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3학년 때니 벌써 20년도 지난 어느 가을 새벽의 애기다. 10월 중순 학교 대학 축제로 1주일간 수업이 없고, 내 생일도 겹치자 문득 "어머니는 아들 없이도 과연 생일을 챙길까?" 궁금하기도 하기도 하고, 그 해 여름 방학 때 다음 학기 학비를 모으느라 아르바이트만 하다 보니, 어머니를 일 년 가까이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생일날 아침에 비수기 비행기 값으로 한국에 몰래 가 보기로 했다.
딱히 선물을 사 갈 만한 돈도 없고 해서, 그전에 국제전화로 일본 사람들은 소뼈를 다 버린다고 어머니에게 얘기하자, "한국은 고깃값보다 비싼 게 소뼈니 들고 오면 곰국 해서 먹기 좋겠다"라는 말을 들어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유학생 기숙사 근처의 식육점 주인에게 부탁해서 소뼈를 들고 갈려했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오전인 데다, 공항까지 3시간이나 걸리니, 아침 출근시간을 피해서 새벽 첫 전철을 타기 위해 자는 둥 마는 둥 이른 새벽에 일어나, 여행가방에 차곡차곡 채운 소뼈가 족히 40kg가 훨씬 넘게 육중했지만, 뼈를 공짜로 얻었다는 기쁨과 어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실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집을 나설려니 공교롭게도 가랑비에 안개까지 자욱이 끼였다.
그렇다고 이른 새벽이라 택시 잡기도 힘들고, 돈도 아껴야 해서 한 손에 우산을 다른 한 손에는 가방을 끌고 30분 정도는 걸리는 전철역을 향하는데, 마음은 급하고 바닥은 아스팔트라고는 하나 울퉁불퉁하고 언덕도 있고 하다 보니 가방 무게를 못 이겨, 그만 바퀴 하나가 부러져 버리고 말았다.
아뿔싸! 이러다 비행기를 놓치면 어떡하지!! 또 이륙 전에 짐 검사대를 통과해야 하는데, 심사관에게 설령 소뼈라 설명해도 배고픈 아프리카 난민도 안 먹는 소뼈를, 게다가 일반 여행객이 마약 가루도 아닌 다량의 정체불명의 뼈를 밀반출하는 것, 육안으로 보이는 이 피 묻은 생뼈가 소뼈인지 어떤지 확인까지 하려면 수의사나 의사가 확인해야 하는데 시간이 걸려 비행기를 놓칠 수도....
전대미문의 나리타 공항 건립 이래 최초로 살아 있는 희귀 동물도 아니고 동물 뼈 반출 사건으로 일간지에 웃음거리라도 되는 희대의 기사가 올라가지는 않을까? 한국은 개 잡아먹는 야만국가니 어쩌니 하는 판이었는데 멀쩡한 학생이 소뼈를 들고 갈려고 하는 저의가 뭔가... 등등 이런 게 기사 거리라도 되면 어쩌나?? 이런 짧은 시간에 별 황당한 상상까지 다 해봤다.
그리고, 설령 무사히 통과하더라도 이번에는 한국에서 동식물의 반입을 금하는 입국 세관이 있지 않는가!!... 별 생각이 들면서 소뼈를 단순히 귀한 식자재(?)로만 여기고 기특한 아이디어라 생각했던 "소뼈 운반 작전"이 졸지에 지나친 효심(?)이 불려 온 무모하고 황당한 작전임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결국 뼈를 포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뼈를 도중에 버려야 하는데, 버려진 뼈를 사람 뼈로 오인하고 경찰에 신고라도 들어가면 어떡하지? 투명 비닐봉지에 내 지문은 선명히 묻어 있을 터이고, 유학생이라도 예외 없이 외국인 지문등록을 해서, 경시청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다시 집으로 되돌아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촉박했다. 그러던 중 문득, 아 조금만 더 가면 전철역 가기 전에 큰 하천이 있지, 빨리 다리를 건너 인기척이 없을 때 뼈를 하천에다 내다 버리자, 그럼, 모든 게 깔끔히 끝난다....
지금 기억하면 청계천보다는 족히 한 2배는 높아 보이는 역 근처의 하천가에는 원래 전철 타는 사람들의 출퇴근용 자전거를 세워두는 풀이 많은 곳이었다. 이윽고, 바뀌가 고장 난 가방을 반은 들고 반은 끌고 구석 쪽으로 가서 테이프로 단단히 밀봉한 비닐봉지를 채로 버리면 공기가 있어 떠버린다. 그래서, 손으로 일일이 뜯어 소뼈를 하천에 주섬주섬 투척하기 시작했다.
동이 트지 않아 아직 어둠이 짙게 깔린 비 오는 새벽녘. 어느 건장한 청년이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아 가며, 큰 가방에서 허연 뼈를 빼내어서 도랑으로 숨소리를 몰아가면서 던지는 장면.. 이건 누가 봐도 한 여름의 공포영화에 나오는 장면 그 이상이다..
아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것들만 버리면...
빨리 버리자.. 빨리..
이렇게 얼마 안 남은 뼈를 하천에 열심히 던지고 있는데...
