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와 함께 있던 형사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꽂혔다.
재현이 그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다.
하지만 해진은 가까이 있는 재현의 말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방금 지훈이 한 말이 귓가에 크게 맴돌고 있었다.
해진은 지훈에게 조금만 더 찾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지훈은 알겠다고 했고 그들의 통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누나, 왜 그래?”
재현이 해진에게 물었다.
해진은 머릿속으로 뭔가를 그려보는 듯 잠시 멍하게 있다가 팀장을 보며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고 했다.
팀장은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해진은 제 말만 하고 나가버렸다.
팀장은 재현에게 해진이 왜 그러는지 물었다.
이유를 알 리 없는 재현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해진은 제 차를 타고 재빨리 지훈과 지은이 밥을 먹었던 곳으로 갔다.
차에서 내려 샅샅이 찾아보기 시작했다.
지은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잡고 보았다.
불안이 잔뜩 스민 해진의 얼굴은 보는 이마저 초조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해진은 거칠게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서 생각해 보았다.
만약, 지은이 아니라 러디라면. 그녀라면 어디로 갔을까.
해진은 주변을 두리번대다가 한 곳에 시선을 두었다.
유난히 네온사인이 눈 아프게 반짝이고 있는 자극적인 거리.
유흥가.
현재 시간 오후 10시.
해진의 발걸음이 유흥가로 향했고 그 발걸음은 조금씩 빨라졌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러디는 목표물을 찍은 장소에서 연속적으로 목표물을 찾지 않았다.
그게 여태까지 프로파일링 된 그녀의 살해 패턴 중 하나였다.
저곳은 분명 러디의 네 번째 사건의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였던 곳이었다.
즉, 그곳에서 러디의 목표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디에 있는 걸까.
해진은 유흥가에서 발길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갔다.
그녀가 사라졌다고 지훈이 말한 뒤로 시간이 꽤 흘렀다.
이 근처를 벗어났을 가능성이 높아졌단 말이다.
해진이 마른침을 삼키고 주먹을 꽉 쥐었다.
떨림이 가득 섞인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머릿속에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해진이 ‘악!!’ 소리를 질렀다. 지나가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해진에게 꽂혔다.
하지만 해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하마터면 걸려 온 전화까지 못 받을 뻔했다.
진동이 끊어질 때쯤 해진은 지훈이라 생각하고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그 상대는 다름 아닌 지은이었다. 러디도, 제인도, 지성도 아닌 지은, 본인이었다.
“너 어디야.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아줌마…. 여기…. 악!!”
“지은아!! 여보세요?!”
“너는…!”
지은이 아니라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 목소리였다.
그것도 해진의 귀에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해진은 그제야 자신이 느꼈던 위화감이 무엇인지 알았다.
왜 그에게서 그런 것을 느꼈는지 알았다.
사람의 촉이라는 건 가끔 이렇게 쓸모가 있기도 한 건데 그걸 뒷받침할 근거가 없으니.
전화는 끊기지 않았다. 하지만 지은의 손에서는 완전히 벗어났다.
해진은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제발 뭐라도 들려라.
해진은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그 순간 확실히 들렸다.
학교의 종소리가.
학교 근처였다.
이 주변 학교라면 딱 두 곳 있었다.
지은의 모교인 혜원여자고등학교와 성일고등학교.
그리고 하나 더 들린 소리.
아이의 울음소리였다.
아, 설마 두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건가.
그 순간 아이의 울음소리가 끊겼다.
해진은 마음이 급해졌다. 차에 올라 액셀을 밟았다.
부디 자신이 가기 전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혜원여자고등학교에 먼저 도착했다.
야자를 끝내고 나가는 고3 학생들이 몇 명 보였다.
이곳에서부터 학교 종소리가 들릴 만한 은밀한 곳.
조용한 곳.
해진은 학교 겉을 둘러보았다.
두어 개의 골목을 제외하고는 주택가라서 사람들이 내다보지 않을 수 없는 구조였다.
그래도 요즘은 그렇게 남의 일에 손을 벌릴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되지는 않으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해진은 주변에 있는 모든 골목길을 뒤졌다.
골목의 끝에라도 있기를 바랐지만, 지은의 모습도 그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성일고등학교인걸까?
해진이 제 차가 있는 곳으로 달리려 했다.
그때 혜원여고의 뒷문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설마 학교 안에서?
뒷문이 열려 있는 게 이상했다.
문단속을 잘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해진의 눈에는 수상하게 보일 뿐이었다.
땀범벅이 된 해진이 혜원여고 뒷문으로 들어갔다.
조용히,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던 해진.
분노에 찬 지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지은의 말투와 달랐다.
이는 분명….
“개 같은 자식. 너 같은 놈이 경찰 배지를 달고 있어? 네가 내가 죽인 놈들이랑 다를 게 뭐야. 너 같은 새끼가 경찰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나라에 수치야. 알아?! 어디 그 더러운 손으로 날 만져!! 일찌감치 죽었어야 할 놈인데!”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일은 커져 있었다.
러디가 욕이란 욕은 다 해대면서 메스로 봐도 무관할 정도로 날이 선 나이프를 손에 들었다.
이후에 이뤄진 행동은 잔인함을 뛰어넘은 잔혹함이었다.
어쩌면 잭보다 더한 리퍼였다, 러디는.
러디는 얼굴에 피를 조금 묻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저 평소의 제 일이 끝이 난 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그냥 길가에 있는 쓰레기를 치운 선량한 시민의 얼굴이랄까.
자신이 저지른 범죄행각과는 너무나도 상반되는 얼굴이었다.
러디가 고개를 돌렸다.
