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불길한 느낌

by 한도담

이번에 내가 맡게 된 건 아동과 관련된 범죄였다.

이 어린 애들을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었다.

“박친구!”

경찰청에서 날 ‘박친구’라고 부를 사람은 한 명이었기에 소리 나는 쪽으로 시선을 옮기지 않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왜.”

“대박. 너무해. 사랑이 식었어.”

“사랑 타령할 거면 여자친구를 사귀라고!”

그는 입을 삐죽거리며 토라진 척을 했다. 그러다가 해진이 들고 있는 파일을 보고는 관심을 보였다.

“어? 이 비슷한 케이스를 내가 어디서 봤는데.”

“그거 말하는 거지? 그건 자료 안 뒤져봐도 생생하다. 그게 인간이냐. 미친. 나 그때 진짜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고.”

해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놈, 6년 뒤에 출소야. 결혼 안 하고 애를 안 낳아야지, 이거 원.”

“애 안 낳아도 넌 애 하나 키우고 있잖아.”

이게 진짜.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소리를!

“지은이가 말하고 다니지 말라 그랬다고!”

미쳤냐며 그의 뒤통수를 들고 있던 파일을 휘둘러 때렸다.

“아악!! 아파, 아파!! 너 이거 폭행이야!! 고소할 거야!!”

동네 창피하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녀석을 뒤로 한 채 갈 길을 가려는데, 녀석은 범죄 심리 분석에 바쁜 나를 따라다녔다.

이걸 친구라고, 내가.

일생이 도움이 안 돼요, 도움이.

아, 한 번 도움이 됐었구나.

이놈이랑 그렇게 오랜 세월 알아 왔는데, 단 한 번이라니.

* * *

때는 9년 정도 전, 지은이를 집으로 데려오고 아직 지은이와 내 사이가 서먹할 때였다.

10시까지는 들어오겠다는 전화를 받았었는데 10시가 지난 지 30분이 지났음에도 지은이는 들어오지 않았고 여타 할 전화도 걸려 오지 않았었다.

그땐 지은이의 이상행동 같은 것을 눈치채지도 못했었던 터라 지금 생각할 수 있는 불안의 범위보다 좁았다.

보통의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

내가 지은이 친구들 번호를 아는 것도 아니었고,

어딜 자주 가는지 아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냥 밖으로 나가 발로 뛰며 찾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늦으면 늦는다고 전화를 해줄 아이였기에 최악의 상황들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면서 사람을 미치게 했다.

그렇게 집이 있는 동네와 학교가 있는 동네를 몇 바퀴나 돌아봤다.

하지만 지은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울고 싶었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을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많이 붙잡고 물어보긴 난생처음이었다.

탐문수사를 해도 이것보다 덜 했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11시가 조금 넘어갈 때쯤, 망연자실한 내가 넋을 놓고 길바닥에 앉아 있는데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자 확인도 안 하고 지은이여야만 한다는 바람으로 통화버튼을 눌러 귀에 갖다 대고 지은이를 불렀다.

그런데 김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전화를 받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 끊어버리려고 했는데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는 귀에 익었다.

점차 그 목소리는 선명해졌다.

“김지은이라는데. 얘가 말하는 아줌마가 진짜 너야? 내가 집까지 데려다준다니까 애가……. 그, 일이 좀 있어서. 네가 와야 할 것 같은데.”

“거기가 어디야.”

“얼마 전에 네가 맡았던 부녀자 연쇄살인 프로파일링 해줬던 서 근처에 있는 카페 있잖아. 거기 2층에 있어. 빨리 와.”

걸어서 40분이나 되는 거리는 택시 탈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달려서 20분 조금 넘게 걸려 도착했다.

몸은 땀범벅에 얼굴은 반은 눈물, 반은 땀으로 적셔져 카페 2층으로 올라가서 두리번댔다.

그러다 익숙한 인영이 눈에 들어오는데 순간 드는 안도감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잔뜩 웅크리고 있는 지은이를 안아주면서 내가 했던 말은 하나였다.

“미안해. 미안해, 지은아.”

내 잘못인 것만 같아서.

이 아이를 이렇게 두려움에 떨게 만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아서.

꼭 안아주며 연신 미안하다고만 했었다.

김친구의 차 뒷좌석에 지은이와 나란히 올랐다.

내 다독이는 손길에 안심이 되어 눈물범벅으로 잠든 지은이를 위해 토닥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혹시 이 토닥임을 멈추면 불안에 아이가 깰까 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는 아랫입술을 한 번 꽉 물더니 어렵사리 얘기를 꺼냈다.

들으면 들을수록 지은이 내 품에서 자고 있지 않았다면 당장에 튀어가 그놈의 모가지를 비틀어버릴 정도로 화가 났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분을 삭이려 했지만, 쉽사리 가라앉진 않았다.

어느 누가 그럴 수 있겠는가!

아이가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는데!

김친구의 발견으로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가 되었고 지은이는 김친구가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봐야 할 상황이었다.

