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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담 May 11. 2016

한담(汗談)을 나누다

#유령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있잖아요,

왜 가끔 그럴 때 있지 않아요?


막 무언가를 쓰고 싶을 때요. 내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막 피어오르는 느낌이 들 때. 저는 가끔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이마에 글방울이 몽글몽글 맺히는 그런 느낌. 왜 이 부분 있잖아요, 머리카락이랑 이마랑 맞닿는 부분이요. 거기가 막 간질간질하면서 마치 땀방울이 맺히듯이, 단어랑 문장들이 하나씩 하나씩 맺힐 때가 있어요. 꼭 거창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그냥 살면서 하는 생각들이요. 뭐, 반성도 조금, 위로도 조금, 다짐도 조금. 그냥 지금 이렇게 한가로이 수다 떨 때 하는 얘기 같은 건데요, 그런 기분이 들 때는 생전 쳐다보지도 않던 연필을 들고 종이에 막 쓰고 싶어져요.


아, 근데 사실, 실제 글로 쓰지 못할 때가 훨씬 많아요. 글을 쓰려면 잘 써야 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도 있는 것 같고, 글의 모양새나 구성 같은 걸 생각하다 보면 결국 다 날아가 버리는 거죠 뭐. 생각해보면 참 아깝죠 그런 순간들이. 자주 오는 것도 아니거든요. 가끔 약속 장소로 걸어갈 때나, 퇴근하는 버스에서, 아, 그리고 제가 가끔 주말에 조깅을 하거든요, 달리고 있을 때 그런 순간들이 갑자기 찾아와요. 그때 딱 글방울을 닦아서 글을 쭉 짜내야 하는 건데 말이죠. 생각할수록 아쉽네요.


조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무라카미 하루키 있잖아요,   상실시대  유명한 일본 소설가요.  사람이 마라톤 마니아래요. 그래서 자기가 달리면서  에세이를 모아서 책을 냈더라고요, <달리기를 말할  내가 하는 이야기>라고. 저는   사람 소설을 딱히 좋아하는  아닌데요, 달리기라면 저도 좋아하니까 한번 읽어봤거든요. 어우 장난 아니더라고요, 처음엔 저도 달리면  얼마나 달리겠어 이러면서 그냥 가벼운 에세이집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마라톤 완주는 기본이고 울트라 마라톤도 하고 철인 3 경기도 하고,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달리기 훈련을 아주 열심히, 꾸준히 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서 달린대요.


아 맞다, 제가 핸드폰에 메모를 해놨는데, 이거 한번 보세요.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중략)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는 이야기>

멋있지 않아요?


이게 사실 그냥 보면 식상한 내용일 수도 있는데요, 책을 읽다 보면 글에서 엄청나게 묵직한 무언가가 막 느껴져요. 이 사람이 살아온 일생이 글을 뒷받침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진정성을 담고 있는 글의 울림이 이런 것이구나를 느꼈어요. 진짜 멋있는 글이란 이런 것이구나 이런거요. 정말 땀으로 쓴 글인 거잖아요, 자신이 흘린 땀이 증명하는 글인 거잖아요. 이런 자세로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제 직업인 글쓰기는 얼마나 치열하게 하겠어요. 사람들이 자꾸 하루키, 하루키 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죠.


저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진짜, 꿈이에요. 물론 뭐, 그러려면 노력이 많이 필요하겠죠.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라던데, 지금처럼 막 쓰고 싶은 순간조차도 흘려버리면 절대 안 되겠죠. 그래서 이제는 좀 바꿔보려고요, 많이 힘들겠지만. 가끔 그렇게 글방울이 맺힐 때는, 땀방울하고 합쳐서 진짜로 한번 써내 보려고요. 저도 계속 그렇게 하다 보면 무언가를 남길 수 있지 않을까요?


어머 죄송해요, 제가 너무 제 얘기만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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