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인물,기록>신장장애인 강성운 씨의 이야기를 듣고 쓰다.
“강성운 씨, 당신 장애인이지?”
“네 맞습니다.”
“장애인은 나가!”
포항의 시내버스를 운행하는 ㈜코리아와이드포항(이하 ‘버스회사’)의 총무부장과 노무차장이 갓 입사해서 버스 배차를 받은 강성운 씨를 불러놓고 대뜸 한 말이다.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은 강성운 씨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직장 상사한테 화내면 안 되잖아요. 막말하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저더러 장애인이라며 나가라는데 저도 화가 나잖아요.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더라구요. 해고도 절차가 있는데, 사람 뽑을 때는 애타게 만들어놓고. 이제 겨우 노선 파악을 다 했는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하니까, ‘뭔 말이 많아’ 그래서 제가 그랬죠. 이건 명백한 장애인 차별이다. 나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다.”
강성운 씨는 2019년 3월 6일 ㈜코리와와이드포항에서 1차 해고를 당한다. 그 길로 직접 국가인권위를 찾아가고, 노동위원회를 찾아가서 자신이 당한 장애인 차별과 부당한 해고를 알리고 진정했다.
“회사도 앗 뜨거라 했을 거예요. 정당한 사유도 없이 말로 해고를 했으니까. 3월 25일 회사에서 연락이 왔더라구요. 복직하라고 하는데, 애들 장난도 아니고. 나가라면 나가고, 들어오라면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정식으로 공문 써서 보내라고 했죠. 그래야 나도 속지 않을 거고, 그러니까 복직명령서를 대충 만들어서 보내왔더라구요. 그렇게 들어가서 일하다가 5월 10일 다시 해고 통보를 받았어요.”
버스회사는 박 모 면접관이 “건강상 문제는 없습니까?”라고 질문하였으나, 강성운 씨가 만성신부전증으로 매주 3회 혈액투석을 받으면서도 이 사실을 감추고 “문제없다”라며 거짓 대답을 하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강성운 씨의 주장은 달랐다.
“회사에서 채용 면접 볼 때, 저보고 묻더라구요. 어디 아픈 데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지만 주 3회 혈액투석을 합니다. 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다음에 면접 끝나고 나서 총무과 차장과 커피 한 잔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서, 차장님 사실 저는 병원을 가야 합니다. 괜찮죠? 하니까, ‘네 괜찮죠. 2교대니까 문제없습니다’라고 했거든요.”
버스회사 측의 주장과 강성운 씨의 주장이 엇갈린다.
노동위원회는 버스회사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강성운 씨를 해고한 것이 합당하고 판단했다. 그러나 2021년 1월 14일 서울행정법원은 신장 장애를 이유로 한 해고는 부당 해고이고, 노동위원회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판결했다. 강성운 씨는 해고당한 후 2년여간 싸움 끝에 부당 해고를 인정받았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혈액투석을 하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당연시되어왔다. 특히 대중교통 운전 노동자의 경우 관행적으로 퇴사시킨 게 사실이다. 신장 질환이 있는 당사자는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웠고, 계속 일하려면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했다. 이런 관행은 경북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가 버스회사가 강성운 씨를 해고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정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강성운 씨는 기존의 관행을 거부하고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행정소송에서 승소했다. 신장 장애 노동자 해고 관행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드러났다. 혈액투석을 해야 하는 ‘내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이슈화된 사례이다.
특히, 지난 1월 14일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혈액투석(신장 장애)을 이유로 한 채용 거부는 차별이며, 업무 특성상 채용할 수 없을 경우라도 그 사유를 사용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강성운 씨가 노동부의 구직 광고를 보고 ㈜코리아와이드포항를 찾아간 때는 2018년 10월이었다. 1차 서류면접에 통과하자 버스회사는 노동조합 조합장 추천서를 받아오라고 했다.
“버스회사에선 의무적으로 노동조합 가입원서를 쓰지 않으면 입사가 안 되더라구요. 노조 찾아가서 가입원서 쓰고, 조합장 추천서 받아오면 다시 2차 서류면접을 보는 거예요."
