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발목을 잡아버렸다

N수생의 N수를 한 이유

by 한도아


고등학교 3학년, 대학교 원서를 작성할 무렵 몇몇 친구들은 어느 학과로 진학할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내가 지금까지 n수를 할 때도, 이제 성인이 될 나의 동생은 여전히 꿈이 없어 진로에 대해 한참 고민했다.

그러나 나는 꿈이 있었기에 어떤 곳으로 진학할지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난 몰랐다, 꿈이 내 발목을 잡게 될 줄은.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난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다. 초등학생 때엔 피아니스트, 중학생 때엔 심리상담사, 성우, 그리고 메이크업 아티스트, 고등학교 1학년 때엔 유치원 교사, 고등학교 2학년 2학기에 간호사. 그렇게 나는 간호사로 진로를 굳혔다.

유치원 교사를 꿈꿨다던 고등학교 1학년 가을, 아빠 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창문 밖을 바라보며 갑자기 ‘간호사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가, 갑자기, 번뜩 말이다. 지금 와서 추측하건대 초등학생 때부터 다른 드라마는 다 안 봐도 의학드라마는 꼭 봤는데, 고1 때 한창 슬의생이 방영 중일 때라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내 꿈이라고 금세 단정 짓진 않았다. 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성적이 안 돼서. 그리고 깊게 생각해 본 직업이 아니었으니까.

1학년 말, 담임 선생님과 진로 고민을 할 때도 유치원 교사가 꿈이라 했고, 고2 1학기까지도 그랬다. 생일선물로 진로 관련 책을 선물해 주시던 담임 선생님도 유아교육과와 관련된 책을 선물해 주셨었다.

고2 2학기 때, 간호사가 꿈이라는 절친한 친구의 말에 이젠 간호사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아픈 환자들을 곁에서 보살피며 아픔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가득 차다 못해 넘치려는 나의 따뜻한 온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당연히 쌓아온 성적은 턱없이 부족했다. 고민 끝에 수도권인 본가와는 많이 멀었지만 결국엔 꿈을 이뤄 간호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간호학과가 아니었다면 충분히 집에서도 통학이 가능한 학교를 갔을 거였다.

그러나 이젠 여러 이유로 대학교에 정을 붙일 수 없었다. 내가 간호사라는 꿈을 꿀 수 있게 해 준 그 친구가 다니는 학교 성적컷이 생각보다 높지 않았기에, 따라가기 위해 그 학교를 목표로 반수를 했다. 성적 자체는 많이 올랐지만 아쉽게도 목표에선 한 등급씩 부족해서 갈 수 없게 되었다. 정시카드 3개와 전문대 10군데 정도를 모두 수도권 근처 간호학과를 쓰고, 단 한 군데만 다른 학과로 지원했는데 그 학교만 붙었다. 결국 간호학과를 갈 수 없게 되었다. 갔던 대학에 들러붙어 있었더라면 꿈을 이루는 건데, 이렇게 되면 그게 안 됐다.

어쩔 수 없이 삼수를 했다. 한 등급씩 부족했으니까 이번엔 더 잘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등급은 더 떨어지고 말았다. 이젠 꿈을 못 이루는 것도 답답하지만 노력을 했는데 이거밖에 안 되는 게 더 절망적이었다. 결국 꿈을 버리고 원서 대부분을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학교로 썼다. 단 한 군데만 지방전문대 간호학과를 썼다.

붙었다. 통학 가능한 다른 학과와 함께.

나는 지방에 내려가는 게 싫어 다른 학과를 고집했고, 엄만 내게 간호학과를 들이밀었다. 엄마의 설득으로 난 간호학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상에 지는 것 같았다.

또다시 엄마와 토론을 벌였다. 나의 고집을 꺾지 못한 엄마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렇게 붙었던 학교도 등록 포기하고, 이번엔 국어 단과학원까지 다니며 사수를 했다. 성적은 기어코 더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나는 무엇을 원해서 여기까지 왔는가.

꿈을 이루는 게 목표였다면 그냥 스무 살에 갔던 대학에 들러붙어 있을 것이지.

학교를 올리는 게 목표였다면 꿈이나 가지지 말지.


나는 꿈이 있는 내가 멋있게 느껴졌었다.

남들은 다 꿈이 없어서, 할 게 없어서 헤매고 있을 때 나는 ‘여기 갈 거예요.’ 단정 지어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꿈이 있는 내가 싫다.

꿈이 있는 게 죄인 같았다.

나보다 공부도 못했으면서 꿈 없는 동생은 될 만한 곳 아무 데나 넣어서 최초합을 두어 개 해냈다.


꿈을 어떻게 버려야 할지 모르겠다.

삼수 때 꿈을 버리고 원서를 쓸 때도, 내가 이걸 버리고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었고, 결국 꿈을 버렸다는 것에 끝없이 절망적이었다. 꿈을 버리는 방법을 모르겠다.

용기가 없다. 그냥 한 번 해보면 되는데 해보고 아니게 될까 봐 무섭다. 그냥 해보고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는데, 그 시간이 아깝다. 꿈을 위해서는 3년을 버렸는데 다른 걸 해보기엔 1년도 아까웠다.


분명 오로라빛으로 희망찼던 나의 꿈인데, 언제 이렇게 바닥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처럼 짓밟히고 뭉개져 버린 건지.

마음이 요란하다.

마음이 시끄러워서 내 마음을 들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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