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사드야 가라. 오늘이 사드뽑기 좋은 날.
SO-SO 한 이야기(15)
우리의 소원은 ‘사드야 가라’, 오늘이 사드뽑기 좋은 날..
‘따라라라 라라라라~~라 빠^빠~ 빠^빠~ 빠^빠~ ’가 끝나는 순간에 순식간에 “사드야 가야”를 음율에 맞춰 추임새를 넣었다. 그리고 나면 소성리엄니들로 구성된 민들레합창단의 ‘사드야 가라’ 노래가 시작된다. 파트별 역할을 나눠서 마지막 리허설은 평화촛불을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향하는 버스에서 다함께 불렀다.
음악감독 조선생님의 지휘에 따라 정가수의 기타반주에 맞춰 노래연습은 시작되었다. 목청을 돋우기 위한 ‘사드뽑고 평화심자’ 구호를 여러 번 외치고 나서야 구호외치는 소리만큼 입을 크게 벌리게 된다. 민들레합창단 단원들의 목소리는 크고 우렁찼다.
눈물은 아래로 흐르고, 밥숟가락은 위로 올라간다더니, 3월24일 토요일 아침, 용각어른의 소천소식을 접하고 눈물을 흘렀다. 때가 되면 배는 고팠다. 진밭지킴이활동을 마치고 때늦은 아침식사를 하러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마을회관 부엌에서 라면을 끓였다. 라면을 먹으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성주촛불 금점(가명)이 전화기에 대고 펑펑 울어댄다. 갑작스런 소성리 용각어른의 소천소식에 놀라고, 눈물 많은 규란엄니 생각에 슬퍼서 내게 전화를 했다. 전화기에 대고 속절없이 우는 금점을 위로해 줄 방법이 마땅치 않아 우는 소리를 들어주었다. 한참을 울고나서야 금점에게 그간의 용각어른의 고통스러웠던 병상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여리고 따스한 가슴을 품은 금점에게 위로가 될 거 같지 않았다.
금점과 전화를 끊고서야 불어터진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울먹거리던 것도 잠시였다. ‘후루룩 쭉쭉’ 어느새 젓가락은 라면가닥을 쥐고 올려 내 입안으로 넣어주었다. 눈물은 아래로 흐르고 젓가락은 위로 잘도 올라갔다. 내 눈에 눈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 뱃속에서는 ‘꼬르륵 꼬르륵’ 신호를 보내고, 내손에 쥔 젓가락은 라면을 입안으로 꾸역꾸역 밀어넣어 뱃속의 신호에 응답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체결로 한반도의 평화실현을 이룩하자는 평화촛불을 밝히는 날이다. 소성리도 며칠 전부터 버스를 맞춰 서울로 오를 준비가 분주했다. 오후 1시에 출발할 버스는 일찍 소성리에 도착했다. 소성리엄니들은 더 일찍 마을회관으로 집결해 버스에 올랐다. 시간을 맞춰 도착한 사람들의 마음이 더 바빠지는 이유다. 소성리 부녀회장님은 비닐봉투에 과자와 음료와 떡 그리고 심심풀이 사탕과 초콜릿을 담아 묶었다. 버스에 오른 평화촛불을 밝힐 탑승자들에게 간식을 한봉지씩 나눠주었다.
갓 스물을 넘긴 꽃다운 나이에 소성리의 남자를 만나 시집왔다. 부녀회장의 남편친구이고, 친구의 아내인 규란엄니. 둘은 40년지기 친구이고 이웃이다. 친구의 남편이 돌아가셨으니 그 곁을 지키지 못하고 서울로 향하는 부녀회장님 속이 얼마나 타고 있을까싶었다. 부녀회장님은 오히려 담담했다.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은 누구도 내색하지 않았다. 웃을 일이 있을때마다 웃어도 되나? 되물었지만, 웃었다. 떠들었다. 버스를 꽉꽉 채운 우리의 이웃이자 사드반대 투쟁을 해왔던 동지들은 화기애애했다.
