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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c Apr 24. 2018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분들

지지난주 주말 딸이랑 집 근처 도서관에 간 적이 있는데,  주말판 월스트릿 저널에 장애 올림픽(Paralympic)이 내일로 끝이 난다는 1면 톱기사에 휠체어를 탄 펜싱선수의 시합 사진이 눈에 들어와 나도 모르게 손이 도서관 신문대에 갔다. 그렇지 여름 올림픽 다음에는 으레 이 장애인 올림픽이 열렸었지.... 늘 이런 장애 관련 뉴스를 보면 떠오르는 해묵은 기억이 있다. 

1987년 추운 겨울, 대학입시로 난생처음으로 항도 부산에서 수도 서울로 가 며칠을 머물다가 다시 부산행 통일호 열차를 타려고 서울역 대합실에서 열차시간을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때, 들으면 알 만한 종교단체에서 종교인 두 사람이 전도를 하고 있다며, 나에게 열심히 설교를 했다. 출발시간이 많이 남은지라, 나는 이야기를 들어서 손해 볼 건 없다는 생각에 열심히 그들의 논리에 고개를 끄떡이며 듣고 있었다.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등등..... 
그런데, 마침 우리들 앞에 지팡이를 더듬으며 시각 장애인 한 분이 나타나, 가지고 있던 시계를 내밀며 사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순간, 눈동자가 없어 분명한 장애인이라는 걸 직감했다. 

사정이 딱해 보여 왜 팔려나고 묻자, 부산 해운대가 집인 그는 장애인들만 모여 사는 시설에서 일하기 위해 서울에 왔는데, 갑자기 집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갈려고, 자신의 돈을 관리하고 있던 시설원장에게 돈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해 할 수 없어 몰래 빠져나왔다며 그가 유일하게 남에게 팔 수 있는 것은 이 시계뿐이라며 팔아 부산 가는 기차표를 살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시각 장애인용 시계를 난생처음으로 봤는데, 둥근 유리판이 없고, 초침이 없으며, 시침과 분침이 일반 시계보다 상당히 두겁웠다. 아마, 볼 수가 없으니 손가락으로 만져서 시간을 확인한다는 것을 나도 만져 보고야 알 수가 있었다.

분명 그 시계는 시중에서 손쉽게 구할 수 없고 특수한 것이어서, 그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상당히 소중할 거라는 것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것을 팔려고 할 정도면 정말 그의 사정이 절박할까라고 생각했지만, 불행히도 내가 가지고 있던 현찰이라곤 당시 기억으로 2000원 정도, 그래서, 그 두 종교인에게 부탁을 했다. 사줄 수 없는지... 그랬더니, 서울역 주위에는 원래 이런 식으로 돈을 뜯어내는 사람이 많다며 거절을 했다.

할 수 없어 지갑을 다시 뒤지니 전화카드가 있어, 이것과 돈으로 바꾸면 안 되겠냐며 하자, 이들 일행 중 한 사람이 공중전화박스에 가서 남은 돈을 확인하고 나에게 돈을 주자, 그와 같이 매표소로 가 표를 사게 되었고, 우연히도 그도 나와 같은 시간의 기차를 타게 되었다.

그날 저녁, 부산역의 개찰구를 빠져나가는 도중에 또 우연히 그 사람이 마중 나온 듯한 가족과 만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나는, 이 사회가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 가혹한 세상을 본 듯했다. 그런데 그때 그가 눈물을 흘릴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 깨달은 것은 슬퍼서 눈물 흘릴 수 있는 것도 나에게는 축복이었구나...

사람이 슬프거나 기쁠 때면 눈물을 흘려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지만, 아마 눈동자조차 없으신 그는 어머님을 잃은 슬픔에 눈물조차 흘릴 수 없다는 신체적 결함, 그리고 설령, 그가 슬픈 눈물을 흘리셨다 하더라도 그 아픈 눈물을 따뜻하게 닦아 줄 수 없는 이 사회.......
그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데..... 

말없이 역 앞 버스 정류소를 향해 걸어가던 나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그 해 추운 겨울의 기억은 이처럼 살면서 장애에 관한 소식을 접하면 늘 떠올리는 단골 기억이다.

이제 한국은 추석명절 연휴가 벌써 끝났지만 그간 인터넷을 지켜보니 어떻게 한복을 잘 입어야 하느냐, 남은 차례음식을 어떻게 잘 처리해야 하느냐,  오랜만의 연휴라 고향 대신에 해외여행지로 어디가 인기가 있느냐..... 등의 신명 나는 명절 기사가 많이 솟아지는 반면, 점점 이런 장애올림픽 기사처럼, 부족하고 없어서 어려운 자, 그래서 힘들고 외로운 자에 대한 기사들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지고 있다는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다 내가 잘 먹고 잘 살면 "행복한 세상"이라 생각하는 것도 좋고 당연히 추구해야 하지만, 이런 어려운 남을 생각해 보는 작은 마음이라도 가져본다면 "아름다워 살 만한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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