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진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조금 뒤 서에서 프로파일링 해줄 것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지은이 있는 서의 사건을 자주 맡긴 했었지만, 그 서의 전담 프로파일러이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가 있는 팀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강력범죄, 그중에서 살인사건을 주로 맡는 팀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사건이 사건인 만큼 이 팀으로 넘어왔다고 봐야 했다.
이런 경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전에도 이와 같은 일이 있긴 했으니까.
“안녕하십니까. 프로파일러 박해진입니다.”
“아─.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럼, 바로?”
남자는 사건을 맡은 형사인 듯 그를 회의실로 안내했다.
그를 제외하고 팀원은 총 5명으로 그중에는 그의 눈에 익은 사람도 있었다.
눈짓으로 그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팀원들 앞에서 다시 한번 정식으로 제 소개를 했다.
보아하니 이 서에서의 프로파일링은 처음인 듯했다.
아직 연쇄적으로 일어난 것도 아니었기에 해진이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수습했던 모양새나 목격자를 보고 도망가거나 한 것을 보면 범인은 초범이었고 우발적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목격자를 보고 화들짝 놀라 도망갔다고 했으니까.
물론 목격자의 진술에 한 치의 거짓도 없을 경우에.
“그게 무슨….”
“목격자가 범인인 경우도 들어 있지 않습니까. 목격자의 말은 가정으로 삼으시란 것입니다. 신입이라고 해도 이 정도는 기본이지 않습니까?”
용의자가 없는 경우에는 목격자를 의심해 보는 것이 기본이었다.
이번 사건에는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이 제법 있었지만, 알리바이가 아직 증명되지 않은 사람은 둘.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라서 증명된다면 용의선상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었다.
목격자의 증언 중 특이사항이 있었다면 그걸 단서로 사람을 추려낼 수도, 사건을 추리할 수도 있었겠지만 딱히 그런 것 없었던 지라.
“그 목격자, 제가 한 번 더 만나보겠습니다.”
해진의 말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팀장은 불허할 이유가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목격자의 집으로 향하던 차가 멈췄다.
사건이 일어났던 현장 근처 슈퍼.
해진이 차에서 내려 슈퍼로 들어갔다.
안에는 주인이 한 명 있었다.
해진은 무엇을 사러 온 듯 안을 둘러보다가 음료수 하나를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갔다.
음료수를 내려놓고 계산하며 넌지시 물음을 던졌다.
“사장님, 요 근처에서 무슨 사건 일어났다던데. 보셨어요?”
“저번에 형사 양반도 물어보고 가던데 난 못 봤어.”
“아하. 그래요? 그럼 어떤 여자 못 보셨어요? 휠체어 타고 있는 여자.”
“아. 그 여자라면 봤어요. 누구랑 얘기하고 있는 것 같던데.”
해진은 슈퍼 주인이 말해주는 몇 가지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슈퍼를 나왔다.
묘한 표정을 지으며 운전석에 앉은 해진은 음료수를 뒷좌석에 내팽개치고 액셀을 밟았다.
이후 도착한 목격자의 집 앞. 안에 있는 개가 짖는 소리로 초인종이 따로 필요 없어 보였다.
개가 너무 짖어대니 자연스레 주인이 밖으로 나왔다.
주인이 개를 조용히 시키고 나서야 주인은 쭈그려 앉았던 다리를 폈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해진을 맞이했다.
“누구십니까?”
“송시은씨 남편분이십니까?”
“예, 제가 남편인데. 누구시죠?”
“프로파일러 박해진입니다.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 왔습니다.”
남편의 얼굴엔 그늘이 드리웠다.
옆에 심어진 나무의 그늘이 그들의 위로 와서 그렇게 보였던 것일 수도 있지만.
남편은 그를 집안으로 안내했고 안에서는 휠체어를 탄 여자가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시은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약간의 두려움이 어려있었다.
시은이 주인에게 해진이 누구냐고 물으려던 찰나 해진이 다시 품에서 경찰공무원증을 꺼냈다.
시은은 해진을 거실로 데려왔고 소파에 앉혔다.
남편은 차를 내어오겠다며 잠시 거실에서 벗어났고 사선으로 앉은 둘은 그가 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러길 바랐다. 하지만 해진은 두 손을 마주 잡아 깍지를 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진술을 하셨는데 제가 직접 듣고 싶은 게 몇 가지가 있어서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와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그, 그런데 듣고 싶은 것이란 게….”
