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페르시아의 심장이 품은 지정학적 운명

by 한병철 Mikhail Khan

1. ‘세상의 보석’이라 불리던 고독한 섬


지난 2,000년의 인류사에서 호르무즈(Hormuz)만큼 화려한 찬사와 비극적인 전란이 교차한 곳은 드물다.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이 좁은 물목은 단순한 해상 통로가 아니었다. 13세기 마르코 폴로는 이곳을 "세계의 모든 상인이 모여드는 곳"이라 칭송했고, 15세기 아랍의 연대기 작가들은 "세계가 반지라면, 호르무즈는 그 위의 보석"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그 찬란한 '보석'은 늘 피로 닦여야 했다. 호르무즈의 역사는 곧 페르시아라는 거대한 실체가 겪어온 지정학적 숙명의 압축판이다. 오늘날 미·이란의 갈등 속에서 다시금 전 세계의 화약고로 떠오른 호르무즈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그 땅이 가진 기록의 역사부터 훑어내려 가야 한다.


10041.jpg 마르코폴로의 여행 경로



2. 역사 속의 호르무즈 : 기록이 증언하는 번영과 열기


고대부터 중세까지: "이름이 흐르는 통로"

호르무즈라는 이름은 고대 페르시아의 주신인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1세기경 그리스 상인이 쓴 『에리트라이해 항해기』에는 이 지역이 인도에서 온 향료와 보석이 로마 제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핵심 관문으로 묘사되고 있다. 당시 호르무즈는 섬이 아닌 본토의 '민압(Minab)' 강 근처에 위치한 비옥한 항구였다.


하지만 13세기 말, 역사의 거대한 파도가 들이닥쳤다. 몽골 제국의 일칸국이 페르시아를 통치하며 내부 혼란과 약탈이 극에 달하자, 호르무즈의 통치자들은 결단을 내린다. 그들은 주민 전체와 창고의 보물들을 챙겨 본토에서 약 8km 떨어진 제룬(Jerun) 섬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이 섬은 담수조차 나오지 않는 척박한 소금 덩어리였으나, 몽골의 기병대가 건너올 수 없는 '천혜의 요새'였다. 이때부터 육지의 이름인 '호르무즈'가 섬의 이름으로 전이되며, 우리가 아는 해상 왕국 호르무즈의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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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5 09;44;15.PNG 호르무즈 섬의 위치


마르코 폴로의 경악 : "금과 보석, 그리고 살인적인 열기"

1272년과 1293년, 두 차례 호르무즈를 방문한 마르코 폴로의 기록은 호르무즈의 양면성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동양의 보고(寶庫) : 폴로는 호르무즈를 "인도의 모든 상인이 배를 타고 찾아와 사자와 표범, 매를 팔고, 비단과 금직물, 코끼리 상아를 부리는 곳"이라 기록했다. 그는 이곳의 부유함이 유럽의 그 어떤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사뭄(Samum)의 공포 : 그러나 그는 이곳의 기후를 '재앙'이라 불렀다. 여름이면 내륙에서 불어오는 뜨겁고 건조한 모래바람 '사뭄'에 대해 그는 이렇게 적었다. "이 바람이 불 때 들판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질식해 죽는다. 죽은 이들을 매장하려 팔을 잡으면 살점이 뼈에서 녹아내려 떨어질 정도다."

이 극단적인 열기를 이기기 위해 호르무즈인들은 집마다 배드기르(Badgir)라 불리는 바람 탑을 세웠다. 폴로는 이 탑이 어떻게 바람을 포획해 지하 수로 위로 통과시켜 실내를 냉각하는지 경이롭게 서술하며, 인간이 자연의 가혹함을 이겨내는 방식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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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gir-wiindcatcher-windtower-8c562f.jpg 바람의 탑


이븐 바투타와 마환 : "이슬람과 명나라가 만나는 교차로"

14세기의 대여행가 이븐 바투타가 도착했을 때, 호르무즈는 이미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거대한 백화점이었다. 그는 "호르무즈는 섬임에도 불구하고 본토보다 훨씬 화려한 시장을 가졌으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라고 평했다. 그는 특히 이곳의 진주 무역에 주목했는데, 카타르와 바레인 근해에서 채취된 최상급 진주들이 호르무즈에 모여 전 세계로 팔려나가는 광경을 상세히 묘사했다.


15세기에는 명나라 정화의 대함대와 함께 항해했던 기록관 마환(Ma Huan)이 이곳을 찾았다. 그의 저서 『영애승람』에서 호르무즈는 '홀로모사(忽魯謨斯)'로 기록되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매우 부유하며, 쌀과 밀은 적으나 보석과 진주가 산더미 같다. 그들은 금과 은으로 정교한 장신구를 만들며, 시장에는 아라비아산 명마들이 넘쳐난다."


