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범죄의 뒷면(4)

by 한도담

“시신은 심각히 훼손된 상태였고요.”

“그게 무슨…!”

시은은 화들짝 놀라 해진에게 되물었다.

정말 자신이 들은 게 맞는지. 해진은 짙은 숨을 내뱉으며 한 번 더 말해주었다.

“러디, 인가요?”

“글쎄요. 아직 조사 중에 있습니다.”

“그렇군요.”

시은은 해진에게 정확히 어떻게 된 사건이 말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해진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들어야 하는 말을 먼저 듣길 바랐다.

공허한 듯한 해진의 눈에 시은이 담기고 해진이 시은에게 물었다.

“계장님과 이번 아동성범죄 사건이 관련되어 있었습니까?”

“경감님.”

“범인을 러디라고 생각했을 때, 발견된 장소가 학교와 같은 곳일 때는 없었습니다. 주로 유흥가의 골목, 다리 밑과 같은 어두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번엔 학교였을까요?”

“러디라면, 이번은 러디답지 않네요.”

러디답지 않다.

살해 패턴이 바뀌었다는 건 러디에게 심적으로 변화가 있었다거나 상황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

러디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미루어 보았을 때도 이는, 계획 살인이 아니라 우발적인 살인이었다.

“계장님이 만약 러디에게 살해를 당했다면 학교에서 죽을 만한 건더기를 계장님이 가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게 러디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대한 키가 될 수도 있어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해진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한 번 누르고 말을 이었다.

“한 지역에서 아동성범죄만 해도 건이 큰데, 프로파일러가 죽고 러디가 개입되었을 가능성도 큽니다. 사건이 당신이 감당하기 힘들 만큼 커졌죠? 이제 어쩔 생각입니까? 내가 당신을 서에 끌고 가지 않았던 건 유예기간을 준 거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가 직접 오게끔 하시네요?”

억누른 감정은 말을 하면서 다시 격분되었다. 시은을 몰아세웠다. 그 탓에 시은은 더욱 입을 꾹 다물었고 해진은 그녀를 보며 한숨을 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조금 뒤, 그 정적을 깬 사람은 입을 꾹 다물고 열 생각조차 보이지 않던 시은이었다.

“목격자인 건 맞아요. 그 아이를 병원에 보낸 것도 저고요.”

“계장님을 본 사실을 말하지 않은 이유가 뭡니까? 상관이었던 사람이라 잔정이 남아 있었던 겁니까?”

시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리라 칭하는 잔정 때문이 아니라면 그를 숨겨준 이유가 뭘까.

해진은 시은이 다시 입을 열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시은은 깊은 호흡 뒤에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 이야기는 10여 년 전, 그 끔찍했던 사건이 일어났을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이 다리는 2004년 두 번째 사건이 끝나고 얼마 뒤에 다친 거예요.”

“네? 그 사건 끝나고 사표 내셨다고 들었는데?”

“사표를 내가 냈다고 그래요? 난 사표를 낸 적이 없어요. 냈다고 통보를 받았을 뿐이지.”

해진은 뒤죽박죽이 된 제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었다.

* * *

2004년. 44세의 여성이 칼에 찔렸지만 죽지 않아 살인이 아니라 미수로 그친 불행 중 다행인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을 관할 서 강력 3팀이 맡게 되었고 시은은 피해자 진술을 듣기 위해 그녀가 있는 병원으로 가던 차였다.

2인 1조의 파트너체제라 그녀의 옆에도 파트너가 있었다.

해진이 형사 3팀의 팀장.

이름이 박진성이라고 했던가.

운전석에 앉아 있던, 지금보다 앳되어 보이는 시은이 갑자기 차를 멈추고 한 곳을 응시했다.

급정차하는 탓에, 창문에 기대고 있던 진성은 머리를 박았다.

“뭐 하는 짓이야?!”

하지만 시은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흐릿한 목표물을 조금 더 선명하게 보기 위해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의 고함에도 반응이 없는 시은에 입을 비죽이다가도 시은이 향해 있는 곳에 진성도 시선을 머물게 했다.

멀어도 너무 먼 거리.

누군지 확실히 알 순 없었지만, 저 둘의 관계가 일반적이 아니라는 건 느껴졌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꼴이 그랬다.

진성이 시은을 툭툭 치며 뭐냐고 물었다.

시은은 방해하지 말라는 듯 그를 보지도 않고 그를 향해 손을 휘적댔다.

진성은 맨날 귀찮아한다며 옆에서 구시렁댔다.

그리고 그마저도 조금 지칠 때쯤 진성이 어서 피해자 진술 들으러 가자며 그녀를 재촉했다.

순간 그녀의 입이 떡 벌어졌다.

진성이 그것을 보고 그렇게 해서 턱이 빠지겠냐며 비아냥댔지만, 시은은 그것을 받아칠 정신이 없었다.

제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저 사람은 분명히 3팀의 팀장직을 맡고 있는 수현이었으니까.

시은은 행여 자신과 눈이 마주칠까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액셀을 밟았다.

이번엔 급출발이라.

“미쳤냐?!”

진성이 빽 소리를 질렀다.