2차 서류면접까지 통과한 강성운 씨는 버스회사 임원들과 면접을 보았고, 사장과도 면접을 보았다. 2019년 2월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을 때까지 4개월이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버스회사 채용 경쟁이 엄청 쎕니다. 저는 몇 대 몇인 줄은 모르지만, 그때 총무담당자가 책상 위에 이력서가 쌓인 걸 가리키는데, 6~70센티는 되겠더라구요. 그 정도 종이 두께면 2~300명은 되지 않을까 싶더라구요.”
2019년 2월 11일은 강성운 씨가 첫 출근하는 날이었다. 신입사원을 위해서 버스회사는 친절교육, 예절교육, 안전교육, 노선 교육 등 각종 교육을 했다. 강성운 씨는 시내버스 전 노선을 파악한 후에 버스 운전대를 잡았다. 직접 운행하기 위해 실전 교육도 받았다. 그리고 배차를 받은 시점에 1차 해고를 당했다. 3월 26일 버스회사로 복직해서 예비기사로 버스 운전대를 잡을 수 있었다.
“저는 그냥 주어진 일을 했어요. 배차해 주면 일 한 거밖에 없어요.”
주 3회 혈액투석을 하면 버스 운행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버스회사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복직한 강성운 씨에게 운전이 아닌 다른 보직을 맡겼어야 했지만, 여전히 버스 운전기사로 발령 났다.
만성신부전증은 치료를 받지 않으면 피로, 인지 기능 장애, 운동능력 감소 등의 징후를 보인다. 그러나, 강성운 씨처럼 의사의 진료와 투약치료 방침대로 정기적으로 주 3회 혈액투석 치료를 받고 잘 관리하면 일상생활이나 직장 생활을 하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혈액투석하는 사람은 등산을 못 합니다. 강제적으로 단시간 내 수분을 빼버리니까, 피부가 오그라들고, 근육이 당기고 수축해서, 잘 못 움직이지요. 그런데 저는 계속 산을 다녔어요. 처음엔 5분 걷다가, 10분으로 늘려서 걷다가, 매일 2분씩 늘려서 그렇게 꾸준히. 일주일에 세 번은 산을 갔어요. 지금은 우리 동네 뒷산 정상까지 비장애인들이 2시간 30분 걸리는데 저는 2시간 만에 올라가요. 이게 혈액투석하고 회복하는 데도 엄청 도움이 되더라구요.”
버스 운전은 주간 2교대 근무를 하므로 아침에 출근하면 저녁에 병원으로 가고, 오후에 출근하는 날은 오전에 병원을 다녀올 수 있는 좋은 조건이었다.
그렇다면 버스회사에는 장애인 운전기사가 한 명도 없을까.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은 50인 이상 직원을 둔 민간기업이 장애인 직원을 3.1% 의무 고용하도록 하고 있다. 직원 수가 480여 명이나 되는 ㈜코리아와이드포항도 장애인 고용을 마냥 기피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회사에 장애인 운전기사가 있습니다. 손가락이 안 움직인다든가 하는 정도의 가벼운 장애를 가진 분들이 좀 있는 거로 알고 있어요.”
강성운 씨는 부당 해고 행정소송 재판을 진행하면서 많은 정보와 자료를 구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영업소로 내가 복직하는 순간(3월 26일이죠) 업무지시가 떨어졌다고 해요. 이 사람은 혈액투석을 한다. 5월 10일 날 사용 기간이 끝나니까 최저 점수를 주고, 채용을 취소할 거니까 꼬투리만 잡으라고 했더라구요.”
5월 10일은 수습 기간이 끝나고 버스 운전기사로 채용되는 날짜다. 버스회사는 혈액투석으로 운전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강성운 씨는 두 달 보름 동안 버스 운전대를 잡았다. 회사로부터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고 서행운전을 하며 신중에 신중을 기했지만, 초보 운전기사의 실수는 있기 마련이었다.
