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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Nov 17. 2019

저항을 키우는 3박4일 순회투쟁2

 톨게이트 노동자 투쟁승리,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11월5일부터 11월8일까지 투쟁사업장 3박4일간의 순회투쟁을 하였습니다. 순회투쟁은 톨게이트 직접고용 시민대책위와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참여하였습니다. 3박4일간 기록입니다.          


자본은 망하지 않는 손쉬운 폐업

톨게이트노동자들이 9월 9일 공사로 들어갔을 때 다섯 개 노조가 공동투쟁을 하고 있었다. 민주노총 일반연맹 소속의 민주연합노조와 공공연대노조 그리고 경남일반노조와 인천일반노조의 조합원들이 있었고, 한국노총 톨게이트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있었다. 다섯 개 노조가 협력하여 서울고속도로 캐노피에서 80일 넘는 시간동안 공동투쟁을 한 것도 신기하지만, 공사로 내려와서 상당수가 건물안을 점거할 때 바깥 마당 구석구석에 텐트촌을 형성해서 노숙농성을 하는 한국노총 톨노의 조합원들이 있었다. 김천본사 건물 안 농성은 민주연합노조와 공공연대노조, 인천일반노조 그리고 경남일반노조의 조합원들이 골고루 모여서 9월9일부터 두 달여 기간을 넘기면서 점거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경남일반노조의 거점은 창원지역이다. 창원지역의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들은 투쟁사업장 3박4일 순회버스가 오기를 기다려 민주당 경남도당에서 톨게이트사태를 악화시키는 집권여당을 규탄하는 집회를 가졌다. 

틈새 시간이 남았다. 민주노총경남본부 건물의 강당에 모인 우리는 순회투쟁이 끝나는 마지막 날에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를 도로공사 김천본사에서 가질 예정이었다. 순회투쟁단의 해단식과 더불어 멋진 문화공연을 선보이기로 했는데, 의욕넘치는 톨게이트노동자 주영 씨가 ‘비정규직철폐연대가’를 몸짓선언에게 한창 배우고 연습할 때여서 우리더러 비정규직철폐연대가 몸짓을 하자고 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뒤에서 따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막상 한 소절씩 손동작과 발동작을 배웠더니 손을 쭉쭉 뻗더라도 각이 나와줘야 하는 동작이었다. 어슬프게 따라했다간 망신만 당할 게 뻔했다. 도저히 초보자들이 짧은 시간안에 배울 수 없는 레벨이었다. 이런저런 말들이 많은 가운데 전체 집단몸짓은 ‘내일의 노래’로 배우고 따라하기로 했다. 노동조합 사회에선 알아주는 몸짓패 아사히비정규직지회의 ‘허공’ 과 창원지역노동자몸짓패 ‘세모단’ 구성원이 함께 하고 있어서 초보자들은 뒤에서 잘 따라하기만 해도 괜찮았다. 거기다 이제 갓 민주노총으로 옮겨온 신출내기이지만 지금 한국에서 제일 잘 싸우는 톨게이트노동자들이 김천본사에서 날마다 몸짓연습을 하면서 베테랑이 되어있었다. 

문화공연 한 파트를 뚝딱 해결하고는 한국지엠창원공장으로 이동했다.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10월24일 하청업체 7개사에 대해 12월말까지 계약해지 통보를 한 상태이다. 주간 2교 근무는 1교대 주간근무로 전환하면서 비정규직 공정을 정규직으로 대체하겠다고 알려온거다. 생산물량이 줄어들 것을 예상하여 조치한 것이라지만, 사내하청 노동자 650여명 가량 대량해고를 예고했다. 지엠은 한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조건으로 한국정부로부터 8100억원을 지원 받았다. 그러나 지엠의 구조조정은 멈추지 않고, 오히려 구조조정 으로 인한 해고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정부는 국민혈세로 8100억원을 지원한 기업이 한국에서 무슨 짓을 해도 재제를 가하지 않고 오히려 해고 이후의 대책으로 취업알선을 이야기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엠비정규직노동자들은 올 연말에 벌어질 일들이 불안하기만 하다. 손놓고 당할 수만 없어 노조는 해고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화와 투쟁을 해보려고 노력한다. 

순회투쟁단은 오후반 출근과 퇴근 시간에 맞춰서 지엠비정규직노동자들과 함께 공장문앞에서 한참동안 선전전을 했다. 퇴근하고 나오는 노동자들은 발길을 멈추고 우리가 들고 있는 현수막 사이사이로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다. 지나가는 사람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을 붙잡아 선전지를 나눠주었다. 방송차에서 마이크를 집고 목청껏 이야기 했다.    

