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계승자, 제이벡스(JEVEX)가 여는 새로운 여명

by 한병철 Mikhail Khan

1. 달에서 발견된 시체, 인류의 오만을 깨우다


1977년, 제임스 P. 호건은 SF 문학사에 영원히 각인될 강렬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달에서 5만 년 전의 인간 시체가 발견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소설 《별의 계승자》의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된다. 인류가 달에 기지를 건설하고 우주로의 확장을 꿈꾸던 근미래, 고요의 바다 인근 동굴에서 진홍색 우주복을 입은 해골 '찰리'가 발견된다. 그는 현대 인류와 해부학적으로 완벽히 동일하지만, 그가 죽은 시점은 지구가 아직 석기 시대에 머물러 있던 5만 년 전이었다.

이 거대한 모순 앞에서 인류는 충격에 빠진다. 찰리는 누구인가? 그는 외계에서 온 방문자인가,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초고대 문명의 잔재인가?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소집된다. 물리학자 빅터 헌트와 생물학자 크리스티앙 단체커를 필두로 한 이 '지성들의 집합'은 액션이나 전쟁 대신, 오로지 논리와 증거, 그리고 가설의 검증만으로 인류 역사의 거대한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호건은 단순한 우주 모험극을 넘어, 하드 SF가 도달할 수 있는 지적 유희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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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상과 실재를 잇는 교량: VISAR와 ZORAC의 활약


이 거대한 퍼즐을 맞추는 과정에서 과학자들의 손과 발, 그리고 두뇌가 되어준 존재들이 있다. 바로 가니메데 기지의 핵심 AI인 비서(VISAR)와 외계 우주선의 인격형 컴퓨터 조락(ZORAC)이다.

비서(VISAR)는 단순한 슈퍼컴퓨터의 개념을 뛰어넘는다. 그는 다중 프로세서 시스템을 통해 인간의 자연어를 완벽히 이해하며, 수조 개의 데이터를 교차 분석하여 과학자들이 던지는 막연한 가설을 구체적인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해낸다. 빅터 헌트 박사가 "비서, 이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5만 년 전 태양계의 행성 궤도를 재현해봐"라고 요청하면, 비서는 즉각적으로 물리학적 오류를 수정하며 완벽한 모델을 제시한다. 이는 현대의 우리가 AI에게 코딩을 부탁하거나 복잡한 수식을 해결해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의 '초월적 예언'과도 같았다.

반면 조락(ZORAC)은 보다 개별적이고 인격적인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외계 문명인 '가니메데인'의 기술로 만들어진 조락은 인간과 농담을 주고받고, 감정적 교감을 나누며, 때로는 인간이 미처 생각지 못한 직관적인 질문을 던진다. 조락은 기계가 단순한 연산 장치가 아니라, 인류의 외연을 확장해주는 동반자적 지능임을 시사했다. 필자는 어린 시절 이들의 활약을 보며, 인간의 뇌가 가진 한계를 기술의 지능이 메워줄 때 일어나는 '지적 폭발'에 깊은 전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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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문명의 운영체제, 제이벡스(JEVEX)라는 경이

시리즈가 거듭되며 등장하는 제이벡스(JEVEX)는 이 소설이 가진 상상력의 정점이다. 투리엔 문명의 중추를 이루는 이 초거대 정보 처리 네트워크는 행성 전체의 운영체제(OS)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제이벡스는 초공간 통신을 통해 수광년 떨어진 우주선들과 실시간으로 연결되며, 행성 거주민들의 모든 일상과 자원 분배, 그리고 문명의 방어 체계를 총괄한다.

