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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쿡인노동자 Mar 11. 2016

왜 떠나왔나

실리콘밸리 외쿡인 노동자의 노마딩 이야기

원래가 다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왜 떠나려고 했는지, 떠나기 위해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뒤돌아보니 준비과정이었던 이야기들.


1) 샌프란시스코 (or Bay Area, a.k.a. 실리콘밸리)

한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운이 좋아 미국에서 석사 과정을 밟을 수 있었고, 중간에 진로를 취업으로 돌려 운좋게 직장을 구했는데 그게 마침 샌프란시스코에 있었다. 듣기는 많이 들어봤으나 어디에 있는지, 어떤 도시인지도 모르는 그곳에 직장을 잡게 되어 이사를 하고 나름의 정착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사람이 그리워서, 맥주 한잔에 한국어로 마음 놓고 웃고 떠들 사람이 그리워서 첫 1년을 넘겨서 고생을 했고, 어느 정도 사람도 쌓이고 도시에 적응한 2-3년 뒤로도 여전히 무언가 "심심"했다. 자연을 벗삼아 즐기고 놀기에는 더 없이 좋은 동네지만, 사람과 부대끼고, 뭐든지 있는 도시의 삶이 그리웠던 것이 매우 컸다. 내 젊음을 커리어에만 바칠 수 없다는.

두번이나 참여 할 기회가 주어졌었던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행사  


2) 즐거움

어디든 지하철이 닿고, 버스가 닿고, 어디든 편의점이 있고 맥주 한잔이든 간단한 식사든 할 만한 곳이 널려있던 서울에서 나고 자랐던 나에게 샌프란시스코는 뭔가 작았다. 사람도 더 만나고 싶고, 여러번 가본 뉴욕이 그래도 서울이랑 가장 가까웠다고 느꼈기에, 동부로 떠나자, 고 이야기를 여러번.

사실 이 날의 결심은 3개월 뒤 모든 것을 접고 세계여행을 시작하자고 했던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5개월 전.


3) 재정적인 측면

위에 언급한 두가지를 감내(?)하면서 샌프란시스코에 있었던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있다는 자부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환경, 정말 존경하고 배울 점이 많은 동료들. 영어를 하는 공돌이가 되겠다던 (나조차도 잊고 있었던) 언젠가의 이야기가 현실이 된 환경이 좋았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국에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들도 여러번 있었고. early career 를 쌓기에 좋은 환경임과 동시에 연봉 수준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절대 수치로는 내가 인생에서 받을 수 있을까, 했던 연봉을 받아가며 일을 하고 있었는데, 연봉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는데에 딱 3년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싱글로 살아가면서 내야하는 35%가 넘는 세금, '서른이 넘어 이정도 돈을 버는데,' 라며 혼자서 살아가면 냈던 월세, 첫 1년 차없이 살아봤으나 안 되겠어서 우울을 넘어서기 위해 마련한 자동차. 이것을 합치니 전혀 저축이 되지 않았다. 서울이었으면 (혹은 뉴욕이었으면) 전혀 필요 없었을 자동차도 그렇고, 그에 딸린 주차장, 보험에 기름값.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상회하는, 계속 올라만 가는 월세. 어느 정도 좋은 집에 살기는 했지만, 원베드룸도 아닌 스튜디오가 월세로$2200 (2012-13년) -> $2400 (이사, 2013-14년) -> $2600 (계약 연장, 2014-15년) -> $2700 (2016년) 으로 계속 오르다보니 연봉이 어지간히 올라가도 세금 + 월세 인상분을 따라가기 버거웠다. 보너스와 RSU (주식) 운도 따르지 않다보니 매해 학비를 갚고 나면 간신히 살아가는 정도. 자동차도, 혼자사는 것도 포기 할 수는 없으니, 자동차가 없어도 되는 곳으로 가자, 그리고 이 정도 월세면 미국 어디에서도, 아니, 전 세계 어디에서도 살 수 있고, 돈을 남겨서 저축 할 수 있겠다, 라는 결론이 나왔었다.

할 수 있을까, 라며 나름의 시험을 했었던 1주일 간 발리에서의 근무

      

그리고 한국과, 인도네시아, 그리고 가까운 도시 몇 곳에서의 원격근무 경험, 그리고 아예 캐나다 빅토리아, 미국 씨애틀, 캐나다 토론토, 인도의 실리콘밸리라 불리우는 도시까지 5개 도시에서 일하는 팀원들과의 협업 등을 통해 동부 이직을 준비하되, 원격이 되면 더 안정적으로 옮겨갈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 셈.


여전히, 초반이고, 불편하면 언제든지 돌아갈 예정이기는 하지만, 이것들이 내가 떠나온 이유이다.




p.s. 그리고, 그 무렵에 읽게 된 책과 포스팅 on Wednesday, October 28, 2015

철학자: 즉, 인간은 이런저런 불만이 있더라도 '이대로의 나' 로 사는 편이 편하고, 안심되는 거지.

청년: 변하고는 싶지만 변하는 것이 두렵다?

철학자: 생활양식을 바꾸려고 할 때, 우리는 큰 '용기'가 있어야 하네. 변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선택할 것이냐. 변하지 않아서 따르는 '불만'을 선택할 것이냐. 분명 자네는 후자를 택할 테지.

청년: ... 방금 또 '용기'라고 하셨습니다.

철학자: 그래. 아들러 심리학은 용기의 심리학일세. 자네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네.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자네에게는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뿐이야.

(중략)

청년: ...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

철학자: 그래. 교환이 불가능함을 받아들이는 것. 있는 그대로의 '이런 나' 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 를 낸다. 그것이 자기수용이야.

청년: 음, 그리고 보니 전에 커트 보네거트라는 작가가 이와 비슷한 말을 인용했더라고요.

"신이여 바라옵건데 제게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라고요. [제5도살장]이라는 소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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