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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c Apr 11. 2023

이삭의 아파함을 아는 지혜

아버지, 저도 아파요...

매년 봄철이면 아들 예준이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가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차로 20분 거리의 Princeton University.

사계절 중 봄에 가는 이유는 꽃구경입니다.
캠퍼스 곳곳에 흐드러지게 핀 자목련이나 벚꽃나무 아래를 아들과 손잡고 거니는 호사는 이 봄날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프린스턴 대학의 Chapel과 Firestone Library 사이에 위치한 "Abraham and Isaac"이란 동상에서 예준이와 매년 성장을 기록한 사진을 찍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동상옆에 선 아들과 나

전국에서 명문 Princeton Unv. 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은 많지만 정작 이 채플 옆 계단에 위치한 이 동상을 못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설령 보더라도, 모리아산에서  밧줄에 양손이 묵혀 고통스러워하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얻은 아들 이삭을 칼로 죽여 하나님이 명령한 대로 자식을 번제로 드리려는 성경 스토리를 묘사한 두 부자를 알아채는 사람은 더더욱 없습니다.


너무나 많은 성직자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 이 모리아 산에서 칼을 든 아브라함은 많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자신을 죽이려는 아버지를 순종하는 아들 이삭의 믿음이나 그의 아픔은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아들 예준이가 3월 말 3살 생일이 지나 자폐 진단을 받았던 봄날.


하나님을 원망하며 우울한 봄날을 하루하루를 보내다 우연히 아들과 함께 이 동상을 찾아가 어린 아들을 동상 한가운데 세우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 지 17년째.


시골 마을 어귀에 위치한 성황당 바윗돌 위에 정화수 떠놓고 천신에게 두 손 모아 빌던 시골 아낙네의 마음이었을까요?


하나님께 매년 번제를 드리는 것처럼 제발 아들을 치유해 달라고 때로는 으르기도 때로는 억지로 떼쓰기도 했지만, 정작 아들 또한 스스로 그 아픔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캠퍼스 안의 작은 오솔길에서 동상을 향해 가다 보면 계단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왼쪽은 Chapel이고 오른쪽은 도서관입니다.


추측 건데, 이 동상의 조각가 George Segal은 동상을 보면서 '지성'을 키우기 위해 도서관도 찾아야 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깨우치고 '영성'을 갖추라는 균형 잡힌 태도를 재학생들에게 주문하기 위해 이 양쪽 건물 사이에 이 동상을 뒀는지 모르겠습니다.


뉴욕 맨해튼과 가깝고 인구가 많은 뉴저지 땅에 위치한 이 대학은 하버드 대학과 달리, 의대도 법대도 그 흔한 MBA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봄내음 가득한 캠퍼스의 꽃들

안정적인 과학 연구를 위해 자체 핵 발전소까지 갖추고 아인쉬타인을 비롯해 수많은 노벨 수상자들을 배출하고 있는 이 대학.


USNews에서 선정하는 Best University Ranking에서 1위를 놓치지 않는 이 대학이 돈이나 인재가 없어서 이런 황금알을 낳는 전문대학을 두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합니다.


이 대학에서 학업을 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이런 세상적인 지식보다 인간의 존재의 이유, 왜 그들은 배워야 하고, 그 배움의 끝은 무엇인지를 깨닫는데 온전히 그 학창 시절을 보내라는 취지가 학교 측에 있다고 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피곤했는지 옆자리에서 자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낮에 동상에서 본 이삭의 모습을 떠올리며 아들만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아픔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들어가 보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죽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만큼이나,  자신을 죽이려는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영문 모르고 순종하는 이삭의 아픔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대학생 기숙사 앞에서 두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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