살인미수 사건이라 피해자 진술에서 범인에 대한 단서가 많이 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피해당한 건 안타까웠지만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선 그걸 기대하고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은 기억나지 않는다는 피해자의 말에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그런 일을 겪고 또렷하고 명확하게 기억하며 이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형사들도 이를 이해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움이란 어쩔 수가 없는 것이었다.

살인이 최종적으로 13건이나 될 사건이었지만 그때 당시는 그것까지 알 순 없었다.

시은은 수현의 이상행동을 평소와 비교해 보았을 때 쉽게 납득할 수가 없었다.

빙빙 돌려 말하는 재주도 없으니, 시은은 수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때 만나고 있던 사람이 누구냐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은밀하게 만난 상대가 누구냐고.

수현은 능청스럽게 무슨 소릴 하는 것이냐며 잡아뗐다.

그래, 이게 일반적이지.

하지만 시은이 그냥 넘어갈 성격의 사람은 아니었던 터라 수현에게 단단히 충고를. 아니, 경고를 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팀장님께서 사건에 개입된 건 아니길 바랍니다.”

시은은 그렇게 유유히 그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시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수현의 눈빛은 원수를 보는 눈빛과 같았다.

날카로웠다.

차가웠다.

그 뒤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수현이 시은을 불렀고 그의 부름으로 간 곳엔 수현이 아니라 생뚱맞게도 범진이 있었다.

그녀가 오길 기다렸다는 듯 그녀에게 제 맞은편을 가리키며 앉으라고 했다.

시은은 미간을 살짝 좁혔지만, 그의 손짓에 따라 그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낯선 사람은 아니었다.

공조수사를 한 적이 있던 터라 한 번쯤 본 얼굴이었다.

프로파일링이라는 수사기법이 제대로 붙여졌을 때는 아니었지만 그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한범진 경감.

“팀장님이 부르셔서 왔는데 팀장님은 어디 계십니까?”

“아, 최팀장에게 자네를 불러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나야.”

시은은 이해할 수 없단 표정으로 가만히 그가 말을 잇길 기다렸다.

범진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픽 웃고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목을 축이고 나서야 범진은 다시 시은을 보았다.

“최팀장의 뒷조사를 하고 있다고?”

“용건만 짧게 해주십시오.”

“송시은 형사님, 사람에겐 개개인의 사정이란 게 있는 거야. 그걸 허락도 없이 까발리면 짜증 나잖아? 엄연한 사생활 침해인데.”

“범죄에 가담한 걸 조사하는 걸 침해라고 하진 않죠.”

“증거는?”

형사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

이 사건을 기소할 수 있는지 없는지까지 결정지어 주는 가장 중요한 것, 바로 증거였다.

단순한 심증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확실한 물증.

증인이라면 자기 자신일 테지만 보여줄 수 있는 녹취록이나 녹화본 같은 건 없었다.

시은은 범진을 노려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하하. 그렇게 무서운 표정 하지 말라고. 자네가 최팀장에게 했던 경고를 나도 하기 위해 불렀을 뿐이니까. 밥은 겸사겸사.”

“…….”

범진은 표정을 싸하게 굳혔다.

아무렇지 않게 그의 눈빛을 받아내고 있었지만, 시은의 양손은 세게 주먹 쥐어져 있었다.

범진은 뻣뻣하게 굳어 있는 시은은 잠시 그렇게 보다가 한쪽 입꼬리를 묘하게 올리며 한 마디 툭 던지고는 가버렸다.

“경찰이 아니면 수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데. 두 다리로 다니면서 경찰 일 계속하고 싶으면 가만히 있어요. 더 이상 캐내려 하지 말고.”

시은은 그 말을 그 자리에서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는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이러기 위해서 경찰이 된 게 아닌데.

누구보다 정의롭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 들어온 것이었는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고 했던가.

시은은 비참한 자신의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더 비참해진 상황이 오고야 말았다.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수상한 행적을 보이는 수현을 비밀리에 조사하던 시은은 세 번째 사건이 일어나기 하루 전, 뒤에서 가해진 충격으로 인해 낙상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시은이 눈을 떴을 땐 병상이었고 제 다리에 감각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불현듯 떠오르는 범진이 했던 말.

‘두 다리로 다니면서 경찰 일 계속하고 싶으면 가만히 있어요.’

절망스러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잘 움직이던 두 다리가 이렇게 한순간에 못 쓰게 되었다니.

제 꼴이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나오기도 했고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라 추측되는 그 인물에 화가 나기도 했다.

시은은 씩씩대며 눈물 고인 눈으로 진성에게 전화를 걸려 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진성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고 시은이 전화를 받았다.

시은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진성이 소리를 빽 질렀다. 그리고 그 소리가 전하는 소식에 시은은 헛웃음이 나왔다.

“야!! 너 왜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사표야?!! 개인적인 사정이 뭔데?!!”

그때 누군가에 의해 틀어진 TV에선 범진이 나오고 있었다.

시은의 입에서는 욕지거리가 자연스레 나왔다.

핸드폰으로 전화하고 있던 진성은 왜 욕을 하냐고 투덜댔다.

시은은 자신이 입 아프게 말해봤자 해결되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걸 진성이 알면 그 또한 이런 일을 겪을 수도 있겠단 생각에 그냥 그렇게 됐다고 얼버무리며 전화를 끊었다.

제 머리칼을 마구잡이로 헝클며 천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고였던 눈물이 눈가를 따라 흘러내렸다.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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