아에서 말이야.
지난 주말에는 아주 추웠대. 지금은 많이 내린 눈이 거의 녹아 거리가 번들거리지. 많은 눈을 기대했던 나로선 조금 아쉬웠지만 또 다른 의미로 생각했을 때, 이런 좋은 날씨는 좋은 징조라고 할 수 있어, 그렇지? 이미 이곳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과는 다르게 나같은 여행자들은 몇 번 지나칠 뿐이야. 그래서 하나라도 기억에 남기기 위해 이렇게 사진을 찍어. 언제 다시 똑같은 장면을 보게 될지 모르거든. 나도 언젠가 눈으로만 보고 '마음속에 저장'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될까?
러시아 지역음식_블린
팬케이크라고 하면 뭔지 딱 감이 오지? Blini블리니라고 하는 러시아식 팬케이크야. 블라디보스톡 숙소 근처 블린 음식점에는 식사용 블린과 디저트용 블린을 판매하고 있었어. 한국사람들이 많이 오는지 한국어로 번역한 메뉴도 있더라고. 팬케이크 하면 밀가루와 달걀을 섞어 후라이팬에 기름없이 부친다음, 달콤한 시럽을 올려먹는 것을 넌 상상하겠지. 하지만 러시아의 블린은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했어. 내가 선택한 것은 수십가지에 달하는 블린 중 단 한가지였지. 당근과 양배추같은 채소가 잔뜩 들어 있는 블린은 한국에서 먹는 이삭토스트 같은 느낌이었지. 나쁘지 않았어. 아직 잠에서 채 깨지 않은 나를 일으켜세우는데 충분한 맛이었지.
러시아 음식 블린은 사람을 모으는 마력이 있는 음식이었어. 늦은 아점(아침+점심)을 먹고 나오자마자 특별한 사람을 만나게 됐거든. 고백하자면, 러시아 여행을 오기 전 나는 매우 긴장했어. 여행을 꽤나 했다는 분들마다, 러시아 여행의 위험성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셨거든. 그래서 특별히 신경써서 여행을 하려 했어. 물론 내가 입은 한복들은 분명히 눈에 띄겠지만 말이야. 게다가 유학생이 러시아에서 어떤 사고를 당했다던 이야기는 나를 매우 움추리게 만들었다고. 여행 바로 전 날,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벌어졌던 성폭행 사고는 우릴 모두 불안에 떨게 만들었지. 생각해보면 어느 지역이건 사건사고 없는 곳은 없고, 사람사는 곳은 다 비슷했던 거야. 물론 여행지의 특성에 따라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겠지만 블린을 먹고 난 다음 문을 열고 만난 러시아 사람들은 이런 내 걱정을 모두 사라지게 해 주었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