나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해고의 이유가 장애인 혐오뿐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미심쩍은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혹시 짚이는 게 없냐는 나의 질문에 강성운 씨도 혈액투석은 꼬투리인 거 같고,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들 때가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 면접 볼 때, 박동섭 본부장이 우리 면접자들한테 그러더라구요. 우리 회사에 1번, 2번, 3번, 4번 노동조합이 있는데, 2번 노동조합은 민주노총이라고 해요. 그 사람들하고는 눈도 마주치지 마라, 옷깃도 스치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강성운 씨는 신입사원 교육을 받기 위해 하루 8시간 이상을 회사 교육장에서 보낸 적이 있었다. 잘 알지 못하는 버스 기사들과 식당에서 밥을 먹고, 매점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마주칠 때가 많았다. 어떤 사람이 친절하게 가까이 다가오면 같은 회사 동료가 될 이들을 경계하고 뿌리칠 수가 없었다. 궁금한 건 질문도 하고, 말도 주고받으면서 회사 생활에 적응해 갔다.
“제가 좀 낙천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저를 아는 척하면 잘 받아줬죠. 커피 한잔하자는데, 거부할 수 없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인데, 회사의 구석구석에 CCTV가 많아요. 노무부장이 하는 말이 며칟날 A 자판기 앞에서 빨간 조끼랑 몇 번 만나고, B 자판기 앞에서 몇 번 만나고, 식당에서 몇 번 만나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게 뭐가 문제가 되냐고 물었죠. 아무래도 회사는 민주노총을 싫어하잖아요. 강성이라고 싫어하죠. 그런데 저는 신입인데, 저 사람이 누군지, 민주노총 조끼를 입고 있을 때도 있지만, 입지 않은 사람도 있고, 같이 밥 먹자고 옆에 오는데 거부할 수도 없고, 커피 마시다 보면 옆에 민주노총 사람이 있는데 일부러 피할 수도 없잖아요. 그때 느꼈죠. 회사 사람들이 나한테 감정이 쌓인 게, 혈액투석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구요.”
버스회사는 4개의 복수노조가 있다. 제1노동조합은 한국노총 소속의 ‘코리아와이드버스노동조합’이다. 운전 노동자가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서 가입하고 위원장 추천서가 서류 전형에 포함된다. 소수노조로 제2노조인 민주노총 소속의 ‘공공운수노조 버스지부’가 있고, 제3노조와 제4노조도 소수노조이다.
그렇다면 강성운 씨가 버스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가입했다는 ‘코리아와이드버스노동조합’은 어땠을까.
“저는 1노조에 가입했거든요. 해고당하고 충분히 이야기했어요. 노조가 별다른 능력이 없으니까, 어떤 자구책이 안 나오더라구요. 해고 문제에 대해서 노동조합은 아무것도 모르는 거예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런데 거기 가서 이야기한들 무슨 기대가 있겠습니까?”
강성운 씨가 버스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다녔던 곳은 포스코 협력업체였다.
만성신부전증으로 2012년부터 혈액투석을 시작했다.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을 때,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장애인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신장 장애인 등록 서류를 접수하라고 알려줬다.
“처음엔 나는 장애인이 아니라고 했죠. 지금도 그렇죠. 산에도 가고, 탁구도 치고, 일할 거 다 하고, 일상생활을 다 하니까, 물론 투석을 3~4일 미루면 조금 부담스럽긴 해요. 그래도 크게 활동하는 데 지장이 없으니까.”
그런데 장애인으로 등록하니까 회사가 강성운 씨의 편의를 봐주었다. 혈액투석을 하러 병원에 가는 날이면 두 시간 일찍 퇴근을 시켜주었다.
“제가 장애인 등록을 하니까, 회사가 싫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좋아하더라구요. 저 같은 경우는 두 사람분을 정부가 지원한다고 하더라구요. 법인세, 취득세, 무슨 세, 하면서 세금 감면 혜택을 받더라구요. 일은 전과 다름없이 똑같이 하는데, 제 월급도 지원받으니까, 회사가 싫어할 리가 없잖아요.”
