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ric Apr 25. 2018

꿈과 기다림

인내를 가져야 할 이유

지난 초봄에 화초 구근을 꽃이 피면 집 안에서 관상하려고 널찍한 화분 8개를 따로 사서 각각 종류대로 심어 놓았는데 다른 화초들은 때를 따라 차근차근 흙을 뚫고 싹을 쭉쭉 올라오는데, 유독 "Nerine"라는 꽃이 한 달 이상 가는 남아프리카산 수선화인 이 구근을 담아 둔 화분에서만 이제 다음 주면 유월인데도 지난 석 달 동안 싹조차 보이 않았다.

구근에 곰팡이가 생겼을까? 흙이 배수가 잘 안돼 구근이 썩은 걸까? 원래 약한 구근을 사 온 걸까? 시간이 지나면서 출퇴근 때마다 이 화분을 보면서 걱정 아닌 걱정을 하면서 이 꽃 보기는 애초 걸렸다 싶어 일반 화초를 사다 다시 심어야지 하고 있는데 지난 월요일 출근길에 보니 작고 파릇한 싹 하나가 돋자 여차 엎어버릴까 했던 기다려주지 못한 내 조급함에 미안한 마음조차 든다.
 
그러고 보니 6-70년대에 미 중앙정보국 (CIA)는 비밀 첩보 요원을 뽑는데 여러 가지 특이한 방법을 동원했다고 한다. 그중에 하나가 학력 나이 등의 아무런 조건도 없고, 이력서 한 장 내란 말도 없이 유명 신문지에 구인 광고를 내, 그냥 일하고 싶으면, 며칠 날 이른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지정된 사무실로 오라는 것이다.

그런데, 수백 명이 모인 그 사무실에는 정해진 시간이 돼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고, 점심때가 되어도 채용담당자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이때부터 슬슬 배 고픈 사람들이 나타나고, 기다림에 지쳐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람 오라 해 놓고 꼬빼기도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면서 점점 사람들은 자리를 떠나버린다.

그리고 해진 저녁이 되면, 인내에 한계를 느낀 나머지 사람들이 거의 다 떠나 버리고 결국 자정이 가까워 오자 두 명 밖에 남지 않는다. 그런 후, 정확히 자정을 알리는 사무실 내에 종소리가 울리면 그제야 인사 국장과 간부급 직원들이 나타나 끝까지 인내하고 남은 그 두 사람을 뽑는다는 것. 

물론 기다린 이 두 사람이 비밀 요원으로 적합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나, 그들이 그 정도로 인내를 발휘하며 기다렸다는 것은 그만큼 그 직업을 얻으려는 열정이 있다는 것이며, 이는 어떤 고된 첩보 업무라도 참고 견딜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인내 (忍耐)"
순수한 우리 말로는 "참고 견딤"인데, 이 참고 견디리기 까지는 "기다림"이란 과정은 다가올 기회를 준비하는 과정이며, 우리가 기다리기 위해서는 그 기다리는 목적, 즉 "꿈"이 있어야 하고, 꿈이 이뤄졌을 때의 보상이 있어야 우리는 기다릴 수 있다.

몇 년 후면, 내 나이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던  불혹(不惑)의 40을 넘어, "하늘의 명이 무엇인지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50의 나이로 소리도 없이 접어든다.

이 만큼 열심히 부모에게 물려받은 몸 간수 잘하고 잘 살아왔는데 하고 일단 나 자신을 격려하고 자족하는 마음을 갖고 스스로에게 후한 점수를 줘야겠지만, 누군가가 "당신의 꿈은 뭐죠?"라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맘 설레며 기꺼이 대답할 수 있다면,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10-20대 보다,  꿈꾸는 40대가 인생을 밝고 훨씬 젊게 사는 바로 "청춘"이지 않을까 싶다.

"새끼 키우고 흰머리에 잔주름이 하나 둘 늘고, 갱년기라 몸이 예전 같지 않은 데다, 노후의 경제력도 걱정인데, 무슨 황당한 소리 하니"라고 퉁명스레 쏘아붙일지 몰라도 그럴수록 이룰 듯 말 듯한 맘 설레는 소박한 "꿈" 하나 품는다고 해서 손해 볼 건 하나도 없고 돈 드는 일은 더더욱 아니니...


매거진의 이전글 명품 시계와 같은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