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인생으로 자신을 가꾸는 일
성공한(?)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사서 팔목에 차보고 싶어 하는 세계 최고봉의 명품시계 브랜드, Patek Phillipe 소속의 시계공에 의해 만들어진, 일명, "Henry Graves Supercomplication"이란 목에 거는 회중시계가 지난 11일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열린 경매에서 263억 원에 팔렸다고 한다.
1925년 뉴욕의 재벌 은행가였던 Henry Graves의 특별 주문으로 8년간에 걸쳐, 920여 개의 달하는 부품을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조립해서 만든 이 시계는, 원래 1999년 카타르의 왕족에게 121억 당시 최고가로 낙찰되었다가, 다시 이번에 시장에 나와 그때보다 거의 두배나 높은 가격에 팔린 셈이다. 세계에서 현존하는 제일 비싼 시계이면서 동시에 제일 복잡한 이 시계는 보석의 명가 Tiffany의 특별 제작된 주머니에 들어가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시계 케이스가 금이라고는 하나, 손바닥보다 작은 금속 덩어리가 요즘 팔리는 벤츠 S클래스 240대와 맞바꿀 수 있는 어마어마한 가격인데 왜 이렇게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에 팔렸을까?
당연히 그에 걸맞은 이유가 있다. 우선 이와 동일한 시계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희귀성. 그리고 조류 간만 표시, 월력 표시, 달 모양 표시 등 무려 24가지의 Complication (시계 기능)이 내장되어 있다는 것. 그중 특히 혀를 내둘게 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 시계 주문자가 살았던 New York의 5번가의 자신의 아파트에서 밤하늘을 바라봤을 때 1년간 보이는 별자리를 그대로 이 시계판에 재현했다는 것. 따라서, 그 시계를 지금도 그 5번가에 가서 저녁에 밤하늘을 쳐다보면 그 하늘의 별자리가 그 시계판에 그대로 보인다는 애기다.
둘째는 고난도의 정밀성을 요하는 항성력(23시 56분 4초 0905, 보통 우리가 사용하는 태양력 24시랑 다른 우주력)까지 포함시켜서 그야말로 인류가 손으로 담을 수 있는 천체 및 자연현상 모두를 이 둥근 시계 안에 고스란히 담아 놓은 것.
사람들마다 조금씩 이견은 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세계적인 명품들이 있다. 가령, 크게는 명차의 람보리기니부터, 핸드백의 에르메스 벌킨, 보석의 티파니, 구두의 가버, 심지어 주방용 칼의 독일 헨켈(일명 쌍둥이칼) 까지 등등. 정말 형편만 된다면 누구나 다 가지고 싶고,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설레지고...
그런데, 나는 물건에도 값진 名品이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많은 사람 중에서 명품에 해당하는 名人이 있다고 본다. 단순히 그 명품을 만드는 사람을 두고 손재주 탁월한 명인이라고 칭할 수 있지만, 굳이 가진 손재주가 없다 하더라도,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보기만 해도 닮고 싶을 정도의 명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건 바로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서 다른 사람의 삶에 선한 변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건 분명 내가 볼 때는 "명인"이다.
2010년,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유럽여행을 갔을 때, 그곳에서 버지니아에 거주하는 한인 노부부랑 우연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처음에 그분은 단순히 그냥 자영업자이라고 소개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내가 스위스의 바젤의 Patek Phillipe 매장에 들어가서 카탈로그(말이 카타로 그지, 한 권의 역사 그림과 같은 책)를 어렵게 얻어 읽고 있는 것을 그때 어깨너머서 보고서는, 그분이 "혹시 미안하지만 자신에게 줄 수 없냐"라고 조심스레 물어 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사실은 워싱턴 근교 Sears라는 백화점 내에서 귀금속점을 경영하고 있고 자신이 직접 시계를 고치는 사람이라면서 자신도 꼭 그것을 한번 가지고 싶어 했다는 것. 연배도 많고 신사중에 신사처럼 보이는 분이 책을 애걸하듯 자신에게 달라는 부탁을 한 것이라 아쉬웠지만 두말 않고 건네주었다.