마환의 기록은 호르무즈가 단순히 서구의 관점뿐만 아니라, 동양의 거대 제국에게도 놓칠 수 없는 전략적 무역 파트너였음을 입증한다.


포르투갈의 정복과 "지구의 목구멍"

1507년, 포르투갈의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가 함대를 이끌고 나타났을 때 호르무즈의 운명은 다시 한번 바뀌었다. 그는 호르무즈 항구에 떠 있는 수백 척의 선박을 격파하고 섬을 점령했다.

그는 이곳에 붉은 돌로 만든 거대한 '구원자 성모 성채(Fortress of Our Lady of the Conception)'를 쌓았는데, 이 성채는 오늘날까지도 호르무즈 섬에 남아 과거의 영광을 증언하고 있다.


포르투갈인들은 호르무즈를 "지구의 목구멍"이라 불렀다. 이곳을 틀어막으면 페르시아만 안쪽의 모든 교역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당시 호르무즈의 세입은 포르투갈 왕실 전체 예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막대했다.


이처럼 호르무즈의 역사는 "가장 척박한 땅이 가장 풍요로운 곳이 될 수 있다"는 지정학적 역설을 보여준다. 마르코 폴로가 본 열기, 이븐 바투타가 본 진주, 포르투갈인이 본 전략적 가치는 모두 하나의 점으로 수렴한다. 그것은 바로 호르무즈 해협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부를 지배한다는 법칙이다.


지난 2,000년간 이어진 이 '번영의 기록'들은 현재 호르무즈가 겪고 있는 정치적 격랑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이 땅은 조용했던 적이 없었으며, 그 화려한 기록의 이면에는 늘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와 패권을 향한 탐욕이 소금기 섞인 바람과 함께 불고 있었다.


000-2.jpg 호르무즈의 붉은 바다


3. 지정학적 숙명: 페르시아의 관문이자 세계의 목구멍


지정학(Geopolitics)에서 '초크포인트(Chokepoint, 전략적 요충지)'라는 용어는 호르무즈 해협을 위해 만들어진 단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은 단순히 바닷길이 좁아지는 지점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에너지가 흐르는 '경동맥'이자, 대륙의 힘과 해양의 패권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역사의 단층선'이다.


세계의 목구멍 : 33km의 압도적 긴장감

호르무즈 해협의 가장 좁은 폭은 약 33km(21마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실제 대형 유조선과 군함이 통행할 수 있는 항로(Shipping Lane)는 양방향 각각 3.2km(2마일) 너비에 불과하며, 그 사이에는 충돌 방지를 위한 완충 지대가 놓여 있다.


이 좁은 '목구멍'을 통해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30%, 천연가스(LNG)의 25% 이상이 통과하고 있다. 만약 이 통로가 막힌다면 현대 문명은 즉각적인 심정지 상태에 빠지게 된다. 16세기 포르투갈의 알부케르크가 이곳을 "지구의 목구멍"이라 정의했을 때, 그는 이미 이 좁은 수로가 가진 파괴적인 영향력을 간파했던 것 이었다. 그는 호르무즈를 장악함으로써 페르시아 제국의 숨통을 조였고, 인도양 전체의 무역 흐름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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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관문 : 고립된 요새가 아닌 세계의 중심

호르무즈는 페르시아(이란)에게 있어 단순한 영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역사적으로 페르시아 고원은 북쪽의 캅카스 산맥, 동쪽의 중앙아시아 초원, 서쪽의 메소포타미아 평원과 맞닿아 있는 '문명의 교차로'였다. 그러나 육로를 통한 이동은 험준한 산맥과 사막으로 인해 늘 제약이 따랐다.

이때부터 호르무즈는 페르시아가 세계(인도양과 그 너머)를 향해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하고 거대한 '코'역할을 했다.


사파비 왕조 시대 : 아바스 1세는 영국 동인도 회사와 연합하여 포르투갈을 몰아낸 뒤, 호르무즈의 기능을 육지 항구인 '반다르 아바스'로 옮기며 페르시아의 황금기를 열었다.

지정학적 방어선 : 페르시아에게 호르무즈는 외부의 침략을 막아내는 최후의 보루이자, 적의 함대를 유인하여 수렁에 빠뜨릴 수 있는 '깔때기'였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은 현대 이란의 해상 전략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이란은 강력한 정규 해군 대신, 좁은 해협의 특성을 활용한 수많은 고속정, 기뢰, 지대함 미사일 등 '비대칭 전력'을 호르무즈에 집중 배치하고 있다. 이는 수천 년간 이 땅을 지켜온 페르시아인들이 터득한 "좁은 길목을 지키는 자가 거인을 이긴다"는 지혜의 현대적 변용인 셈이다.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영원한 전장

호르무즈 해협은 '육지의 힘'을 대표하는 대륙 세력(페르시아, 이후의 러시아/중국)과 '바다의 패권'을 쥐려는 해양 세력(포르투갈, 영국, 그리고 현재의 미국)이 영원히 부딪히는 지점이다.