운전석에서 룸미러로 우리를 힐끗힐끗 보던 그는 물어보기로 결심을 한 것인지 마지막이 내 이름을 불러왔다.

그와 친구를 먹었던 것도 그때 당시 10년이 조금 넘었었는데 그렇게 조심스럽게 내 이름을 불렀던 것은 처음이었다.

“너 걔랑 무슨 사이냐?”

지은이와 내 관계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던 것 같았다.

지금이야 가족이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겠지만 그땐 조금 애매하다고 느꼈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내 품에 거리낌 없이 안겨 잠이 든 모습을 보고 있자, 내가 지은이에게 어떤 사람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간단히 정의할 수 있었다.

“보호자.”

“보호자? …야, 너 사고 쳤냐? 아닌데. 쟤 만한 애가 있는 건 도저히 말이 안 되는데. 나한테도 말 못 해줄 사정이냐?”

“내가 같이 살자고 했어.”

내 말에 김친구는 핸들을 확 꺾으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이 새끼가 진짜.

겨우 잠든 애 깨면 어떡하려고 차를 그렇게 몰아?

“진짜 여자친구야?! 그래서 여태 남자친구가 없었던 거야?”

“왜 머리가 그쪽으로 돌아가는 건데, 미친놈아. 보호해 줄 사람이 없어서 내가 보호해 주고 있는 거야. 합의된 거니까 신경 끄고 차나 똑바로 몰아라.”

김친구는 내 말에 입을 비죽이며 불만을 표했다.

그러든가 말든가.

합의라는 건 지은이랑 확실히 한 거고 부모가 없다는 얘기만 했을 뿐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는 몰랐으니까 섣불리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때도.

그냥 막연히 혼자 추측만 하고 있었을 뿐.

* * *

추억 아닌 추억에 젖어 있는데 이놈이 또 분위기를 깼다.

하, 이놈은 진짜.

네가 그러니까 여자친구가 없는 거야.

눈치라곤 개나 줘버린 놈아.

분위기 파악 좀 해라.

“지은이가 잘 있는지 왜 네가 궁금해하는데. 신경 끄라고 했지. 관심도 끄고. 너 같은 놈한테 내 새끼 절대 못 주니까.”

“야! 내가 뭐 어때서!”

“어쭈! 관심 있단 소리야?!”

“아니, 그게 아니잖아! 야! 박해진!”

도움이 됐던 게 운인 것 같은 느낌 들게 하지 마라, 제발.

이 썩을 놈부터 잡아야 할 것 아니야.

프로파일링하는데, 도움 주지 않을 거면 꺼지라고 했더니 금세 시무룩해져서 조용히 내 옆에 착석했다.

진작 그럴 것이지.

입 아프고 발 아프게.

나는 파일을 펼쳤다.

아동성범죄 사건.

이 사건이 가지고 있는 다른 사건들과의 차이점은 확실한 목격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목격자를 보고 급히 도망을 갔고 목격자는 아이를 데리고 급히 병원으로 갔다.

하지만 심한 상처를 입은 아이의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고 대인공포증까지 생겼다고 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기억에서 지워버렸다고 생각되는 범인의 인영과 동일시되어 보여서.

…딱, 지은이와 그가 처음 만났던 날에 일어날 뻔했던 사건이었다.

그때 그가 없었더라면, 마치 그가 그곳에 있었지만 지은이를 못 본 척했었더라면.

하,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이런 사건은 보통 우리 쪽이 아니라 다른 팀에서 맡는데.

사건이 이쪽으로 넘어와 내게 배정된 것을 보면 연쇄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는 건가.

하지만 정황상 연쇄적인 것으로 보기엔 아직 조금 무리가 있는데.

근래 그 어디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신고가 들어오지 않았단 말이야.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니 앉은 지 얼마 되었다고 또 일어나냐며 짜증을 내는 그였지만, 따라다니지 말라는 내 말에 금세 입을 다물고 책상에 퍽 소리를 내며 엎드려 버렸다.

“어? 박프로.”

내 이름은 언젠가부터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다.

“네, 계장님.”

계장님이었다.

왜 이 사건이 내게 배당되었는지 정확히 알기 위해 계장님의 사무실로 가던 참이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난 내 용건을 말했다.

‘음.’이란 말로 서두를 채운 뒤 자리에 앉아 씩 웃으셨다.

“자네라면 아이를 또 그 기억에 집어넣지 않고 범인을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네? 성범죄는 피해자의 진술이 제일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렇긴 하지만 똑같은 걸 반복적으로 물으면. 어른도 힘겨워하는 피해자 진술인데 아이는 오죽하겠나. 최대한 이미 해놓은 진술을 토대로 할 수 있으면…….”

“연쇄적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셔서 저한테 배당된 거 아닙니까?”

“하하. 유능한 프로파일러가 맡으면 조금이라도 빨리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맡긴 거라네. 이런 일에 민감하지 않은가.”

계장님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우리 천재 프로파일러님의 힘을 오랜만에 큰 사건에 쓰겠네.”

계장님의 마지막 말이 묘하게 거슬렸다.

기분 탓인가.

이 사건,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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