해진과 눈이 마주쳤다.
해진은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좌절했다.
러디는 그를 비웃었다. 나이프를 들고 발걸음 가볍게 걸어갔다.
“직접 뒤처리를 해주러 오셨나? 왜?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잔인해?”
어떻게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을 수 있을까.
해진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그의 시체에서 시선을 옮겨 러디를 보았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
해진은 괴로운 듯 미간을 좁혔다.
러디의 양어깨를 잡은 해진.
그녀에게 물었다.
“도대체 네가 기억하는 게 뭔데. 뭐기에 이런 짓을 하는 건데!!”
“뭘 그런 걸 물어. 내가 대답해 줄 것 같아? 넌 이왕 왔으니, 뒤처리만 깔끔하게 해주면 돼. 지은이가 교도소에 들어가는 거, 넌 원하지 않잖아?”
“애는 어디 있어? 너, 애를 죽이진 않잖아.”
러디가 고개를 돌려 눈짓으로 힐끗 해진이 찾는 ‘애’를 가리켰다.
기절한 듯 아이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러디는 멍해진 해진을 보며 픽 웃고는 제 양어깨를 잡은 해진의 손을 밀어냈다.
“이놈 때문에 심기가 상당히 불편해졌어. 내가 점찍어 놓은 타깃이 조만간 이 꼴이 날 수도 있으니까 대기 타.”
러디는 기겁할 만한 선전포고를 하고는 먼저 현장을 빠져나갔다.
해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덜덜 떨리는 손이 그의 감정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주먹을 꽉 쥐어보아도 그 떨림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해진은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피가 날 정도로 아주 꽉.
* * *
자정이 넘어 다음날이 되고 1시간 정도 뒤, 혜원여고가 관할구역에 포함되어 있는 서에 신고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자는 해진이었다.
경찰들은 화들짝 놀라 학교로 출동했고 소각장 앞에 있는 시신을 보고 뒤로 자빠졌다.
그들은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러디사건이 일어났다는 걸.
하지만 러디의 시그니처가 없었다. 그렇다면 카피캣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러디에게 뭔가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것일까?
어느 쪽도 확신할 수 없었다.
경찰이 죽은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게 또 하필 러디와 얽혔을 가능성이 컸다.
이 사건은 관할 서가 아닌 경찰청의 강력계로 사건이 넘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투입된 프로파일러 중엔 해진도 있었다.
해진은 현재 아동성범죄 사건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몇 년째 그림자도 못 찾고 있는 러디 사건의 프로파일러이기도 했기에 빠질 수 없었다.
한참 전부터 현장에 있었기에 시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시간이 길었다.
괴로웠다.
처참하게 분해되어 버린 그의 시신을 내려다보고 있기가.
해진은 어제의 러디가 떠올랐다.
그에 대한 증오가 잔뜩 서려 있는 목소리와 눈빛.
하지만 해진은 그것이 오로지 죽어버린 그만을 뜻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과거의 누군가와 관련이 되어 있는 것이라 확신했다.
“사건 담당 프로파일러가 현장 첫 발견자라니. 이건 무슨 신의 장난이냐. 너 왜 여기 있었던 거야?”
“아……. 지은이 찾으러 다니다가. 그 사이에 나랑 길이 엇갈렸나 봐.”
“에효. 그것도 무슨 신의 장난이냐. 그건 그렇고. 이렇게까지 시신을 훼손해 놓은 걸 보면 러디 말고는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데, 뭐가 없어. 훼손만 실컷 해놓고.”
김친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돌려버리려던 찰나, 해진이 멍하니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는 걸 보고 툭 쳤다.
해진은 그제야 제 생각 속에서 벗어난 듯 ‘응?’이라며 김친구를 바라보았다.
김친구는 미간을 살짝 좁히고 해진을 장난기 섞인 눈빛으로 보았다.
“왜. 너한테 일을 퍼붓던 사람이 죽으니까 새삼 또 느낌이 다르냐?”
“김세현.”
“왜 불안하게 이름을 부르실까?”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계장님에게 있다면……. 그건 뭘까?”
“뭔 소리야.”
해진은 지은의 과거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버렸다.
하지만 러디를 비롯한 제인이나 지성에게 묻는다고 해도 가르쳐줄 것 같진 않았다.
무엇보다 러디를 제외하고는 과거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확실치 않았다.
그 순간 해진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해진은 눈을 번뜩이며 세현에게 잠깐 어디 좀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비웠다.
해진이 향한 곳은 시은의 집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개가 짖고 있었고 그 개를 잡은 건 그녀의 남편이었다.
해진이 오고 난 뒤로 시은의 낯빛이 어두워서 그가 해진을 그리 달가워하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해진이 그것까지 신경을 쓸 여유는 없었다.
시은은 휠체어를 탄 채로 해진의 사선에 자리했다.
해진은 그녀의 남편에게 자리를 좀 비워달라고 했다.
그는 그 이유를 물었지만, 해진은 그에 대해 대답하지 않고 시은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시은은 해진과 눈이 마주쳤다. 시은은 양손을 꼭 맞잡았다.
눈을 한 번 질끈 감고 남편에게 자리를 비워달라고 했다. 그는 시은의 말에 놀랐다. 그녀의 표정은 안 된다고 말할 것 같았는데 그녀의 입에선 다른 말이 나왔으니까.
한층 무거워진 분위기에 그가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둘이 남게 된 거실.
숨이 막힐 듯한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그들의 주위를 돌고 있었다.
그 정적을 깬 사람은 바로 해진의 낮은 목소리였다.
“오늘 새벽 한범진 계장님께서 살해당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