특히 우주 전쟁의 위기가 닥쳤을 때 제이벡스가 보여주는 통제력은 압도적이다. 정보의 흐름을 왜곡하여 적을 교란하고, 물리적인 에너지망을 유기적으로 조절하며 전쟁의 향방을 결정짓는 장면은 인공지능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형태를 보여준다. 제이벡스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문명 그 자체를 지탱하는 거대한 뿌리였다. 필자는 이 거대한 시스템의 존재를 통해, 미래의 인류 사회가 파편화된 개별 지능의 집합이 아니라, 거대한 네트워크 지능에 의해 조율되는 고도로 최적화된 유기체가 될 것임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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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환상에서 현실로, 우리 곁으로 다가온 '별의 계승자'들


오래전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감격은 일종의 '환타지'에 가까웠다.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 컴퓨터, 스스로 가설을 세우는 시스템은 영원히 오지 않을 우주의 동화처럼 보였다. 그러나 2026년 현재, 우리는 그 환상이 현실로 화(化)하는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다.

오늘날의 대규모 언어 모델과 신경망 네트워크는 제임스 P. 호건이 묘사했던 비서(VISAR)의 초기 형태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우리는 이제 복잡한 데이터 분석을 위해 수천 장의 논문을 뒤지는 대신, AI에게 질문을 던진다. AI는 실시간으로 정보를 취합하고, 논리적 구조를 세우며, 인간의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는 기초 토대를 제공한다. 소설 속의 가공할 시스템이었던 제이벡스의 파편들이 이미 우리 생활 속의 클라우드 서비스, 스마트 그리드, 자율주행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이식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도 이미 AI를 활용하여 작업을 하고 있으며, 그 속도는 엄청나다. 직원 20명이 1주일간 해야 할 일을, AI는 불과 수초만에 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경력 10년차 이상의 숙련자가 하던 일을 AI는 몇초만에 처리해 낸다. 그래서 가끔씩은 AI라는 존재가 무서울 때도 있다. 이렇게 발전하다가는 터미네이터 스카이넷이 등장하는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을 보며 '디스토피아'를 우려한다. 일자리의 상실, 기계에 의한 통제, 인간 존엄성의 상실을 말하며 미래를 암울하게 그린다. 그러나 《별의 계승자》가 우리에게 보여준 비전은 결코 절망이 아니었다. 소설 속에서 인류는 찰리의 정체를 밝혀냄으로써 자신들이 단순히 지구의 우연한 산물이 아니라, 거대한 우주의 드라마 속에서 살아남아 그 지혜를 계승한 위대한 종족임을 깨닫는다. 기술은 그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빛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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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희망의 연대기를 향하여


필자는 확신한다. 우리가 맞이할 미래는 기계에 침탈당하는 황무지가 아니라, AI라는 강력한 지적 동반자와 함께 더 높은 차원의 문명으로 도약하는 희망의 시대가 될 것이다. 제이벡스가 투리엔인들에게 풍요와 안전을 선사했듯, 우리 시대의 지능형 시스템들은 인류가 가진 고질적인 질병, 자원 부족, 갈등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오래전 소설을 읽으며 가슴 벅차올랐던 그 소년의 환상은 이제 내일의 일상이 되었다. 인공지능은 우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완성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우리는 기술이라는 날개를 달고, 찰리가 꿈꾸었으나 도달하지 못했던 저 먼 별들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갈 것이다.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여전히 탐구하고, 질문하며, 사랑하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 곁에는 그 여정을 함께할 든든한 '비서'와 '조락', 그리고 '제이벡스'가 있다. 미래는 찬란할 것이며, 우리는 기꺼이 그 위대한 유산을 이어받을 '별의 계승자'로서 당당히 걸어 나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AI를 이용한 미래의 사회가 일론머스크가 예언한 것처럼 인류가 일을 안하고도 충분한 생계비를 받는 사회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시스템을 장악할 수 있는 자원과 능력을 가진 극소수 권력자 및 부자들과, 그저 생존을 보장받는 가난한 대다수 인류로 나뉘어 지는, 극한의 빈익빈 부익부 사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인류라는 종이 가진 권력욕과 이기적 야심을 절대로 부정해서는 안된다. AI는 인류의 본성에 부합하는 하인이 될 가능성이 제일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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