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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한 뇨뇨 Feb 27. 2022

기록하는 삶의 중요성, 인생의 의미 찾기

2주 전 새벽 독서모임에 참여하기로 했던 진아 님은 갑작스럽게 참여하지 못했다.

봉침을 맞고 아나필락 쇽에 빠진 아버지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큰 병원으로 이송되셨다고 했다.

같은 독서모임 회원들은 그녀의 아버지의 회복을 마음으로 빌면서 소식이 전해지길 바랐다.

며칠이 지나도 차도가 없으시던 그녀의 아버지는 결국 이번 주 금요일 돌아가셨다는 비보가 들렸다.


아직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연세가 든 분도 아니었고, 얼마 전 그녀의 인스타에서 봤던 가족사진이 떠올라 마음이 더 아려온다. 그녀의 가족들 중 누구 하나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허망하게 아버지가 돌아가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독서회 회원들도 회복되실 거라고만 믿었다.


슬픈 소식은 연달아 들렸다. 다음날, 평소 책을 통해 정신적 스승으로 삶고 싶었던 이어령 교수님이 별세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두 달 전 그분의 책을 읽고 죽음과 삶에 대해 더 고민해 본 시간이 있어 더 안타까웠다.


그 책에서 ' 시인 이성복은 스승은 생사를 건네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생사를 공부하는 사람이 스승이'라 했다. 암에 걸려 투병 중이었던 선생님은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 내년 삼월이면 나는 없을 거야."라고 이야기했지만 선생이 돌아가시기 몇 달 전 이 책을 볼 수 있어 행운이기도 했다. 나는 봄은 기다리면서도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을 볼 때마다 3월엔 정말 선생님이 돌아가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022년 2월 27일 이어령 선생님은 그렇게 돌아가셨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마지막 모든 에너지를 담아 이 책에 더 무엇인가 남기려 하지 않았나 생각도 들었다. '메멘토 모리'라는 끊임없이 하면서 자신의 삶을 매 순간 정리하고 계셨을 것이다.


오늘 새벽 지역 독서모임에는 효정님 한분만 들어오셨다.

그분은 <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라는 책을 소개해 주셨다.

1860년에 태어나 1961까지 101세를 살아온 모지스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이때의 미국 시대 상황은 우리 할머니 세대가 살아온 남존여비 사상과 다르지 않을 만큼 여성들에게 혜택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녀는 평생을 농장 아낙으로 살면서 소일거리 삼아 자수를 놓기도 했고,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80년에 개인전을 열고, 92세엔 자서전을 쓴다. 100세에 세계적인 화가가 된 모지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책은 옆집 할머니의 이야기처럼 사소한 이야기였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역사의 한 순간들이 그대로 느껴졌다. 전화가 처음 들어오고, 비행기, 자동차가 발명되고 하나씩 사용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물건, 순간까지도 먼 후대의 사람들이 보면 역사의 순간을 하나씩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효정님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모지스 할머니는 ' 나는 참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남편을 40년 전에 미리 보내고 자식들까지 미리 떠나보냈지만 시련을 훌훌 털어 버리는 방법을 알았고, 느리지만 그대로 좋은 시간을 살아가는 긍정형 인간이었다.그리고 할머니는 그림을 그리면서 5살 때의 기억부터 현재까지의 기억들을 더음어 가며 그림으로 자신의 소중한 순간들을 회고하기 위해 기록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바쁘게 사느라 행복할 시간이 없는 현대인의 삶이 비교되는 순간이었다.


효정님의 책 소개를 들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김형석 교수님의 <100을 살아보니> < 김형석의 인생 문답>과 비슷했다. 100세가 넘도록 인생의 수많은 굴곡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00세가 넘은 그의 얼굴은 갓 태어난 어린아이와 같았고, 긍정적인 모습 또한 그러했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지금이 가장 좋고 행복하다는 이야기까지.


독서 모임으로 줌에서 만나 그렇게 친하지 않았던 우리 둘은 한 시간 동안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모지스 할머니, 김형석 교수님, 이어령 선생님 그리고 각자 할머니의 이야기,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서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났다. 생각만 해도 코끝이 찡해지는 나의 할머니.