“송시은씨는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현장을 목격했고 범인이 도망가고 난 뒤 119에 신고를 해 아이를 병원으로 이송시켰습니다. 몇 시쯤인지 기억하십니까?”
해진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조금이라도 말을 잘못했다간 바로 꼬투리를 잡힐 것이 분명했다.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녀는 진술할 때와 같은 말을 내놓았다.
토시 하나 빠뜨리지 않고.
시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해진의 앞에 남편이 차를 내려다 놓았고 그는 가볍게 눈인사를 한 뒤 다시 시선을 옮겼다.
“그때 남편분께서는 어디에 계셨습니까?”
“아, 저는.”
“송시은께서 대답해 주세요. 제가 묻는 질문에 대답은 송시은씨만 하는 겁니다.”
약간 날이 선 듯 완강한 그의 말투에 주인은 입을 꾹 다물었고 불안해하는 시은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이번에는 그때와 말이 조금 달랐다. 말 속의 핵심 내용이 달랐다는 것이 아니라 전과 다른 글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해진의 한쪽 눈썹이 묘하게 올라가며 이마에 주름을 잠시 만들었다.
뭔가를 고민하는 듯싶더니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진은 알겠다는 말 뒤에 이만 가보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나가려다가 ‘아.’하며 제 품에서 제 명함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혹시 사건에 대해 연락하실 일 있으면 이쪽으로 해주세요.”
마치 반드시 연락할 일이 생길 것이라는 뉘앙스로 해진은 말했다.
현관문을 열고 대문으로 가는 짧은 길에 개가 그를 혹시라도 물지 않도록 남편은 개를 잡았다.
해진의 뒤를 끝까지 따라 나와 배웅을 한 사람은 시은이었다.
대문을 열고 개를 잡은 남편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고 그에 따라 남편도 그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시은에게도 똑같이 인사를 했다.
조금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그 뒤에 붙은 말이 있다는 것 정도.
“이상하죠? 왜 제가 들은 슈퍼 주인의 진술과 당신의 진술에 차이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 말에 시은이 한겨울의 고드름처럼 얼어붙었다는 것 정도.
“어떠한 이유든 범죄사실을 감춰주는 것도 범죄라는 걸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완전범죄라는 것이 없다는 것도.”
해진은 시은이 제 뜻대로 움직여 주길 바랐다.
“세상은 생각보다 그리 쉽게 살아지는 게 아니거든요.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송시은씨. 부디 다른 사람들이 몰랐던 뭔가를 제가 알아내기 전에 전화가 왔으면 좋겠네요.”
시은이 그 사건을 목격했다는 건 사실일지 모르나, 슈퍼 주인은 그녀가 그 당시 혼자가 아니었다고 했다.
아는 사람과 얘기하는 중인가 보다 싶어 다시 슈퍼 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남자라고 했다.
키가 175 정도로 보이는 남자.
채 닫히지 않은 대문 틈 사이로 시은의 눈에 비치는 그의 뒷모습은 세상 그 누구보다 쓸쓸하고 어두워 보였다.
해진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았을 때 확신하는 것은 단 하나.
시은이 이번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 그저 목격자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시은이 거짓말을 했다고 단정 짓기엔 섣부른 감이 있지만 시은이 진술했을 당시 보였던 행동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오로지 사실만을 말하고 있다고 할 순 없었다.
시은은 제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주무르거나 깍지를 끼거나 하며 움직였다.
눈은 올곧게 그를 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해진은 자신의 차에 올라 잠시 고민에 잠겼다.
만약 그렇다면 그녀가 진실이 아닌 거짓을 말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
그 이유를 알아야 했다.
해진이 품에서 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 몇 번이 지나자,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렸고 해진은 상대를 ‘재현’이라고 불렀다.
“목격자 송시은씨 신상정보 좀 보내줘.”
“송시은씨? 응, 알겠어.”
간단하게 용건만을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진이 조수석에 두었던 태블릿PC가 환히 켜졌다.
해진은 재현에게서 받은 시은의 정보를 보았다.
딱히 수상하다고 할 건 없는 것 같았지만 해진의 눈에는 거슬리는 게 하나 있었다.
전직 경찰.
그것도 강력계 형사 3팀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휠체어를 탔던 이유가 마지막 사건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시은이 수사했던 마지막 사건은 공교롭게도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이었다.
2000년대 초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던 사건.
시은이 수사를 했던 건 2번째 일어났던 살인미수 사건이었다.
집으로 향하던 여성을 칼로 찔렀으나 미수에 그쳤었다.
여기서 시은이 다칠 만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