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범죄의 뒷면(5)

by 한도담

시은이 그때를 다시 회상하며 맞잡은 양손에 힘을 주었다.

질끈 감은 두 눈을 떴을 땐 기다렸다는 듯 눈물이 손 위로 툭 떨어졌다.

시은이 크게 호흡을 한 번 하고 빨개진 눈으로 해진을 보며 마저 말을 이었다.

“그때도 그랬어요. 그리고 집에 돌아오니까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이번엔 진짜 날 죽이겠구나. 그 사람, 참 싫고 짜증 나는데. 죽긴 싫었어요. 정말 죽기 싫었어요. 이제야 겨우 내 가족 만들어서 좀 단란하고 잘 살고 있는데. 난 이 행복 깨기 싫었어요.”

행복을 깨기 싫었다. 그 말이 해진의 가슴 속에 콕 박혔다.

마치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해진 역시 그랬다.

현재 지은의 행복을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했기에.

그래서 그들이 가져간 기억을 다시 되돌리려 하지 않았다.

해진은 짙은 한숨을 내뱉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참 모순적인 상황이었다.

본인도 그러고 있으면서 시은에게 ‘다시 증언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꼴이라니.

하지만 이는 자기 자신 말고는 그 누구도 몰라야 하는 사항이었다.

그렇기에 해진은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말해야 했다. 서로 함께 가줘야겠다고.

시은은 느릿하게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고 해진은 그녀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보다가 그녀의 뒤로 가서 휠체어를 밀었다.

시은과 함께 경찰청으로 들어오는 해진.

그들을 본 형사들과 세현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세현이 그에게로 가 누구냐 물었고 해진은 ‘사건 목격자.’라고 대답해 줬다.

세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그보다 급한 사건은 범진을 살해한 사건일 텐데.

의문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보는 세현에게 그 이상의 말도 해주지 않고 지나쳐 곧바로 조사실로 들어갔다.

세현과 형사들은 관찰실로 들어갔고 녹음기가 켜졌다.

“이름 말씀해 주세요.”

“송시은입니다.”

“아까 저한테 하셨던 얘기 다시 한번 해주시겠어요?”

시은은 깊은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며 천천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관찰실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묵묵히 듣고 있던 이들의 눈은 휘둥그레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현직 프로파일러가, 그것도 계장이라는 사람이 이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아동성범죄를 저질렀다니.

시은의 진술이 끝이 나고 해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고 조사실을 나왔다. 동시에 세현이 관찰실에서 나오며 해진의 옆에 섰다.

“대박. 그 얼굴로 그런 짓을 저지르고 경찰공무원증 들이밀고 다녔어. 그건 그렇고. 이제 계장님. 아니, 한범진 살인사건만 남았네.”

“…….”

해진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세현도 그와 함께 발걸음을 멈추고 제 말을 이었다.

“러디 사건이라고 하면 이번이 5차지? 러디도 참 징글징글하다, 징글징글해.”

세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해진보다 먼저 발걸음을 뗐다.

제 자리로 간 해진은 자리에 앉아서 마른세수를 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었다.

죽은 사람이 다른 이도 아니고 경찰에, 그것도 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 계장이다.

물론 그가 저지른 범죄는 비난을 받아야 마땅했고 그로 인해 좀 그렇지만 ‘잘 죽었다.’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겠으나 이유야 어찌 되었든 살해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면 수사를 해야 하는 것이 경찰의 기본적인 의무였고 그 속엔 해진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왜 이렇게 일이 꼬여. 그 망할 것은 도움이 안 돼요, 도움이.”

해진이 러디에 대한 짜증을 내고 있는데 해진의 핸드폰이 울리며 ‘지은이’라는 발신자명을 띄웠다.

해진은 잠시 망설이는 듯싶더니 이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해진의 조심스러움이 가득한 목소리가 먼저 났다.

그리고 핸드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그에게 ‘아줌마’라는 호칭을 쓰며 해진에게 안도감을 심어주었다.

해진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응, 지은아.’라고 답했다.

몇 번의 말을 주고받았다.

지은이 전화를 해줬다는 것에 기분이 좋긴 했지만, 평소와 다른 그녀의 어투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를 무어라 표현해야 좋을까.

분명 그 어투는 지은의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는 듯함에서 오는 답답함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이 있었다.

설마 누군가 지은의 흉내를 내는 것일까.

그들이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게 맞다면 지은과 함께 있었을 때의 기억을 말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이 상황이라면 제외될 수도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아, 인격이라고 해야 하나.

제인.

제인은 가장 지은과 유사한 인격이긴 했지만, 누군가를 흉내 낸다거나 하는 인격은 아니었다.