  

평범한 사람이 담대하게 투쟁하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쉴새없이 이동하고 사람 만나고 선전전하는 와중에 끼니는 꼬박꼬박 잘 챙겨 먹었다. 

울산으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청와대로 올라갔던 톨게이트 노동자 100여명이 문재인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면서 진격투쟁하던 중 경찰폭력에 의해 실신하고 쓰러져서 병원으로 후송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톨게이트노동자 일부는 민주당 이해찬대표 사무실로 점거농성 들어갔다는 소식과 또 다른 일부는 세종시에 있는 국토부 김현미 장관실로 점거농성을 들어갔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다. 김천본사 점거농성하고 있는 대오는 여전히 거점을 사수하고 있었다. 새로운 거점을 확보하고 투쟁전술은 변화하였다. 버스 안은 다친 동료의 소식을 듣고 침울했지만, 톨게이트노동자들은 과감하게 투쟁하면서 자신의 투쟁을 확대하고 있었다.  

울산의 노조운동 단체들이 3박4일 순회투쟁단 울산순회일정을 웹포스터로 만들어 sns에 띄운 걸 발견했다. 울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거 같아서 버스는 신나게 달렸다. 저녁6시만 되면 어둠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울산의 북구비정규직센터가 간담회장소였다. 널직한 공간에 우리 대오와 우리를 맞이한 울산의 노동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현대중공업하청노동자, 현대자동차하청노동자, 현장조직과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자리를 가득 메워주었다.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울산지역의 노동자들은 톨게이트 노동자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톨게이트노동자들의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나눴다. 

“저는 톨게이트 직원들이 다 그렇지만, 노조활동 시작한 지가 일년 정도, 해고되서 투쟁한지는 겨우 5개월정도 되었는데, 투쟁이니, 동지니 이런 말이 엄청 낯설었어요. 우리 영업소에서 직원이 18명인데, 저빼고 다 자회사를 선택했어요. 저만 직접고용을 선택하고, 제가 엄청 강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는 나는 직고용갈거야. 그런 생각만으로, 누가 뭐라든, 아까도 이야기 들으셨겠지만, 밤 12시에도 찾아오고, 주말, 휴일에 공사직원이 찾아와서는 자회사로 가라고 회유하고 협박하고 힘들었어요. 그치만 제가 그 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서 끝까지 자회사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치 않게 제가 서울고속도로 캐노피 고공농성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81일을 살고, 올해는 왜 그렇게 비도 많이 오고, 태풍도 많이 오는지, 새벽 3-4시가 되면 자다가 비가 쏟아져서 이불이 젖어서 울면서 빗물을 털어내고, 태풍이 오면 저희가 캐노피에서 날아갈까봐 천막을 막 붙들고 있었어요. 제일 힘든건 화장실 문제였어요. 어떻게든 다 살아지더라구요. 그러면서 한국노총 톨노 위원장이 먼저 내려갔고요. 저 같은 사람은 판결을 못 받았고요. 지방은 노조가입한지도 얼마 안되고, 직고와 자회사 가르면서 노조를 시작해서, 노조가 뭔지도 모른 상태로 소송을 하면서, 진짜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2박3일만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되겠지 했는데, 81일을 캐노피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게 한국노총의 야합에 동의할 수 없었고, 저는 그 합의문에 동의한다는 것이 저한테 너무너무 미안했습니다. 제가 임시직 기간제 갈려고 그렇게 싸운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민주노총으로 와서 끝까지 투쟁해서 직접고용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요. 기회가 될 때마다 순회투쟁하는 거처럼 연대하면서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자신은 평범한 주부였다고 소개한 투쟁하는 톨게이트 노동자 명선씨는 뜨거운 뙤약볕 아래 서울고속도로 캐노피 고공에서 81일을 살아낸, 결코 평범하지 않은 담대한 사람이었다.    

    

우리의 투쟁은 연대로서 지속된다.

여느 날과 다름 없이 새벽5시에 주변은 물이 쏟아지는 소리,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6시10분까지 버스로 탑승하기 위해서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순회투쟁단을 실은 버스는 현대중공업 정문에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준비한 선전지를 챙기고,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내렸다.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아침 선전전을 시작했다. 새벽 6시 30분인데도 오토바이 군대가 지나갔다. 신호등 건널목에 서있는 인파들 사이로 선전전을 하는 우리편이 보였다. 대단히 많은 사람들은 어디서 왔는지 현대중공업 정문으로 꾸역꾸역 들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현대중공업의 출근시간은 몇시인지 궁금했다. 8시라고 한다. 이렇게 일찍 출근하는 이유야 알 길 없지만, 사내에서 아침식사도 해결하고, 헬스클럽이 있어서 운동하고 샤워하고 밥먹고 작업장으로 가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정규직이거나 사무직원이라면 가능할 수 있을텐데, 현장직이라면 가능할까? 미처 중공업에 대해서 잘 파악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선전전을 마치고 현대중공업노조에서 대접해준 아침식사로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톨게이트노동자 투쟁은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으면서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을 만나러 이동했다. 