영국의 그레이트 게임 : 19세기 영국은 인도로 가는 길목을 지키기 위해 호르무즈를 포함한 걸프 지역을 철저히 관리했다.

미국의 카터 독트린 : 1980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페르시아만 지역의 통제권을 얻으려는 외부 세력의 시도는 미국의 사활적 이익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며, 군사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처럼 호르무즈는 단순히 이란과 미국의 국지적 갈등 장소가 아니다. 이곳은 유라시아 대륙의 심장부(Heartland)를 장악하려는 세력과 그 주변부(Rimland)를 포위하여 통제하려는 세력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단층선이다. 이 해협에서 발생하는 작은 파동이 전 세계 유가와 금융 시장, 그리고 강대국 간의 군사적 긴장감으로 번지는 이유는 바로 이곳이 '세계의 신경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4. 미국과 이란의 충돌 : 제국과 역사의 대결


현재 호르무즈를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대립은 단순한 에너지 패권 다툼이 아니다. 그것은 '250년 역사의 신흥 패권국(미국)'과 '3,000년 역사의 실체(페르시아)'가 충돌하는 형국이다.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 제재를 통해 이란을 관리하고 굴복시키려 한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페르시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몽골의 유린, 아랍의 이슬람 정복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아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지켜낸 끈질긴 생명력을 가졌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는 것은 벌집을 건드리는 것과 같다. 이란 지형은 험준한 자그로스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호르무즈 해협은 비대칭 전력을 활용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만약 전면전이 발생한다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와는 차원이 다른 '장기전의 수렁'에 빠질 것이다.


미국은 월남전에서도 패배했고, 걸프전을 벌였지만 결국 이라크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아프간 전쟁에서도 패주했다. 그런데 이란은 러시아 중국과 함께 악의축 3대장인데, 이란 전쟁이 쉬울리 없다. 트럼프 혹은 그 이후의 미국 행정부에게 이란은 제2의 베트남, 즉 '페르시아판 월남전'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5. 종교 압제와 이란 민중의 자결권


물론 현재 이란 정권의 '정교일체' 체제와 종교적 압제는 타도되어야 할 대상이다. 여성의 인권을 탄압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반한다. 그러나 중요한 포인트는 이것이다. 이 변화는 결코 외부의 폭탄과 미사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이라크와 리비아의 사례에서 보았듯, 외부 세력에 의한 강제적 민주화는 극단주의의 발흥과 국가 시스템의 붕괴만을 초래했다. 이란은 높은 교육 수준과 자부심을 가진 시민들이 존재하는 나라다. 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종교 압제를 걷어내고 '페르시아적 가치'를 회복할 때만이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 미국의 공격은 오히려 이란 민중을 정권 중심으로 결집시키는 역효과만을 낳을 뿐이다.


Shipping-traffic-in-Strait-of-Hormuz-28-Feb-Credit-Polestar-Global.jpg 페르시아만의 선박들


6. 조용할 수 없는 땅의 운명


호르무즈의 숙명은 결코 평화로울 수 없다. 인류가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한,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물류가 이 수로를 통과하는 한, 이곳은 늘 '폭풍의 눈'으로 남을 것이다.

미국이 이곳을 공격하여 관리하려 하는 시도는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온 '해양 세력의 거점 확보'의 일환이다. 그러나 페르시아라는 역사적 실체는 이 좁은 해협을 자신의 '안방 문턱'으로 여기며 결코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호르무즈를 지배하는 자는 세계를 지배한다."


500년 전 알부케르크의 이 선언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이 좁은 물길은 앞으로도 인류사의 가장 극적인 장면들이 연출되는 무대가 될 것이다.


호르무즈는 앞으로도 조용할 날이 없을 것이다. 땅이 가진 운명이 그러하다. 인도양의 파도가 페르시아만의 입구에서 소용돌이치듯,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은 이곳에서 영원히 부딪힐 것이다.


미국이라는 강대국은 악의 축이라 규정한 이란을 통제하려 들겠지만, 수천 년간 이 땅을 지켜온 '페르시아라는 역사적 실체'는 그 공격을 견뎌낼 것이다. 그것은 이 척박한 소금 섬과 뜨거운 열풍 속에서도 문명을 일궈낸 이 땅의 본질적인 힘이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붉은 바다는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현재 지구최강 신흥 제국의 야심이 승리할 것인가, 아니면 끈질긴 역사의 생명력이 승리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호르무즈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인류가 생존을 위해 자연과 외세에 맞서 싸워온 거대한 투쟁의 기록 그 자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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