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금명이는 서울대라도 갔지

폭싹 속았수다. 이젠 훨훨 날아 보켜.

by 한도아


수능이 끝나고, 보고 싶었던 것들을 몰아봤다.

그중 가장 먼저 본 건 넷플릭스의 「폭싹 속았수다」.

1화부터 16화까지 약 16시간짜리를 4일 만에 다 봤다.

10분마다 한 번씩 울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화는 다음날 눈 뜨기도 힘들게 한 주범이었다.


25년 12월 05일, 26 수능 성적 발표 날이었다.

네 번째 수능인데도 언제나 이 시간은 적응이 안 된다.

늘 써오던 가채점표를 올해는 안 썼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으니 더 마주하기 싫었다.


··· 처참해.

나의 노력의 결실은 언제나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

안 그래도 시들한 나뭇잎이 자꾸만 이르게 시들었다.

오애순이가 동명이를 잃었을 때만큼 통곡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오애순이네와 우리네는 비슷한 게 참 많다고 생각했다.

하나, 집안이 부유하진 않다.

둘, 아버지 무릎이 안 좋다.

셋, 내가 뭘 하든 날 믿어주고 밀어주는 따뜻한 부모님.

그래서 더 금명이에게 나를 투영해 바라보았던 것 같다.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양금명이는 서울대라도 갔지.


금명이는 그 나이 먹도록 말을 함부로 했지만, 대학 가지고 이렇게 엄마 속을 문드러지게 했을까.

내 가슴에 생채기 나면 엄마아버지 가슴엔 피멍 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통곡과 눈물을 그치지 못했을까.


엄마 미안해, 세상은 왜 자꾸 나만 등지는 것 같을까? 나이 먹고 엄마 앞에서 길 잃은 다섯 살 같이 우는 나를, 오히려 엄마는 그동안 고생했다며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오늘까지만 울라고 했다.

그렇게 엄마 가슴에는 피멍이 들었다.


모두가 다, 그렇게 막, 꿈을 이루고 사는 건 아니라는 걸 알지만서도, 꿈을 이뤘다가 내 손으로 버린 나와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냥 그때 자퇴하지 말고 계속 다닐걸.

학교가 싫었어도, 엄마랑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엄마가 보고 싶어도 조금만 참을 걸.

아니면 딱 반수까지만 할걸.


죽고 싶다가도 죽는 게 무섭고, 살자니 살아가기가 무섭다. 나에게 있어 이 세상은 무서운 것투성이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아무것도 모르겠다.


“살민 살아진다.”

일단은 살아보기로 했다. 얼마나 화려한 미래를 주려고 이렇게 시험에 들게 하는지, 그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 지금을 살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화려한 미래를 살아갈 그때의 나를 마중 나오라고, 인사 하나를 먼저 보내놓기로 했다.

···

“폭싹 속았수다.“

* 제주 방언. 표준어로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