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방을 찾는 어느 흑인 가장의 이야기

당당한 흑인 가장의 울부짖음

by Eric

현재 오하이오주에 사는 올해로 72살이 된 James White라는 흑인 할아버지가 TED 강좌 (한국의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15분)" 같은 것)가 주최한 강연에서 백인이 대부분인 청중들을 향해 본인이 18세였던 1961년의 경험담을 아래와 같이 엮어 가는 것을 들었다.

당시 아이다오 주의 공군부대에서 첫 근무 발령을 받고 일하자마자, 자신과 떨어져 살고 있는 부인과 갓 태어난 딸을 데리와 부대에서 같이 살기 위해 집을 찾고 있다는 것을 부대 총무과에 의뢰하자, 동료직원들은 걱정할 필요 없다며, 아파트 리스트와 전화번호를 건네주자 여러 군데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화상으로 방이 있다는 것을 아파트 사무직원과 확인한 후, 직접 찾아오라고 해 가 보지만, 그가 흑인이라는 것을 이내 알아채고는 엉뚱한 핑계로 거절하고, 전화번호를 남기면 빈방이 생기는 대로 연락을 준다고 했지만, 정작 그에게 연락을 주는 데는 한 군데도 없었다.

그래도 가족과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을 포기할 수 없어, 주거용 트레일러를 겨우 구입해 그 트레일러가 놓인 캠프에서 머물려고 하지만, 그가 만일 거기서 살게 되면 이미 있던 백인들이 다 나가버릴지 모른다며 그것도 거절 당해, 결국 시 외각의 세탁시설도 칸막이도 하수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허름한 곳으로 옮기고서야 그는 가족을 부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4년 후, 다른 부대로 전근 발령을 받고 아이다오주에서 자신의 어머니, 아내, 그리고, 딸을 데리고 펜실베니아주까지 장장 2300여 마일을 그가 장만한 트레일러로 운전을 하다, 잠을 청하기 위해 고속도로 선상에 있는 "Vacancy" (빈방 있음) 이란 불빛 간판을 보고 괜찮은 모텔에 들어가 손님을 받고 있던 카운터에 방을 구하려 하지만, 그 모텔의 직원은 방이 없다고 한다. 로비 주위를 둘러보자 그와 카운터 직원이 나눈 얘기를 듣고 있던 다른 백인 손님들도 못 들은 척 무시해 버렸다.

역정이 난 그는, "그럼 왜 Vacancy라고 밖에 불이 깜박이고 있었냐?"라고 되묻자, 마지막 남은 빈방이 막 예약되었는데 불 끄는 것을 잊어버렸다며, 그가 보는 앞에서 밖으로 연결된 간판 스위치를 꺼버린다. 아무 항의도 못하고 낙담한 그는 모텔을 나와 주차장에서 그 날 잘 줄만 알았던 가족들에게 차마 거절당했다는 말은 못 하고, 차를 빼서 다시 고속도로로 나오려고 하는데, 빈방이 없다고 한 모텔의 "Vacancy" 간판은 다시 불이 켜지는 것을 백밀러로 본 그는 억장이 무너져 버렸다고 했다.

그는 당시 아이다오주에서 펜실베니아주까지 미 대륙을 횡단하는 그 긴 여정에서 그와 그의 가족은 레스토랑에서도, 호텔에서도, 그리고 모텔에서도 인종 차별당하는 똑같은 경험을 계속하면서 오게 됐다면서 쓴웃음을 지으며 청중들에게 담담히 전했다.

그러면서, 그로부터 53년이 지난 지금, 그는 지난 3달 동안 무기를 소지하지 않은 흑인 남자가 백인 경찰이나, 백인 경영주나, 아님 다른 백인에게서 8명이나 미국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는 충격적인 뉴스를 우연히 접하면서 자신의 손자들에게 "너희들는 차를 타면 이상한 행동을 절대로 하지 말고, 반드시 두 손을 핸들에 12시 각도로 놓고 경찰이 오기만을 기다려라...., 너희가 만일 경찰에 반항한다면, 다른 백인들이 반항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는 절망적인 충고를 해 줬다한다.

그러면서, 마지막 연설 부분에서 인종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하모니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할 거라는 결연한 각오로 그 연설을 마치며 서러움에 울먹이는 그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면서 나도 만감이 교체됐다.

미 행정부에서는 아시안 장관이 많이 나오고, 히스패닉계 대법관도 임명되고, 심지어 흑인 대통령이 나온 오늘날의 미국을 보면, 흑인 인권운동이 한창이던 60년대에 상황과 비교하면 정말 격세지감이지만, 극히 일부라고는 하나 아직도 공명정대의 엄정한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는 이런 불행한 일들이 여전히 발생하고, 아직도 완전히 뿌리 뽑히지 않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가슴 아프다.

일제 강점기에 오랜 기간 상해에서 임정 생활을 한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의 끝부분에서 백범은 이런 말을 두 아들에게 남긴 것이 기억난다.
"대한사람이라면 간 데마다 신용을 받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으로 낙을 삼는 사람이다...."

적어도 이 미국 땅에서 살아가야 할 우리 애들도 백범의 바람처럼 다른 미국인에게 신용을 받고 대접을 받기 위해서 아비인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또 하나의 숙제가 나에게 주어진 것을 새삼 뼈저리게 통감하고, 단일민족으로 그런 고민할 필요 없는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부럽다ㅡ..

아래는 James의 당시의 경험담을 대중 앞에서 전하는 그의 영상.
https://www.ted.com/talks/james_a_white_sr_the_little_problem_i_had_renting_a_house?languag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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