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바람만 불어도 긴장하게 되는 고3, 수능 수험생이 있다. 얼마 전, 밤 10시가 넘은 거실에 엄마와 아들의 진지하고도 무거운 대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하려고 침대에 기대어 잔잔한 영화 한 편을 보고 있었지만, 그 대화가 점점 귀에 또렷이 들려왔다.
주제는 아들의 학업 태도와 미래, 그리고 꿈에 대한 이야기였다. 기말고사를 마친 아들은 정시보다는 수시 준비에 집중하고 있었고, 최근엔 학교에서 일찍 돌아와 컴퓨터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험이 끝났으니 조금은 쉬게 두자는 엄마의 마음도 잠시, 점점 불안해지던 엄마는 아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목소리가 또렷해졌고, 나는 영화를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우리는 아이에게 최고의 뒷바라지를 해주진 못했지만, 아들이 원하는 입시 준비에 가능한 최선을 다해 지원해 왔다. 되도록 강요도,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다만, 엄마는 이제는 수험생이라는 현실을 잊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아들의 태도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자 했던 것이다.
아들은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당초 목표로 삼았던 대학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느끼며, 실망감에 ‘포기’와 ‘희망’이라는 단어가 점점 마음속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아내는 그 말에 아들에게 적지 않은 실망감을 받았고, 책망하는 듯하다가 이내 자신을 원망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될 텐데...’ 중얼거리며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1시간 넘게 이어진 대화 끝에 둘은 마침내 진심을 나누었다. 아들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눈물을 흘렸다. 아들의 흐느낌에 너무 마음이 아파 대화가 끝난 뒤 방으로 간 아들을 말없이 꼭 안아 주었다.
'성공하기 위한 아이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도 있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꼭 성공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사실 성공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 그 삶이 재미있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으니까. 모두가 1등이 될 수도 없고, 모두가 꼴찌도 되지 않는다. 사람은 저마다의 재능과 소질이 다르고, 사회는 그 다양한 톱니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 같다. 사회라는 원형 틀 안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크기의 톱니로 연결되어 살아간다.
오래전,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학교운영위원회 회의 후 귀가하던 중, 함께 활동하던 어머님이 불쑥 물었다.
"아버님은 아이들을 어린이집부터 대학교, 대학원까지 20년 넘게 공부시키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그렇게 긴 시간을 공부시키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제대로 역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부모의 역할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달란트’처럼 아이가 가진 재능과 소질을 찾아주고, 그것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이자 촉진, 조력자라고 생각한다. 부모는 아이의 여정을 동행하고 싶지만, 결국 그 길은 아이가 걸어가며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아이의 삶은 부모가 대신 살아줄 수 없다. 그러나 그 길에 함께 마음을 나누고, 곁에서 안아주는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