그런 회사도 원가절감을 위해서 인력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20년 이상 근무’, ‘과장 이상’, ‘연봉 8000만 원 이상’, ‘나이 40세 이상’ 등 구조조정 대상 요건을 다 갖춘 강성운 씨도 회사에 남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취직하기 위해서 300군데 넘게 이력서를 냈었는데, 딱 네 군데서 같이 일하자고 연락이 왔었어요. 거기 가서 제가 사실은 혈액투석을 합니다, 말하면 연락이 없어요. 버스회사 오기 직전에 관광버스 운전을 했어요. 관광버스는 처음엔 사장님이 혈액 투석한다니까 싫어하길래 다른데 알아보겠다고 했었죠. 자기들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별로 문제가 없는 거예요. 관광버스는 평일에는 주로 출퇴근 버스로 운행하니까, 낮에는 쉴 시간이 길잖아요. 주말과 휴일에 관광을 뛰고, 그래서 월 수 금 병원에서 혈액투석하면서 2년 정도 일했죠.”
관광버스를 운전하면서 전국의 유명한 산과 절과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남들 올라가는 산행도 즐겼고, 아름다운 풍경도 만끽했지만,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기엔 관광버스 운전기사의 처우는 열악했다. 노동환경과 임금 처우가 더 낫다는 시내버스 회사 ㈜코리아와이드포항의 채용공고를 보자마자 지원했었다. 최종 합격까지 4개월의 기나긴 시간 동안 강성운 씨의 애간장을 태운 만큼 시내버스 기사로 당당하게 일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싶은 열망이 컸다.
“제가 예전엔 전기시스템 일을 했어요. 포스코에 들어가면 자동화시스템을 설비하는데, 설비 하나 깔려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야 하는 일이니까, 라인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고, 전기 장치를 어디에 설치해야 하는지 다 구상해서 시험하고, 라인 깔기 전에 확인하고, 너무 힘들고, 정신적인 압박과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어요. 하루에 한두 시간밖에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그만큼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거든요. 거기서 나와서 버스를 운전하니까, 잠이 잘 와요. 몸은 힘들지만, 포스코 협력업체 다닐 때 생각해 보면 버스 운전하는 게 두 세배는 좋은 거 같아요.”
서울행정법원에서 재판이 있던 날 포항에서 KTX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그날따라 행정법원에는 14건의 재판이 있었고, 12번째인 강성운 씨의 선고 재판이 있기 전까지 재판장에서 원고 패소가 이어졌다.
“판사님이 법률용어를 쓰니까, 제가 말을 잘 못 알아듣잖아요. 재판장을 나오면서 제가 변호사님께 물어봤어요. 제가 이긴 겁니까? 하니까 변호사가 이겼다고 하더라구요. 법원에서 큰소리치면 안 되는데도, 너무 좋아서 막 소리 질렀죠. 기자회견을 했다는데,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나요. 어떻게 포항까지 왔는지도 기억도 안 나고, 그동안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어요.”
강성운 씨가 행정소송에서 이겼다고 싸움이 끝난 건 아니다. 버스회사는 아직도 강성운 씨에게 복직명령서를 보내지 않았고, 항소한 상태다. 부당 해고 사건은 고등법원으로 올라가 있다. 앞으로 길고 긴 법정 싸움이 강성운 씨를 기다리고 있다.
“행정소송에서 이기면 고등법원, 대법원에서 뒤집힐 일은 없다고 합니다. 앞으로 1년 4개월 정도 걸린다고 하네요. 그때 복직할 때는 예비기사가 아니고 본기사로 들어가야죠. 제가 가장 원하는 건 사과 한마디였어요. 아직도 저한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안 합니다. 사람 자존심을 건드렸잖아요. 아픈 곳을 건드렸잖아요. 어느 누구도 장애인이 되지 말란 법이 없고, 큰소리도 못 치지 않습니까. 아까 서두에 말씀드렸지만, 반말로 ‘장애인이니까 나가’ 이런 몰지각한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끝까지 가봐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