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나소스와 파미르의 양고기 고찰

신들이 선택한 고기, 인류 미식의 정점

by 한병철 Mikhail Khan

인류의 역사는 가축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며, 그중에서도 양(羊)은 유목 문명과 정주 문명 모두에게 가장 신성하고 풍요로운 단백질원이었다.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최고의 맛’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두 성지가 있다. 서구 문명의 발상지인 그리스의 파르나소스(Parnassus) 산과, ‘세계의 지붕’이자 아시아의 심장부인 파미르(Pamir, 蔥嶺) 고원이다.


이 두 지역의 양고기가 왜 인류 미식의 정점으로 추앙받는지, 그 생태적·문화적 배경과 그들에게 바쳐진 찬사를 입체적으로 살펴보자.


1. 왜 이 지역의 양고기는 특별한가? : 맛의 생태적 기원


양고기의 맛을 결정짓는 핵심은 ‘지방의 질’과 ‘누린내(膻味)의 유무’다. 파르나소스와 파미르는 놀랍도록 유사한 미식적 테루아(Terroir)를 공유한다.


1) 야생 허브와 파 : 천연 시즈닝의 마법

파르나소스 산은 고대부터 약초의 산으로 유명했다. 이곳의 양들은 야생 타임(Thyme), 오레가노, 세이지를 주식으로 한다. 파르나소스 산 전체가 야생 허브밭 이다. 이 허브들의 정유 성분은 양의 근육 조직에 저장되어, 고기를 구울 때 인위적인 향신료 없이도 세련된 향을 내뿜게 한다.


반면, 파미르 고원은 한자 이름부터가 ‘총령(蔥嶺, 파의 고개)’이다.

위진남북조 시대부터 당나라 시기의 중국 문헌에서는 파미르를 ‘총령(蔥嶺)’이라 불렀다. 뜻은 앞서 언급했듯 ‘파(蔥)가 많은 고개(嶺)’라는 뜻이다. 이 서술은 현장 법사의 《대당서역기》 등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 지역에 자생하는 야생 파와 마늘이 구름처럼 산을 덮고 있는 모습에서 유래했다.


파미르에서 ‘파’는 우리가 먹는 채소인 ‘파’를 말하며, ‘미르’는 산스크리트어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있는데, 수미산을 가리키는 ‘메루’에서 파생되었다는 말이 있다. 즉 ‘미르’는 ‘큰 산’을 의미한다.


우리 한민족의 기원인 단군설화에 보면, 곰이 마늘과 쑥을 먹고 인간이 된다. 하지만 한반도에 마늘이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 초기 즈음이고, 파는 조금 더 늦게 들어와서 기원후 약 3-4세기에 도착하였다. 그러니 웅녀가 4360여년전에 마늘을 먹은곳은 한반도가 아니라 중앙아시아 어디쯤 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민족은 고대에 서쪽 어딘가에서 한반도로 이주해 온 민족이라고 하니, 우리가 떠나온 곳이 파미르와 천산산맥 일대 일 수도 있겠다.


해발 4,000m 이상의 척박한 땅에서 자라나는 야생 파와 야생 마늘, 부추는 양들에게 최고의 영양제이자 탈취제다. 파미르의 양은 혈액 속에 이미 파의 성분을 품고 있어, 고기 자체의 감칠맛이 폭발적이며 누린내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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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7365.JPG 파미르의 아버지로 불리는 무스타그아타(Muztagh Ata, 慕士塔格峰) 산. 7,546m.


2) 알칼리성 토양과 빙하수의 조화

두 지역 모두 석회질이 풍부한 토양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자란 풀은 미네랄이 풍부한 알칼리성을 띤다. 알칼리성 사료를 먹고 자란 양은 고기의 pH 수치가 안정되어 육질이 훨씬 부드럽고, 조리 시 육즙 보유력이 뛰어나다. 여기에 파르나소스의 눈이 녹은 물과 파미르의 빙하수는 양들의 신진대사를 극대화하여 지방을 깨끗하게 정화한다.


