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있잖아요,
왜 가끔 그럴 때 있지 않아요?
막 무언가를 쓰고 싶을 때요. 내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막 피어오르는 느낌이 들 때. 저는 가끔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이마에 글방울이 몽글몽글 맺히는 그런 느낌. 왜 이 부분 있잖아요, 머리카락이랑 이마랑 맞닿는 부분이요. 거기가 막 간질간질하면서 마치 땀방울이 맺히듯이, 단어랑 문장들이 하나씩 하나씩 맺힐 때가 있어요. 꼭 거창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그냥 살면서 하는 생각들이요. 뭐, 반성도 조금, 위로도 조금, 다짐도 조금. 그냥 지금 이렇게 한가로이 수다 떨 때 하는 얘기 같은 건데요, 그런 기분이 들 때는 생전 쳐다보지도 않던 연필을 들고 종이에 막 쓰고 싶어져요.
아, 근데 사실, 실제 글로 쓰지 못할 때가 훨씬 많아요. 글을 쓰려면 잘 써야 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도 있는 것 같고, 글의 모양새나 구성 같은 걸 생각하다 보면 결국 다 날아가 버리는 거죠 뭐. 생각해보면 참 아깝죠 그런 순간들이. 자주 오는 것도 아니거든요. 가끔 약속 장소로 걸어갈 때나, 퇴근하는 버스에서, 아, 그리고 제가 가끔 주말에 조깅을 하거든요, 달리고 있을 때 그런 순간들이 갑자기 찾아와요. 그때 딱 글방울을 닦아서 글을 쭉 짜내야 하는 건데 말이죠. 생각할수록 아쉽네요.
조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무라카미 하루키 있잖아요, 그 왜 상실의 시대 쓴 유명한 일본 소설가요. 그 사람이 마라톤 마니아래요. 그래서 자기가 달리면서 쓴 에세이를 모아서 책을 냈더라고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는 이야기>라고. 저는 뭐 그 사람 소설을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닌데요, 달리기라면 저도 좋아하니까 한번 읽어봤거든요. 어우 장난 아니더라고요, 처음엔 저도 달리면 뭐 얼마나 달리겠어 이러면서 그냥 가벼운 에세이집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마라톤 완주는 기본이고 울트라 마라톤도 하고 철인 3종 경기도 하고,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달리기 훈련을 아주 열심히, 꾸준히 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아무리 바빠도 꼭 시간을 내서 달린대요.
아 맞다, 제가 핸드폰에 메모를 해놨는데, 이거 한번 보세요.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중략)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는 이야기>
멋있지 않아요?
이게 사실 그냥 보면 식상한 내용일 수도 있는데요, 책을 읽다 보면 글에서 엄청나게 묵직한 무언가가 막 느껴져요. 이 사람이 살아온 일생이 글을 뒷받침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진정성을 담고 있는 글의 울림이 이런 것이구나를 느꼈어요. 진짜 멋있는 글이란 이런 것이구나 이런거요. 정말 땀으로 쓴 글인 거잖아요, 자신이 흘린 땀이 증명하는 글인 거잖아요. 이런 자세로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제 직업인 글쓰기는 얼마나 치열하게 하겠어요. 사람들이 자꾸 하루키, 하루키 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죠.
저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진짜, 꿈이에요. 물론 뭐, 그러려면 노력이 많이 필요하겠죠.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라던데, 지금처럼 막 쓰고 싶은 순간조차도 흘려버리면 절대 안 되겠죠. 그래서 이제는 좀 바꿔보려고요, 많이 힘들겠지만. 가끔 그렇게 글방울이 맺힐 때는, 땀방울하고 합쳐서 진짜로 한번 써내 보려고요. 저도 계속 그렇게 하다 보면 무언가를 남길 수 있지 않을까요?
어머 죄송해요, 제가 너무 제 얘기만 했죠.
당신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