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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늠 Jun 19. 2022

행복의 지렛대와 새우깡

『행복의 기원』을 읽고 - 서은국 / 21세기 북스


 한글을 읽고 있는데 한 글자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배경지식이 부족해서 책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저자가 자신의 지식에 취해 다양한 독자층을 배려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새롭게 제기되어 연구 중인 학문적 이론을 대중에게 설명하는 학자는 두 부류인 것 같다. 쉬운 내용을 어렵게 치장하든지,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쓰든지. 뉴턴은 천체의 궤도를 수학적으로 설명하고, 중력의 개념을 소개하면서 ‘어중이떠중이’가 다 이해하지 못하게끔 일부러 어렵게 썼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서은국은 행복학의 뉴턴 같은 에드 디너에게 수학한 심리학자다. 그가 쓴 『행복의 기원』은 쉽고 재미있다. 책의 골자는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인간이 왜 행복을 경험하는가이다. 


 우주와 지구가 움직이는 원리를 안다고 해서 우리 삶이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그저 자연의 이치를 알고 누군가는 겸손함을, 누군가는 새로운 걸 앎에 기뻐할 뿐이다. 행복도 그렇다.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원리를 안다고 해서 뚜렷한 삶의 변화가 생기진 않는다. 


 책에 소개된 실험 중, ‘쥐의 학습행동 연구’가 있다. 연구를 수행한 신경과학자들은 쥐가 뇌의 쾌감센터를 자극받았던 장소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연구자들은 일부러 쾌감센터를 자극할 수 있는 지렛대를 만들었고, 쥐들은 그 지렛대로 가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1시간에 무려 7천 번 지렛대를 두드리다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쥐’가 나오기도 했다. 

 인간이 죽음을 불사하고 지렛대를 두드리는 쥐와 다른 게 뭘까. 누군가는 혐오스러운 사진이 전면에 인쇄되어 있어도 담배를 피우고, 인생이 망가질 걸 알면서도 마약을 하고, 범죄를 저지른다. 나 또한 허한 몸을 보신하기 위해 한약을 복용하면서도 금기 음식인 커피를 끊지 못한다. 인간관계는 이성의 힘이 압도적이어야 지속 가능하지만 내 몸을 위한 운동과 다이어트에 대해서는 늘 본능이 이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행복의 지렛대가 작용하는 버튼이 나에게도 이롭고, 남이 보기에도 흉악하지 않아야 떳떳하게 눌러댈 수 있다. 


 태극기를 바라보고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라고 암송해야 했던 시절에 초등학교를 다녔다. 내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이유가 있으니 그 책무를 다하자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린이가 되어야 했지만 난 잠이 많았다. 내가 행복을 느끼는 행동은 대개 경제 활동에 쓸모가 없는 행위였다. 돈도 안 생기는 짓으로 내 삶을 채우고 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어수룩한 사람이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여겨졌다. 아니라고 따져봐야 까칠한 인간으로 취급받을 게 뻔하니 묘한 웃음을 짓고는 다른 주제로 대화를 돌리고 만다. 


 내 행복의 지렛대는 문화다. 그중에서도 책의 비중이 크다. 저자 서은국은 책에서 새우깡을 받아먹기 위해 서핑하는 개의 예화를 소개한다. 책을 읽고 정리하고 내 느낌과 평가를 덧붙여 타인과 공유하고 공감받을 때 느끼는 성취감. 그 순간 나는 새우깡 하나를 받아먹는 개처럼 행복하다. 달콤하고 짭조름한 과자를 손에서 놓지 못하면 과도한 당과 밀가루 섭취로 인해 몸에 쓸모없는 지방이 쌓일 뿐이지만, 내 마음에 주는 새우깡은 나를 웃게 한다. 그 감정을 계속 느끼고 싶어 난 책을 읽고 얘기할 곳을 찾아다니고 글을 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웃으며 음식을 먹고 이야기하며 살 수 있는 삶. 그런 시간을 가끔 갖는 나는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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