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번트 리더십, 한국사회에서 흔한 단어가 된 지 오래다. 특히 개신교 신자들이나 교단들에서는 ‘섬김’이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한국에 이 개념이 본격적으로 유입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외환위기 이후 기존의 군대식 카리스마 리더십이 한계에 봉착하자, 기업들은 유연하고 창의적인 조직 문화를 위해 서번트 리더십에 주목했다.
동시에 한국 개신교는 이를 ‘성서적 리더십’의 현대적 해석으로 받아들였다. 마르코복음 10장 45절에 나타난 예수의 희생과 섬김의 자세는 서번트 리더십의 철학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대형 교회와 교단들이 앞다투어 서번트 리더십을 커리큘럼화했고, 이는 곧 ‘영적 리더십’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조직이론과 조직행동론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 개신교단에서의 서번트 리더십은 심각한 구조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서구의 서번트 리더십이 ‘권력 분산’을 지향한다면, 한국 교회에서 그것은 역설적으로 ‘권력 강화’의 도구로 전락했다.
1. 서번트 리더십, 성배인가, 독배인가?
현대 조직론과 경영학의 역사에서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만큼 찬란한 광휘를 뿜어낸 개념도 드물다. 1970년 로버트 그린리프(Robert K. Greenleaf)가 제창한 이래, 이는 권위주의적 지시와 통제에 신음하던 현대 조직의 구원투수로 여겨졌다. 특히나 인격적 완성도를 중시하는 한국적 정서와 ‘섬김’을 신앙의 정수로 삼는 개신교단 내에서 서번트 리더십은 리더가 도달해야 할 최후의 성배(Holy Grail)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도입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냉정하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가 추종해온 섬김의 리더십은 과연 조직을 건강하게 만들었는가, 아니면 오히려 더 교묘하고 세련된 형태의 권위주의를 낳았는가? 본 글에서는 서번트 리더십이 한국이라는 특수한 토양, 특히 개신교단이라는 폐쇄적 구조와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역설적 변질’을 해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조직설계적 패러다임 시프트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서번트 리더십의 본질과 이론적 지형
그린리프가 헤르만 헤세의 『동방 순례』에서 영감을 얻어 정의한 서번트 리더십의 핵심은 ‘존재론적 우선순위’에 있다. 리더는 리더가 되기 전에 먼저 섬기는 자(Servant-first)여야 한다. 이는 단순한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원천에 관한 문제다.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은 리더십의 방대한 이론 체계 중에서도 ‘가치 중심적 리더십(Value-based Leadership)’과 ‘관계적 리더십(Relational Leadership)’의 범주에 속하며, 리더의 철학적 뿌리에 집중하는 ‘행동 및 특성 이론의 현대적 확장판’으로 분류된다.
조직설계적 관점에서 볼 때, 서번트 리더십이 작동하는 기능적 영역은 '동기부여 및 심리적 계약'이며, 여기서는 임파워먼트(Empowerment)와 사회적 교환 이론(Social Exchange Theory)이 중요시 된다.
1990년대 래리 스피어스(Larry Spears)는 이를 경청, 공감, 치유, 인식, 설득, 개념화, 선견지명, 청지기 정신, 구성원의 성장 지원, 공동체 형성이라는 10가지 특성으로 체계화했다. 이는 리더십의 관점을 ‘나(Leader)’에게서 ‘타자(Follower)’와 ‘공동체(Community)’로 옮기는 혁명적 전환이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이론이 ‘권력 거리(Power Distance)’가 높고 ‘맥락 의존성’이 강한 한국 사회에 이식되었을 때, 형용사인 ‘서번트’는 명사인 ‘리더십(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장식품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3. ‘섬김’이 ‘지배’가 되는 변질의 메커니즘
(1) 도덕적 권위를 이용한 가스라이팅과 심리적 부채감
서구의 서번트 리더십이 ‘수평적 협력’을 지향한다면, 한국적 맥락에서는 종종 ‘수직적 은혜’로 치부된다. 리더가 자신을 낮추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일 때, 구성원은 고마움을 넘어선 ‘심리적 부채감’에 시달린다. "목사님이 저렇게까지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는데, 어떻게 우리가 반대할 수 있겠어?"라는 정서는 합리적 비판과 토론을 마비시킨다.
