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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담 May 13. 2016

오후만 있던 일요일

#달리기 #고민

11시 넘어까지 늦잠을 자고 일어나 느지막한 아침을 먹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트니 요즘 인기가 많다는 주말드라마 출연진이 쇼프로에 나와 개그맨들과 실없는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가끔 따라 웃기도 하면서 보다가 지루한 느낌에 TV를 끄고 방으로 들어왔다. 노트북을 열어 포털 메인의 기사들을 살펴보는데 대선후보들과 관련된 별 볼일 없는 정치기사들과 전혀 궁금하지 않았는데 괜히 한번 클릭하게 되는 자극적인 연예기사들이 전부였다. 괜히 한 번씩 클릭해보다가 역시 지루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노트북을 덮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책을 읽어볼까도 하였으나 마음이 내키지 않아 그냥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대로 잠들어버릴까 하다가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옷을 갈아입고 강변으로 나갔다. 일요일의 서울은 너무 일요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만약 내가 날짜를 몰랐다고 하더라도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구름이 많지 않아 비교적 맑은 하늘이었는데도 해는 흐릿하여 자취를 감추었고, 지난 한주 매서웠던 겨울바람도 일요일이라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듯했다. 강물이 흐르고 강변북로에는 차가 달리고 강변에는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 하며 개를 산책시키러 나온 사람들 하며 자전거를 타러 나온 사람들로 꽤나 북적였는데, 어쩐지 이 모든 것이 사진 속의 풍경인 양 어떤 정적 속에 휩싸여 있었다.


모바일 App을 켜고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 시작한 지 한 10분쯤 지났을 무렵 오른쪽 신발끈이 풀려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분명 집을 나설 때 풀린 것을 묶었고 달리기 전 다시 한 번 더 묶었는데 왜 또 풀린 걸까 의아해하며, 멈추어 신발끈을 묶고 갈까, 아니면 풀린 채로 계속 달릴까 하는 고민을 잠시 했다. 초반 기록이 좋게 나오고 있어서 멈추고 싶지 않아 계속 달리기로 했는데, 신발끈을 밟아서 넘어지면 어떡하지, 신발끈이 하수구에 걸려 발목을 상하는 것은 아닐까, 신발끈 끝에 달린 플라스틱 꽁다리가 찢어지면 안 되는데, 하는 걱정들이 잇따랐다. 풀린 신발끈에 계속해서 신경을 쓰다 보니, 이렇게 계속 신경을 쓸 바에는 잠시 멈춰 묶고 가면 안 되나 싶기도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멈추지 못했다. 왜 난 멈추지 못했을까, 마라톤 대회에서 달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기록이 안 좋다 한들 손해 될 것도 하나 없는데.


보통 이런 사소한 의문은 너무 사소한 나머지 은유로 둔갑하여 그 외연을 넓히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가끔 그 은유는 매우 절묘해서 어떤 계시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멈추지 못했던 나의 오늘은 어쩐지, 내가 진정으로 가치 있다고 여기지 않고 내 가슴을 뛰게 하지 못하는 현재의 일에 불만이 있으면서도, 내가 누리고 있는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 때문에 그것을 선뜻 내려놓지 못하는 나의 요즘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여태까지 달려온 것이 아까워서 신발끈이 풀린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달려야만 한다고, 신발끈을 묶으려고 잠시 멈추면 뒤쳐져 버릴 것이라고, 여태까지 잘 달려왔으니 앞으로도 잘 달려가야만 한다고, 그렇게 나를 어떤 강박 속에 몰아넣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목표지점에 도달하여 달리기를 멈출 때까지 내가 걱정했던 많은 문제들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반대로 좋았던 초반 페이스를 끝까지 잘 유지하여 여태까지의 기록 중 가장 좋은 기록을 냈다. 기록을 확인하고는 주저앉아 신발끈을 다시 묶었다. 신발끈은 계속 밟혔는지 많이 더러워져 있었다. 좋은 기록에 기쁜 마음도 조금은 있었지만, 달려온 길가에 흘리고 온 내 고민 조각들이 자꾸만 마음에 밟혔다. 일요일의 풍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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