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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도연 Jun 13. 2024

케테 콜비츠 회고전

모마미술관 특별전


현재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케테 콜비츠 (Käthe Kollwitz) 회고전을 하고 있어요. 189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120점의 드로잉, 판화, 조각 등이 전시되고 있고 전시회는 7월 20일까지입니다. 

케테 콜베츠는 독일 출신의 판화가, 화가, 조각가예요. 진보적인 신학자이자 목사였던 외할아버지 덕분으로 자유로운 가정 분위기 속에서 그녀는 화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해요. 이후 남편 카를 콜비츠를 만나 예술활동을 이어 나가요. 여성 화가에 대한 편견과 억압이 당연했던 사회적 분위기였지만 그녀의 남편은 온화한 성격의 휴머니스트 의사로 그녀를 지원했습니다. 빈민촌에서 남편과 함께 살며 남편은 가난한 이들을 치료하고 콜비츠는 그들을 그렸어요. 여자는 유화를 다루는 것보다 작은 판화를 다루는 것이 맞다는 아카데미 교수들의 의견에 따라 판화를 전공했기에 그녀 작품에 판화가 주를 이룹니다. 


사람들의 고통을 대변하는 것이 나의 의무입니다.


판화 그림의 주제는 고통받는 가난한 농민들이었고 콜비츠는 사회적 제도나 사상을 넘어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그들을 표현했어요. 대표작으로 <직조공들> <농민전쟁> <전쟁> <엄마들> 연작이 있으며 자화상으로 자신을 표현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콜비츠는 1902년에서 1908년까지의 시간 동안 <농민전쟁> 판화시리즈를 제작해요. 이는 1525년 독일에서 일어났던 농민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낫을 갈다> <전쟁터> <포로들>
<농민전쟁> 연작

케테 콜비츠의 대표작 <피에타>는 <농민전쟁> 연작의 6번째 작품이었는데 후에 별도로 제작이 되었어요.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이라는 작품으로 아이를 잃은 엄마의 슬픔과 고통을 표현한 작품이에요. <피에타>라고도 불립니다. 피에타(Pietà)라는 뜻은 이탈리아어로 슬픔, 비탄을 뜻하는 말로 기독교 예술의 주제 중 하나예요. 주로 성모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떠안고 비통에 잠긴 모습을 묘사한 것을 말해요.(Wekipedia 참고) 

Women with Dead Child, 1903


그녀가 이 작품을 작업할 때 정서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감정이 몰입되어 힘들었다고 전해져요.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때 어린 아들이 다가와서 "엄마 아프지 말아요, 작품이 아주 멋있을 거예요"라고 위로했습니다. 큰 아들 한스에 따르면 콜비츠는 작품을 만드는 내내 울었다고 전해져요. 


아이를 안고 울고 있는 여인의 다리. 온몸에 힘을 주어 끌어안았기에 웅크린 다리가 올라가 있어요. 이렇게 꼭 끌어안고 슬퍼해도 돌아오지 않는 아이를 부둥켜 안고 새끼 잃은 짐승처럼 온몸으로 고통을 표현합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에서 보이는 마리아의 정제된 슬픔은 현실 속에서는 있을 수 없지요.


그런데, 운명의 장난일까요? 자식을 먼저 보낸 슬픔은 그녀의 운명으로 이어지게 돼요. 둘째 아들 페터는 1914년 1차 세계대전에 열여덟 살의 나이로 군에 자원해요. 부모의 반대가 있었지만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고, 그 해 10월 30일 전사합니다. 당시 제대로 훈련도 없이 전장에 나가서 총알받이부대가 되었던 경우가 흔했으니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이들도 많았겠죠. 


그때부터 나는 늙기 시작하여 죽는 날만 기다리게 됐다. 더 이상 똑바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나는 꺾였다.


그녀의 일기장에 써져 있었던 말이에요. 아들이 죽은 이유가 자신의 작품 때문이었을 거라고 자책도 해보고, 내가 대신 죽었어야 한다며 가슴을 치면서 괴로워하기를 3년, 다시 그녀는 작품활동을 시작해요. 전쟁의 시대를 살아내야만 하는 엄마의 모습과 전쟁에 반대하는 작품들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아들이 죽고 난 뒤 8년 뒤, 그녀는 <전쟁> 연작을 발표해요. 전후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던 독일. 독일의 경제는 땅을 치고 사회는 극단적으로 상하분여로디고, 전쟁의 위험은 고조되었던 그때 그녀는 예술로 자신의 역할을 합니다. 우리 엄마들은 아이들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Never Again War, 1924


<엄마들>에서는 자식들을 위해 엄마들이 '연대'하고 있어요. 전쟁에서 고귀한 희생 따윈 없다고, 전쟁에 나오는 이들은 누군가의 귀한 아들이고 고귀한 생명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어요. 국가 간 잇속 다툼에서 휘둘리지 않고 내 자식을 지키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며 나온 그녀의 결론은 평화적 시위입니다. 아무런 힘도 없어 보일지라도 양팔을 펼쳐 서로 팔짱을 낀 채 버티고 있는 엄마들의 표정을 보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듯해요. <엄마들> 작품은 피에라 델라 프란체스카의 <자비의 성모>라는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자신의 외투를 펼쳐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성모님처럼, 우리 또한 양팔 벌려 인간애라는 외투 속에서 자식들을 보호하자고 외치고 있는 것이죠.


<엄마들> 연작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자비의 성모>에서 영감을 얻다

든 자화상에서 그녀는 웃지 않아요. 아니 웃을 수 없어요. 자식 잃은 슬픔을 가진 이가 웃어도 그게 어디 웃는 것일까? 자화상 속 그녀의 퀭한 눈을 보면서 그 슬픔의 깊이를 헤아려 봅니다. 죽는 날만을 기다린다는 그녀. 안타깝게도 2차 세계대전에서 손자를 또 잃게 되는 비극이 일어나요. 고통으로 얼룩진 전쟁의 시대를 살아갔던 엄마이자 화가였던 그녀에게, 어떻게 살고 버텼느냐고 묻게 됩니다. 그녀는 1945년 히틀러가 항복하기 2주 전에 생을 마감해요. 

<자화상> <비탄>


가슴을 붙잡고 울면서 전시를 보았습니다.

그녀의 삶을, 전쟁의 고통을 경험한 과거의 그들을 애도하면서요. 


#뉴욕미술관 #뉴욕여행 #그림인문학도슨트_한도연 #moma_n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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