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람시와 이해찬
시대의 거목이 쓰러졌다. 최근 작고한 이해찬 전 총리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단순한 정치인을 넘어, 하나의 ‘설계자’이자 ‘진보의 진지(陣地)’ 그 자체였다.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전략적 치밀함은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옥중에서 고뇌하며 정립한 ‘진지전(War of Position)’의 한국적 실천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가 떠난 지금, 세계와 한국의 정치는 그가 평생을 바쳐 구축하려 했던 이념의 틀을 비웃듯 기묘한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혁명이 단 한 번의 기동전(War of Movement), 즉 물리적 타격으로 완성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서구 사회처럼 시민사회의 토대가 견고한 곳에서는 교육, 언론, 문화, 종교 등 모든 영역에 구축된 헤게모니의 보루를 하나씩 점령해 나가는 ‘진지전’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이해찬의 인생 전략은 이러한 그람시적 통찰의 전형이었다. 그는 서울대근처에서 서점 ‘광장’을 운영하며 혁명가로써의 인생을 시작했다. 광장 서점은 이해찬의 첫 번째 진지였고, 이 진지를 통해 수많은 젊은이들을 길러냈다. 그는 정당을 시스템화하고, 정책 연구소를 강화하며, 장기적인 인재 양성을 통해 보수 우위의 ‘기울어진 운동장’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려 했다. 그가 주창했던 ‘20년 집권론’은 단순히 권력에 대한 탐욕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주류 가치를 교체하기 위한 거대한 진지전의 선언이었다. 그는 킹메이커로서, 때로는 야전사령관으로서 한국 사회의 제도적 기반 안에 진보의 진지를 구축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아이러니는 그람시의 조국 이탈리아에서 시작된다. 혁명가 그람시를 낳은 그 땅에서, 현재 국가원수로서 권력을 쥐고 있는 인물은 조르자 멜로니 총리다. 그녀는 파시즘의 창시자 무솔리니를 칭송하며 정치적 뿌리를 내린 극우 인사다. 우리는 멜로니 총리의 미모와 미소에 속아, 그녀가 극우 인사라는 것을 종종 망각하곤 한다. 그러나 멜로니가 보여주는 행보는 과거의 경직된 파시즘과는 사뭇 다르다.
최근 한국을 국빈 방문한 멜로니 총리는 딸과 함께 블랙핑크 응원봉을 들고 입국하며 K-pop의 ‘찐팬’임을 자처했다. 이데올로기적 선명성보다는 문화적 감수성과 실용적 외교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지점은 이재명 정부의 대응이다. 진보적 가치를 계승한다는 이재명 대통령은 멜로니 총리를 극진히 환영하며 협력의 손길을 내밀었다.
과거의 문법대로라면 ‘파시즘의 후예’와 ‘민주화 운동의 계승자’는 광장에서 선혈을 낭자하며 충돌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오늘날 그들은 국익과 문화라는 이름 아래 미소 지으며 악수한다. 이는 혁명의 불길이 사그라지고, 좌우 진영의 논리가 극단적으로 퇴색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상상해본다. 저승에서 만난 그람시와 이해찬은 오늘날의 풍경을 보며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
그람시는 아마도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말할 것이다. “이 총리, 내가 말한 문화적 헤게모니라는 것이 고작 K-pop 팬덤으로 치환되는 세상을 보려 그 고통스러운 옥중 생활을 견딘 것은 아니었소.” 이에 이해찬은 특유의 무뚝뚝하지만 날카로운 어조로 답할지 모른다. “그람시 동지, 우리가 건설하려 했던 진지는 이제 텅 비어버렸습니다. 대중은 더 이상 이데올로기로 움직이지 않고, 취향과 실익에 따라 진영을 갈아타는군요.”
두 거인은 깨달을 것이다. 그들이 평생을 바쳐 점령하려 했던 ‘정신의 진지’가, 이제는 알고리즘과 플랫폼, 그리고 순간적인 감성 소비에 의해 해체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가 마주할 미래는 100년 전처럼 극우와 극좌가 거리에서 무력으로 충돌하는 야만의 시대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념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데이터 헤게모니’와 ‘정체성 정치’다.
미래의 변화를 추동하는 힘은 더 이상 거창한 사회과학적 도그마가 아니다. 그것은 기후 위기에 대한 생존 본능, 인공지능이 재편하는 노동 구조, 그리고 국가라는 경계를 넘나드는 문화적 동질성일 것이다. 멜로니 총리가 K-pop을 매개로 한국 대중과 소통하듯, 미래의 정치는 이데올로기적 논쟁보다는 대중의 욕망을 어떻게 세련되게 포장하느냐의 싸움이 될 공산이 크다.
이해찬과 그람시가 남긴 유산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그 ‘진지’의 성격이 바뀌었을 뿐이다. 이제 정치는 거대 담론의 숲을 헤매기보다, 파편화된 개인들의 일상 속에 어떤 가치의 말뚝을 박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혁명은 퇴색했을지 모르나,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욕망의 배치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진지는 허물어진 것이 아니라 이동한 것이다. 그람시와 이해찬이 지하에서 나누는 대화의 끝은 결국, 변해버린 지형에서 새로운 진지를 구축해야 할 후대들의 몫으로 남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