그 후, 유럽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일랜드에서 발생한 화산 폭발로 비행기가 며칠 연착되는 등 우여곡절을 같이 겪으면서 발이 묶이게 되자, 서로 살아온 지난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 우리 부부는 친하게 됐고 알고 보니, 그분의 가계에서 나오는 수익금 중 노부부의 생활비를 뺸 나머지 대부분을 탄자니아의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학교 건립에 쓴다고 하면서 자신은 30여 년간 오로지 미국에서 시계만 만져 온 시계 수리공이라 했다.
그것이 인연이 된 후, 가끔씩 연락을 하고 지내는데, 뜬금없이, 재작년에는 로렉스가 펜실베니아에서 운영하는 2년제 시계전문학교에 등록을 한다는 것이었다. 문득, 시계의 名匠이 왜 굳이 이제 와서 시계전문학교에 다시 입학하려느냐고 묻자, 기술을 배우려는 것이 아니라, 로렉스의 시계에 대한 정신을 학교를 다니면서 배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시계 명장이라는 정식 자격증을 가지고 싶어 한다는 것.
그 얘기를 듣고, 환갑이 훨씬 넘는 백발의 나이에도 배움에 대한 열정의 끈을 놓지 않고 가지고 살아가시다니... 삶의 많은 부분을 나의 영욕이 아닌 어려운 다른 사람과 나누면서 사는 그분을 생각하면 이 분이야 말로, 시계 명장이기 전에 인간 명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 아무리 명품의 인격과 자질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재능을 남을 위해 기부하지 않고, 썩여 둔다면 그건 자신만의 명품일 뿐, 사회나 이 세상의 명품이 될 수 없다.
대기업을 은퇴한 임직원들이 친목회를 만들어 등산이나 골프나 같이 치고 다니고, 해외여행이나 같이 하면서 여생을 즐길 뿐, 자신의 기업 일선에서 배운 많은 경험이나 노하우를 자라나는 젊은 세대, 혹은 그것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사회와 나눌 수 없다면, 개인의 사생활이라 속단할 수 없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산 삶을 두고, 세상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어도, 나는 그런 사람을 명품과 같은 사람이라고 평하고 존경하고 싶지는 않다.
생각의 차이일지는 몰라도, 263억이 의 그 시계는 맨해튼의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그" 하늘을 바라볼 때에만 의미가 있을 뿐, 그렇지 않으면 엄밀한 의미에서 스마트폰에서 볼 수 있는 시계보다 못할 수도 있다.
아무리 비싼 시계라 하더라도, 정작 필요할 때 시간을 볼 수 없고, 장롱 속 깊은 곳에 보관한다면, 천금보다 비싸더라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명품이 아닌 것처럼, 자신의 재능을 묻어 두지 않고, 다른 누군가에게 위해 대가 없이 나눠 주는 삶, 그래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야 말로 귀한 인간 명품 중에 명품이다. 명품을 가지고 있으면 명인이 됐다고 착각에 빠지는, 아니 적어도 그런 걸 살 수 있다고 경제력을 과시하는 것 자체가 참 명품 인간이 되기 힘든 이유가 여기 있다.
적어도 사람에게 명품과 같은 사람은 남들이 닮아보고 싶을 정도의 인격과 나눔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
나 역시 명품시계를 좋아해, 매년 취미처럼 정작 진품 시계는 못 사니 푸념하며 수집해 오는 Patek Phillipe의 카탈로그 별책을 보면서, 나의 욕심으로 이런 것을 모아 두면 뭐 하나? 나는 누군가에게 명품이 될 수 있을까? 아님 적어도 그렇게 되려고 마음이라도 먹고 노력이나 했는가? 자문하면서 명품을 가지기보다 명품과 같은 삶을 살기 위해 아직도 걸어가야 할 길이 멀고도 험하다는 것을 스스로 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