톨게이트노동자 갑순씨는 아이들 키우는 동안 가정살림만 해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일이 첫 사회경험이나 다름없었다. 노조도 한국노총 톨게이트노조에 들어가서 경험하고 민주노총으로 옮겨왔는데,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아사히비정규직지회와 경산의 택시노동자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들은 서울고속도로 캐노피고공농성과 청와대앞에서 노숙농성을 해보기도 했고, 지금은 공사를 점거하고 있지만, 자신들보다 더 열악하게 농성하는 곳이 많다는 것을 순회투쟁하면서 보고 느낀 것이었다. 갑순씨가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의 오래되고 낡은 천막농성장을 보면 얼마나 놀랄까. 

울산과학대 김순자지부장과 조합원들은 여전히 농성을 이어가면서 순회투쟁단이 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농성장은 오래 되어 닳고 낡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를 농성투쟁을 대비하듯 벽 한 켠에는 생수병이 가득 쌓여있었다. 

장구 하나만 있으면 머릿속에 노래 천곡이 저장되어있어서 어디서든 노래 1000곡은 부를 수 있다는 김순자지부장은 입담도 대단하다. 사회자가 말을 짧게 해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으면 두 시간 동안도 쉬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을만큼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의 농성투쟁 6년의 사연이 술술술 나온다. 노조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싸웠던 이야기를 다 들을려면 두 시간으로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최근에 울산과학대와 협상이 있었나보다. 울산과학대 측에서 다른 좋은 곳으로 취업을 알선해주겠다는 안을 낸 모양인데 단칼에 거부했다는 소식이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은 2007년에  투쟁하다 해고된 적이 있었다. 그 때도 싸워서 일하던 곳으로 복직을 한 경험이 있다.  조합원을 쫓아내고 새로 채용한 청소노동자들이 있었지만, 울산과학대는 복직을 시킬려고 자리를 마련했다. 조합원들은 이겨서 학교로 들어갔다. 학교측이 해결할 의지만 있다면 지금 사람이 찼다고하지만 충분히 원직복직이 가능하다. 자리는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부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청소노동자들의 지난 6년동안의 투쟁은 자신들만의 힘으로 한 싸움이 아니다. 지역의 여러 노동조합과 전국의 수많은 연대자들의 후원과 보살핌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싸울 수 있었다. 그들이 후원하고 연대한 건 좋은 곳에 취직하라는 뜻이 아니다. 권리를 박탈당한 청소노동자들이 민주노조 깃발을 움켜지고 현장에 복직할 것을 소원했었다.

청소노동자들의 평균연령은 67세 이다. 익숙하게 일해왔던 곳으로 돌아가서 명예롭게 정년퇴직을 맞이하겠다는 소원이 무리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김순자지부장은 학교측에 경고했다. 

“내 당장 복직 안돼도 괜찮다. 나는 이 자리에서 늙어죽을 때까지 울산과학대 괴롭히면서 계속 투쟁할끼니까, 괴롭힘 당하고 싶으면 너거 마음대로 해라. 좋은 일자리는 젊은 세대들 한테 주고 우리는 학교에 청소하면 된다.”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 김순자지부장의 지난 6년 투쟁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해고를 당한 건 청소노동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청소노동자가 최저임금만 받으란 법도 없다.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일하러 나온 노동자들이 생활임금을 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다.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사람답게 살기 위한 생활임금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하고 거리로 내쫓은 울산과학대의 야만적인 노무관리 행태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청소노동자들이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명예를 회복하고자 하는 뜻은 노동자의 자존심을 세우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역시 가을여행은 바다다. 울산까지 와서 바다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순회투쟁단은 바다를 향해 달렸다. 주전이라는 곳이다. 모래 대신 몽돌이 몽글몽글 모여있는 해변가에 보라물결 순회투쟁단이 내렸다. 울산에서 후원금 봉투를 두둑이 만들어주셨다는 기쁜 소식과 바닷가에 온 김에 회는 못 먹어도 회덮밥과 물회 중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기쁨을 맛보았다. 


사진 : 황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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