할머니는 60 무렵 한글을 배우시고, 매일 밝아오는 미세한 새벽 빛을 친구삼아 성경책을 연필로 그어가며 책이 떨어질 때까지 30년을 읽으셨다. 처음엔 불경 책이었지만 교회 다니던 숙모가 큰 글씨 성경책을 선물하면서 10년 넘게 읽었던 불경 책을 두고 20년을 한 성경책을 매일 읽었다.  돌아가시고 나서 성경책을 챙기지 못한 것이 지금에서야 아쉽다. 내가 교회를 다니지는 않지만 성경책이 소중한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할머니는 우리 손자 손녀들에게 자신의 일생이 담긴 책을 선물하셨다. 70 무렵, 아니 환갑이 지나 자신의 수의를 준비하고, 영정 사진을 찍어두고, 70에 자신의 인생을 정리한 책을 손자 손녀들에게 나눠주셨다.

가끔씩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때는 그 책을 꺼내서 한 번씩 읽어 본다. 핸드폰과 사진첩에서 문득 출현하는 할머니의 추억들은 기록으로 두었을 때 가장 빛을 발휘했다.

한 사람이 아주 그리워질 때 우리는 그가 쓴 기록을 보고, 함께 했던 사진을 보면서 추억을 떠올린다.


오늘 효정님과 100세의 삶을 살아가는 인생의 멘토들과, 모지스 할머니, 나의 할머니처럼 유명인은 아니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걸어간 사람들을 기억하며 짧지만 농도 깊은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나눴다.

내 삶의 희로애락의 순간순간을 기록하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기록을 떠올려 보면 어릴 때 나는 일기를 아주 꼼꼼하게 썼다. 그리고 인생을 살면서 행복하고 좋았던 순간에 항상 사진을 찍어두었다. 며칠 전 아이들 사진을 정리하면서  2년 치의 사진이 다 사라진 걸 보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18개월 차 아이들 키우느라 그날을 즐길 여유도 없이 힘들게 살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정도라 사실 기억 속에도 가물가물했다. 둘째가 학교를 가게 되고 다시 그때가 그리워 그 순간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가장 예뼜던 4살 5살의 사진이 사라져 버렸으니 추억의 조각이 떨어져 나간 느낌이었다.

보고 싶어도 내가 기록한 것들이 없으면 남겨진 사람에게 어쩌면 추억을 뺏어 버리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어른들의 느린 삶 속에서는 그날의 행복을 알아가는 순간들이 있었다면 앞만 보고 미친 듯 달려가는 우리 삶엔 행복을 찾을 시간이란 없다. 가족과 함께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기록으로 더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독서 모임에서 이어령 선생님의 읽고  내 친구는  엄마와 더 사진을 찍지 못했고,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게 한이라 하며 통곡한것이 떠오른다.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고 나니 엄마와 함께 했던 순간은 떠오르지만 점차 희미해지고 다시 만날 수 없어 슬픈 것이었다.


오늘 우리 두 사람은 삶과 죽음에 대해 한 시간을 꼬박 이야기했다.

흐릿하게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 기억, 나의 할 일들이 흩어진 구슬이 한 줄에 꾀이듯한 시간이었다.

예전에 읽은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 책을 읽으면서 로고 세러피에 관한 글을 보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좌절하고 의미 없는 존재로 생각하는 어른들의 삶을 재조명해드리는 것

각 개인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 의미 있는 존재였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

유명인이 아닌 내 주변의 ,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어르신들의 인생을 반짝이게 해주는 것.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선전을 써드리는 것..

아직은 구체화시킨 것은 없지만 머지않아 나는 현실로 실현시킬 것이다.

떠나는 사람에게도, 남겨진 사람에게도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알고 있으니까.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고, 글로 써보고, 사진으로 남겨 나만의 자서전을 쓴다면 언제든지 남겨진 사람에겐 값진 보물이고, 떠나는 사람에겐 치유자 , 삶의 완전한 마무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새벽 독서 모임에서 최근 연이어 들리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보면서 한동안 쓰지 못했던 브런치에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또한 내 생각을 붙잡아 두고 싶은 욕심이고, 10년 후 지나 내가 내 생각처럼 행동하게 있었는지 돌아보는 시간도 될 것이다.

모지스 할머니의 <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김형석 교수님의 < 백세를 살아보니> < 김형석의 인생 문답> 할머니의 자서전을 읽고 죽음을 기억하고 , 참된 삶을 다짐해본다. 그리고 기록하는 삶, 내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항상 지금이 가장 행복하고 늦은 때란 없음을 기억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너무 바쁘게 사느라 오늘의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는 삶을 경계하며 살기를 다짐해 본다.




(마지막으로 진아님의 아버지, 이어령교수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곳에서는 편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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