그리고 서울이 가까워오자 민들레합창단은 무대공연을 하기 전 마지막 리허설을 했다. 음악감독님의 지휘와 정가수의 기타반주에 맞춰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오늘이 사드 뽑는 날’ 두 곡을 연습했다. 버스에 올라탄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불러 즐거운 노래교실이 되었다.
광화문 광장의 불청객이 되어버린 태극기와 성조기를 휘두른 사람들은 경찰에 둘려싸였다. 노동자와 민중의 투쟁을 방해하겠다는 결기가 엿보이는 스피커의 음향볼륨은 최대한 높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동해물과 백두산이’ 애국가가 그들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더이상 동해물과 백두산이 푸르고 닳도록 조국을 위한 충성은 맹세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노래는 박사모의 전유물이 된 지 오래고, 조국을 혐오하는데 충분히 기여하고 있었다.
서울의 공기는 뿌옇게 흐렸고, 바람은 찼다. 소성리 산골마을만큼이나 서울의 기온도 차가웠다. 남북간 - 북미간 소중한 대화의 동력을 이어 평화실현의 기회를 살릴 시민행동이 절실하다는 평화촛불의 취지에 맞춰 김천시민들도 버스를 맞춰 서울로 올랐다. 원불교와 천주교, 개신교 등의 종교인들, 핵대결과 전쟁을 끝내고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는 전국의 평화운동가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주요슬로건은 조건없는 북미대화재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실현으로 한미군사연습중단과 북핵미사일실험을 동시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소성리, 김천, 원불교의 가장 중요한 이슈인 사드뽑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자는 요구는 당장의 현실투쟁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열 마디의 말보다 노래 한 곡절로 우리의 절실한 요구를 알려내고 싶었다. 민들레합창단은 매주 수요일 노래연습을 해왔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노래에 외워지지 않는 가사로 재미있을리 만무했다. 소성리엄니들은 매일밤 야간시위를 하듯이 수요일은 노래를 연습했다.
처음엔 김용임의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의 음을 익히기 위해서 따라 불렀다. 그리고 사드반대의 의미를 넣어 앞부분에 ‘나이야 가라’를 ‘사드야 가라’로 개사했다.
지난 두달 동안 노래연습했던 결실을 맺기 위해 평화촛불 무대에 민들레합창단이 올랐다. 노래에 앞서 소성리 임순분부녀회장님이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했다.
“사드를 뽑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일입니다 한반도의 통일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일입니다. 북미대화가 재개된다고 떠들썩하지만, 사드가 배치된 소성리의 미군기지는 북미대화로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어야 할 지금 이 순간에도 삼월 말에 미군부대를 완성하기 위한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아직도 공사를 취소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소성리의 겨울은 시리기만 합니다. 소성리를 비롯한 김천시민들은 사드뽑는 투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드를 운영하기 위해서 공사를 강행할 때 여러분 소성리로 달려와주십시오. 사드가 운영되는 것을 함께 막아주십시오. 여러분들이 우리의 손을 잡아주신다면 우리 소성리주민들은 사드뽑을때까지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
‘사드야 가라, 사드야 가라, 사드가 대수냐. 오늘이 사드 뽑는 날. ’
개사는 간단명료했고, 입에 철썩 달라붙었다.
그리고 철부지 4050(40대와 50대 성주주민)은 ‘사드야 가라’ 추임새를 넣는 역할을 맡았고, 현명한 7080(70대와 80대 소성리할머니들)의 소성리엄니들은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 가사 ‘사드 뽑는 날’은 구호를 외치고 부드럽게 ‘사드야 가라~~’로 천천히 마무리하며 손을 흔든다.
대구 시국촛불 일주년 기념대회 무대보다 엄니들의 몸짓은 훨씬 여유로웠다. 이제 마이크를 입 가까이에 대고 노래를 불렀고, 반주가 시작되면 어깨가 저절로 흔들흔들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어댄다. 노래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우리의 소원은’으로 시작한 민들레합창단의 노래는 ‘사드야 가라’로 끝이 났고, 소성리민들레합창단은 324평화촛불을 시작으로 광화문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사드뽑고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그날까지 노래부르면서 투쟁할거다.
3월25일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