러디 성격이라면 장난을 친답시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직접 눈으로 봐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해진은 그런 결론에 도달함과 동시에 겉옷을 챙겨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박친구, 어디가? 보고서는?”

“아…….”

세현이 손에 사이다 한 캔을 들고 걸어 들어왔다.

보고서도 쓰지 않은 것 같은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세현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해진이 보고서 쓰는 것을 잊어버린다는 게 세현의 입장에선 납득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세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해진의 옆인 제 자리에 사이다를 내려놓고 섰다.

“너 어디 아프냐? 왜 정신을 못 차려? 보고서를 빼먹을 인간이 아닌데, 네가. 뭐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거야? 꼬맹이한테 무슨 일 생겼어?”

“…지은이….”

“뭐야, 진짜 무슨 일 생겼어? 왜 무슨 일인데. 아, 일단 다녀와서 말해라. 가, 얼른!”

세현은 그에게 지은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던져본 말이었는데 해진의 반응이 자신이 생각했던 안 좋은 표정과 들어맞자, 멋대로 지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확정 짓고 해진을 밀며 얼른 가보라고 했다.

덕분에 해진은 경찰청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액셀을 조금 세게 밟아서 평소보다 빨리 집에 도착했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TV 소리가 들렸고 TV의 맞은편 소파에 지은이 드러누워서 TV를 보고 있었다.

지은은 고개를 뒤로 젖혀 해진을 보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사건 종결?”

“…응. 종결.”

지은은 다시 TV로 시선을 옮겼고 해진은 지은을 한참 서서 지은을 보고 있었다.

지은은 제 옆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돌렸고 자신을 보고 있던 해진과 눈이 마주쳤다.

지은이 미간을 살짝 좁히고 왜 그렇게 보냐고 물었다.

해진은 그 거리에서도 지은의 물음을 듣지 못한 것처럼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지은을 바라보기만 했다.

지은은 그런 해진에게서 이상함을 느꼈고 소파에서 일어나 해진의 앞에 섰다.

해진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제 특유의 까칠한 목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나름 다정하다고 생각되는 목소리로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물었다.

해진의 눈엔 슬픔이 가득했다.

하지만 입꼬리를 살짝 올려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아무 일도.”

해진은 지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씻고 오겠다며 제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해진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지은은 해진의 방문이 닫힌 뒤에도 계속 방을 보고 있었다.

살갑게 표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저런 상태로 사람이 들어오는데 걱정이 되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일 테니까.

지은은 해진의 방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곳에 서 있을 뿐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진 않았다.

아니, 들어가지 못하는 걸까.

해진이 제게 말해주지 않는 것이 이렇게 신경 쓰일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찝찝한 기분일 줄은 몰랐는데.

“아줌마.”

지은이 해진을 불러보았다.

안에서 한숨 소리 뒤에 들려오는 해진의 목소리.

금방 울기라도 한 듯 축 젖은 목소리였다.

망설이던 것을 그만하고 지은은 문고리를 잡았고 돌려 방문을 열었다.

해진은 문으로부터 뒤돌아 서 있었다.

마치 지은이 지금 제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하는 것처럼.

“사건 잘 마무리된 거 아니야? 왜 그러는데, 사람 신경 쓰이게.”

틱틱대는 말투였지만 걱정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지은이었다.

이질감이라곤 없는 오롯한 지은이었다.

해진은 주먹을 꽉 쥐고 아랫입술을 물었다.

자신이 삼키고 있는 울음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길 바라는 듯했다.

“말 못 해주는 거면 물어봐서 미안. 나갈게.”

아무 말이 없는 해진에 지은이 말해주면 안 되는 것이라 판단한 뒤, 간단히 사과하고 나가려 했다.

하지만 지은이 뒤도는 순간 해진이 그녀를 꼭 안았다.

애써 삼키고자 했던 울음이 호흡으로 그대로 지은에게 전해졌다.

“다 괜찮을 거야. 그렇지? 다 괜찮을 거야.”

불안이 가득 스민 그의 목소리에 지은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

흐릿한 영상 하나가 머릿속에서 재생이 되는 것 같았다. 화면은 명확하지 않았지만, 소리는 깨끗하게 들렸다. ‘다 괜찮을 거야.’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은은, 자신도 혼란스러운 와중에 자신을 감싼 해진의 팔을 쓸어내려 주며 답해주었다.

“응, 괜찮을 거야. 전부 다.”

‘다’가 뜻하는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을 것이라고, 그렇게 말해주었다.

괜찮을 것이라는 말을 내뱉을 때 왜 그렇게 구역질이 날 것 같은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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