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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c Apr 25. 2018

어느 村老의 아름다운 삶

역지사지의 입장

매년 7월과 8월이면 미주의 많은 한인 교회가 해외로 단기 선교팀을 연령에 맞춰서 보내는 것이 연례행사로 되어 있다. 지난 주일에는 뉴멕시코주에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선교하고 있는 선교사가 자신의 잘 아는 미국 동료 선교사가 멕시코 산간 오지로 선교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준 내용이다.

하루는 그 선교사가 멕시코의 가난한 시골 장터에 나가서 선교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노점상들이 길가에 들어선 곳으로 통역을 대동하고 갔다.

그 노점상 중에 얼굴에 깊은 주름이 잡으며, 오후 녘의 따가운 햇살을 등 뒤로 하고 기력 없이 퍼져 앉아 마늘을 팔고 있는 인디오 노인이 있었는데 그 선교사는 그 노인에게 다가가 마늘 한 꾸러미에 얼마냐고 묻자 미화로 50센트 정도이며 이제 마늘 네 꾸러미가 남아 이것만 팔고 집으로 가려한다고 했다.

이 마음씨 좋은 선교사는 그 불쌍해 보이는 노인을 돕기 위해 10불짜리를 덥석 내밀며 몽땅 다 사 주겠노라고 제안을 하자, 노인은 완강히 고개를 저였다. 그러자, 황당한 눈빛으로 그 까닭을 묻자, 그 노인은 나머지 셋 꾸러미는 벌써 살 사람이 정해져 있다며서 정 필요하면 나머지 한 꾸러미만 팔 수 있다고 대답하자, 다시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하나는 고깃집을 하는 안드로 것인데, 
그의 아내가 몇 주전 아들을 낳아 신바람이 났다며
그에게 줄 선물을 만들어 기다리고 있고,

또 하나는 조그마한 식당을 하는 까르로스 것인데, 
그의 남동생과 최근 집안 일로 많이 싸워서 속이 상하며
형제간에 우애는 금보다 비싸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고,

나머지 하나는 식구가 열이나 넘는 마리아 것인데,
남편이 일을 안 하고 놀고만 있다고 불평이 많다며
남자들은 일이고 뭐고 손에 잡히지 않을 때가 있으니
오늘 저녁녘에 사러 오면 낙심 말라고 격려해 주고 싶다며...........

이 이야기를 통역을 통해 들은 선교사는 어떻게 살 사람들의 이름과 개개인의 신상을 그렇게 상세히 알고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노인은 자기는 하루하루 파는 양이 정해 놓고
그의 오랜 손님들과 일상생활 이야기랑 마을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듣고 말해 주는 것이 즐거움이며 만일 그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 버리면 그들과의 대화도 없어지는데 무슨 재미로 장에 나와 물건을 파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노인은 찌는 무더워 속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 마늘들을 다 비싼 값이라도 선교사에게는 팔아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노인의 이야기를 들은 이 선교사는 참으로 한심한 자신을 깨달았다고 한다. 자본주의식 사고에서 생활해 온 그 선교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비싸게 사 준다는 사람에게 단번에 팔고 이윤을 많이 남기는 것이 경제적으로 효율적일 수 있겠지만 이 멕시코 인디오 노인은 자신의 오랜 손님과의 만남들 그 자체가 삶의 보람이며, 인생 경험을 서로 나누며 마늘을 건네주는 게 즐거운 일이지, 물건에 이윤을 붙여 남의 돈을 챙겨서 자신의 몫으로 하는 것에는 일말의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이곳 장터는 돈이 거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인생의 필요한 부분을 채우고 남으면 이웃에게 돌려주는 사람들을 위한 장터였다는 것이다.

항상 남을 대할 때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이해시키려는 것에 익숙했던 지금까지의 삶이 얼마나 다른 삶을 살아온 이에게 실례가 되었는가를 그는 새삼 일깨웠다며 자신의 삶 속에 타인의 삶을 돌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이 산골 노인에게서 선교하려 간 그가 오히려 선교당한 꼴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 이여기를 듣고 문득 나의 작년 7월 초의 일본/한국 여행을 되돌아봤다. 적게는 3년 만에 보는 친척부터 40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까지 많고 다양한 만남이 있었지만, 그중 유독 많은 시간을 할애해, 고향에서 12살 난 큰 아들을 혈액암으로 잃고, 생활고로 둘째 아들마저 조선족 형수가 데리고 집을 나가, 결국 힘든 결혼 생활을 스스로 접고 술로 세월을 보내며 방황하는 고종사촌 형를 어렵게 7년 만에 만났다.

이제 나이 50대 초반의 문턱을 바라보는 인생의 짧지 않은 여로에서, 사촌 형을 위한 답시고 안쓰러운 마음에 손아래인 내가 설교 아닌 설교로 "왜 그리 사냐?, 이제는 정신 좀 차려야지?... 라며 열변을 토하며 설득했는데, 고개 떨구며 묵묵히 술만 퍼며 듣고 만 있던 그 형를 생각해 보니,  행여 나의 사례 깊지 않은 언행이 모처럼 만난 그 사촌 형의 삶에 가족애란 美名하에 함부로 간섭을 하거나 가슴에 못을 박지는 않았는지....

이럴 줄 았았다면 진작 이 인디오 촌로의 애기를 예방주사 삼아 미리 듣고 갔을 것을,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사촌 형이 나름 꾸려온 그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옆에 같이 있어 줄 것을 하는 생각이 자꾸만 앞서며 아쉬움이 남는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내가 만들어 온 잣대로 남의 삶을 재단만 해 온 나의 오만과 독선이 내 맘 속에 자리 잡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하니 늦여름 밤 창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가 내 가슴을 에리 하게 콕콕 찔러 잠을 청할 수 없다.

행여 이 밤, 꿈속에서 비를 맞고 걸어가는 이가 보이거들랑 그에게 다가가 내 우산을 받쳐 주기보다는, 함께 비 맞고 마냥 같이 걸어가 주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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