아! 순간적을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어떤 아줌마가 영문도 모르고 룰라 룰라 어둠을 헤치고 첫 차를 타려고 자전거를 타고 주차시키려 오는 것이었다. 순간, 흐릿한 자전거 불빛에 비쳐, 그녀는 나의 팔에 들린 굵고 허연 뼈를 봤고, 나도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얼굴을 잽싸게 돌리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아줌마는 소스라치듯 놀라 자전거를 꺾어 어디론간 달아나 버렸다. Oh my god.. 분명 그냥 넘어갈 리가 만무하다. 신고정신 투철한 일본 사람이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당시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바로 당장 신고가 안 들어갈 테니 시간은 그나마 벌 수 있었다. 파출소가 좀 멀기는 하지만, 공중전화를 신고를 하면 어떡하지...
아니, 내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면 그럴 정신도 없이 그녀는 일단 멀리 피신부터 할 게야..
그래 맞아.. 아아... 빨리 이 황당한 현장을 떠나, 첫 차를 타고 떠나자 한국으로 날라 버리자........
머릿속이 멍해지고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남은 뼈도 풀 속에 휙 던져 버리고 가벼워진 가방을 옷가지랑 다시 주섬주섬 챙기고 잠그는 둥 마는 둥 역으로 줄행랑을 쳤다.
이런 새벽이라 평소와는 달리 한 명의 역무원이 개찰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최대한 숙이고 옷깃을 여미며 전철 정기권을 빨리 보이고는 황급히 플랫폼을 내려가 무인 카메라를 피해 기둥 뒤에 숨어서 숨을 헑덕이며 기다리다 첫 전철이 플랫폼에 들어오자 날래 타고 자리에 앉았다...
휴우.. 아아 살았다. 이제는 빨리 사람 많은 요코하마 역에 도착해 나리타행 급행열차를 타면 된다. 왜 이렇게 오늘 아침은 천년처럼 느껴졌는지.... 한참 안도의 한숨을 몰아 쉬는데, 맞은편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저 사람은 약간 내가 어색해 보여도 영문을 알리가 없다.. 아 통쾌하다.. 전철아 빨리빨리 달려라...
지금 생각하면 하나의 에피소드로 넘길 일이지만, 2시간 반 남짓한 비행시간. 기내에서 조차도 다시 돌아올 날이 걱정되어 그 아줌마가 신고는 했을까? 그럼, 행여 입국이 거부되면 어떻게 하나 등등 별 걱정을 다 했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김해공항에 내려, 당시 단층 셋집 살았던 우리 집에 닿자마자 부엌에 몰래 들어가 보니, 가스레인지 옆 큰 냄비에 미역국이, 밥솥에는 찰진 찰밥이 담겨 있지 않는가!!!
그 순간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굳이 없는 아들 생일밥 챙기지 않는다고 누가 욕할 사람도 없는데, 그렇다고 아들이 와서 밥 먹는 것도 아닌데, 어머니는 그 해도 어김없이 생일밥을 따뜻하게 차려 놓으신 게다. 이내, 옥상에서 장독대를 손질하던 어머니를 뒤에서 소리 소문 없이 안고서는 "어머니 저 왔어요" 하고 놀래 주며, 소리친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올해로 외국생활 28년.
아들 없는 그 생일날마다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당신이 손수 지어 오신 아들의 생일 미역국. 그러나, 그 정성 담긴 당신의 미역국은 재작년 11월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더 이상 어머니는 그 생일밥을 차려 주지 못하신다.
한해 더 먹어서 서러운 생일이 아니라, 어머니 없는 생일이 한 해 두 해 지나 세월이 흐르면, 당신의 기억도 아스라니 잊힐까 봐 서러워지는 게다. 지금은 어머니 전화번호도 이젠 가물가물하다.
내 어린 자식새끼들에겐 지극 정성으로 매년 생일마다 사다 준 생일 케익과 생일 선물, 또 매번 불러 준 생일 축하곡 부르면서 요란법석을 떨었지만, 정작 홀어머니 생신에는, 음력이라 매년 틀려 챙기기 어렵다는 핑계로, 외국에서 바삐 살고 있다는 사정으로, 시차가 전혀 틀리다는 이유 등으로 부끄럽게도 제대로 차려 드리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당신 살아생전,
당신의 생일날에 그 흔한 생크림 케익 한번 못 사드렸고,
당신 앞에서 촛불 한번 시원하게 불어 드리지 못했고,
생일 축하곡 한번 제대로 불러 드리지 못했고,
비싸지 않은 선물 한번 정성 다해 못 해 드렸고,
남들에게는 수없이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진정, 당신에게는 "낳아 주셔서 고맙습니다"란 말 한마디 따뜻이 전하지 못했다.
당신 없이는 내 생일도 있을 수 없건만, 내가 잘나 맞이하는 생일인 양, 착각하면서 미련하게 그렇게 살아만 왔었다. 마누라 생일도 당연히 챙기고, 친한 친구 생일도 챙기곤 했지만, 정작 챙기고 챙겼어야 했고, 그래서 축하받아 마땅할 당신의, 당신의 생일날이나 어버이날을 챙기는 건 옵션이라 생각만 했지, 제대로 챙겨드린 기억이 미안하게도 나에게는 없다......
늘 공기가 있어 숨 막힌 줄 몰랐던 것처럼,
항상 물이 있어 목마른 줄 몰랐던 것처럼,
언제나 45년을 당신과 같이 살아왔기에,
당신은 평생 나와 함께 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살았었다.
미련 곰퉁이 바보같이...
오늘 음력 10월 1일. 문연듯 어머니의 거친 손으로 미역 치대여 홍합 넣어 끓인 따뜻한 미역국 한 그릇이 유독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