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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대용 Mar 10. 2016

발리에서 생긴 일

우연한 디지털 노마드 시도 그리고 실패

작년 10월 말에 일주일 정도 휴가로 발리를 갔었다. 이 곳에 오기 전 디지털 노마드 관련 글들을 읽어 볼  많이 언급되는 코웍 스페이스가 있었는데 우붓에 위치한 HBUD이다. 여행 첫날 점심을 먹고 와이프는 요가 클래스에 가고 나는 이 곳에 왔다.

일 하려는 목적보다는 그냥 궁금함에 와본 것이었고 분위기, 시설들을 살펴보고 간단하게 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인터넷 속도를 체크해보았다.

HUBUD의 입구. 스쿠터 몰고 가다가 간판을 제대로 못봐서 지나쳤다.
한 주의 행사들이 입구 들어가자마자 보인다.
2층에도 공간이 있다.
야외에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비트코인 ATM.. 그야말로 문화 충격이었다. 잠시 비트코인 채굴을 시작해야하나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나도 한번 허세 포즈를 잡아 보았다.

자연 속에 있는 듯한 한적한 시골에 있는듯한 느낌으로 출퇴근하는 기분은 어떨까 더 궁금해졌다.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생긴다는데 별일이 하필이면 발리에서 벌어졌다. 발리 여행을 마치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비행기가 어째서인지 딜레이가 되고 있었다. 에어아시아가 뭐 그렇지 하면서 기다리다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스케줄을 보러 갔더니 모든 비행기가 딜레이다. 그다음 나오는 문구에서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화산이 터졌다고??????? 응??????

발리에서는 생각보다 자주 있는 일이라 한다...


우리는 기다리면 잠잠해지겠지 하고 3시간 정도를 그렇게 공항에서 버티고 있었다. 그 사이에 대부분 여행자는 지쳐서 공항 밖으로 나가버렸다. 우리도 따라 나와 비행기 일정을 바꾸기 위해 체크 카운터로 왔고, 가장 빠른 스케줄인 다음날 밤 10시로 변경을 한 뒤 4시가 넘어서 가장 가까운 꾸따 지역으로 이동했다.

새벽에 체크인하고 일단 잠시 눈 좀 붙이고 오전에 일어나서 우선 가까운 코웍스페이스 WAVE로 향했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이 날은 한국에 도착해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은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점심시간 무렵 에어아시아로부터 긴급 메일이 왔다. 화산재 때문에 공항 폐쇄가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1. 일주일 이내에 날짜 중 하나로 추가 비용 없이 변경
2. 추가 비용을 더 지불해서 90일 이내 스케줄로 변경

동료는 아예 미루는 것을 추천했는데, 해외에 더 체류하는 것은 팀원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라 생각이 들어서 무조건 빨리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에어 아시아 라이브 챗을 사용해서 스케줄 조정을 시도했다. 과도한 접속 탓에 대기자 수가 999명이 넘는다는 문구를 보며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텍스트 에디터 창과 라이브 챗 창을 번갈아보면서 자주 일어나는 콘텍스트 스위칭 탓에 제대로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일에 집중하다가 보면 어느새 라이브 챗 창은 내 차례가 왔다가 응답이 없어서 종료가 돼있거나, 채팅 진행 중에 내가 대답을 좀 꾸물거리면(영어가 짧아서..ㅠ) 결정하면 다시 라이브 챗 걸라고 종료되는 등이 반복되었다. 심지어 이 날 변경한 비행기표는 이틀 뒤에 또 취소가 되어서 같은 일을 반복하고 공항 가서 다시 스케줄을 잡는 등 고생은 다 했었다. 결국 발리에는 일주일 더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동료의 조언대로 아예 비행기 일정을 일주일이나 그 이후로 바로 미뤄두었다면 일하는 시간엔 일에 집중하고 그 외 시간에는 발리를 더 잘 즐겼을 것이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디지털 노마드 생활이 된 셈이다. working day로는 5일을 더 있었는데 그동안에 한 일은 한국에서 하루 동안 한 일 정도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일을 집중하는 데 있어서 방해 요소를 제거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행을 하게 되면 굉장히 많은 변수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냥 여행이라면 이런 변수들은 여행을 더 즐겁게 해주지만, 디지털 노마드들에게는 제거해야 하는 과제로 주어지게 된다. 나는 발리에서 중요한 요소 하나를 제거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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