한국에서는 목회자를 영적 아버지로 모시는 유교적 가치관이 서번트 리더십의 가면을 썼다. 겉으로는 발을 씻기지만, 속으로는 가문의 절대권을 행사하는 가부장의 모습이며, 유교적 가부장제의 다른 얼굴이다. 여기서 섬김은 해방이 아니라, 리더의 뜻에 순응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소프트 컨트롤’ 기제가 된다.
(2) 비판 시스템의 거세와 성역화
진정한 서번트 리더십은 리더 스스로가 비판받을 용기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단 내에서는 리더를 ‘주의 종’이라는 신비주의적 장막 안에 가두고, 서번트 리더십이라는 수사를 통해 그 장막을 더욱 견고히 한다. 스스로를 종이라 칭하는 리더에게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비인간적’이거나 ‘불신앙적’인 행위로 낙인찍힌다. 결국, 섬김의 태도는 리더를 비판 불가능한 성역으로 만드는 방패가 된다.
4. 실제 사례 분석 : 서번트 리더십의 악용과 붕괴
[사례 1] A 대형교회의 ‘섬김형 독재’와 세습
강남의 한 대형교회 담임목사였던 B씨는 평소 검소한 생활과 교인들의 발을 씻겨주는 퍼포먼스로 ‘진정한 서번트 리더’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는 모든 중대 결정을 내릴 때마다 "저는 주님의 종일 뿐이며, 여러분의 종입니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교회 내 재정 투명성을 요구하거나 세습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그는 "종으로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나를 흔드는 것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사탄의 계략"이라고 규정했다. 그가 쌓아온 ‘섬기는 자’라는 이미지는 교인들로 하여금 비이성적인 맹종을 하게 만들었고, 결국 수천억 원대 자산과 리더십을 아들에게 물려주는 세습을 성공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이는 서번트 리더십의 수사가 어떻게 민주적 거버넌스를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사례 2] C 기독교 기업의 ‘희생 강요’ 문화
성서적 경영을 표방하는 C 기업은 서번트 리더십을 핵심 가치로 내걸었다. 경영진은 직원들과 함께 식당 배식 봉사를 하고 낮은 곳에 임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하지만 정작 직원들의 처우 개선이나 노동권 보장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했다.
경영진은 "리더인 우리도 이렇게 희생하는데, 여러분도 공동체를 위해 헌신(무급 야근 및 열악한 복지 수용)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서번트 리더십을 노동력 착취의 논리로 치환했다. 섬김이 리더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구성원에 대한 강요된 희생의 근거가 된 것이다. 결국 이 기업은 핵심 인재들의 대거 이탈로 인해 조직 경쟁력을 상실했다.
5. 구조적 대안 : 인격의 매력을 넘어 시스템의 권위로
인적 선의에 기댄 리더십은 반드시 실패하며, 서번트 리더십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를 받쳐주는 ‘구조적 골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1) 권한 위임의 공식화 : 홀라크라시(Holacracy)와 서클 구조
리더의 자애로운 ‘허락’에 의해 권한이 배분되는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각 부서와 역할(Role)이 독립적인 의사결정권을 갖는 ‘서클 기반 조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리더는 전체 비전을 공유하는 ‘앵커 서클’의 일원일 뿐, 세부 실행 서클의 권한을 침해할 수 없도록 정관과 시스템으로 못 박아야 한다. 이것이 리더의 권력을 분산시키는 진정한 의미의 섬김이다.
(2) 투명성(Transparency)의 기술적 구현
섬김은 ‘보여주기’가 아니라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블록체인 기반의 재정 관리나 실시간 행정 공유 시스템을 도입하여, 리더의 전횡이 불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리더의 영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데이터를 통해 조직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정보의 민주화’가 실현될 때 가짜 서번트 리더십은 설 자리를 잃는다.
리더십의 성패는 리더의 자기만족이나 어록이 아니라, 구성원의 성장 지표로 측정되어야 한다. 하급자가 상급자를 평가하고, 리더의 비윤리적 행위를 즉각 제어할 수 있는 독립적 ‘윤리 위원회’나 ‘평신도 의결 기구’가 실질적 힘을 가져야 한다.
6. 리더십의 탈신비화와 새로운 지평
서번트 리더십이 한국 개신교단과 조직 사회에서 살아남는 길은 역설적으로 '서번트'라는 형용사를 버리는 데 있다. 리더십을 영적 은사나 도덕적 우월성으로 포장하지 말고,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율적인 ‘직무’로 정의해야 한다. 리더는 구성원을 이끄는 목자가 아니라, 구성원들이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장(Platform)을 만드는 ‘인프라스트럭처’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