2. 서구의 자존심 : 파르나소스의 양고기


찬사와 에피소드

그리스인들에게 파르나소스 양고기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신의 제물’이었다. 신화 속 아폴론 신이 머물던 이 산에서 자란 양은 올림포스 신들에게 바치기에 가장 부끄러움 없는 제물로 여겨졌다. 아폴론신이 양치기 목동을 하던 시절에 체류하던 곳이 파르나소스 산 이었다.

19세기 유럽의 귀족들이 그랜드 투어를 떠날 때, 델피(Delphi) 유적을 방문한 후 아라호바(Arachova) 마을에서 먹는 양고기 구이는 여행의 정점으로 기록되곤 했다.


대표 요리와 조리법

파르나소스의 정수는 ‘파이다키아(Paidakia)’라 불리는 양갈비 구이다. 조리법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신선한 레몬즙, 거친 바다 소금, 그리고 산에서 직접 채취한 말린 오레가노면 충분하다. 고기 본연의 맛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복잡한 소스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 또한, 부활절이면 양 한 마리를 통째로 꼬챙이에 끼워 돌려 굽는 ‘오벨리아스(Ovelias)’는 이 지역의 생태적 풍요를 상징하는 의식과도 같다.


Arnaki-sto-fourno-me-patates-site-15-large.jpg 그리스 파르나소스山의 아르니 프시토 (Arni Psito)
Paidakia.jpg 그리스 파르나소스山의 파이다키아 (Paidakia)


3. 아시아의 정수 : 파미르(총령)의 양고기


속담과 찬사

중국에는 “양고기는 서쪽으로 갈수록 맛있고, 그 끝은 총령(파미르)에 있다”는 말이 전해진다. 실크로드를 오가던 상인들은 파미르 고원을 넘기 전 카슈가르에서 먹는 양고기를 “입안에서 녹는 구름”이라 표현했다. 중국에서는 파미르의 양고기에게 다음과 같은 찬사를 바쳐왔다.


羊肉越往西越好吃

양고기는 서쪽으로 갈수록 맛있다는 뜻이며, 중국 내에서 미식가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天下羊肉看新疆, 新疆羊肉看南疆

천하의 양고기는 신장에 있고, 신장의 양고기는 남강(남부 신장)에 있다.


吃的是中草藥, 喝的是礦泉수, 走的是黃金道

서쪽 양들은 먹는 것은 약초요, 마시는 것은 광천수이며, 걷는 곳은 황금길이다.


대표 요리와 조리법

파미르 양고기의 진수는 ‘수주육(手抓肉, 쇼우주아로우)’이다. 향신료를 배제하고 오직 맑은 물에 고기를 삶아내어 손으로 뜯어 먹는 방식이다. 이는 고기의 질에 대한 극도의 자신감을 드러낸다. 고기를 씹을 때 터져 나오는 은은한 야생 파의 향은 다른 지역 양고기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파미르만의 훈장이다. 또한, 화덕에서 구워낸 ‘낭(Naan)’ 사이에 갓 구운 양꼬치를 끼워 먹는 것은 천년 넘게 이어져 온 실크로드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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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3588723445,4189296563&fm=253&fmt=auto&app=138&f=JPEG.jpg 중국 신강성 쿠처(库车)의 양고기


4. 현대의 상황과 미식적 가치


오늘날 파르나소스와 파미르의 양고기는 모두 위기와 기회 앞에 서 있다.

파르나소스는 유럽 연합(EU)의 원산지 보호 명칭(PDO) 등을 통해 전통적인 방목 방식을 고수하며 프리미엄 전략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의 이촌향도로 인해 정통 목축업자가 줄어들고 있어, 진정한 의미의 파르나소스 산 양고기는 점점 희귀해지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파미르 지역은 중국의 물류 발전으로 인해 과거보다 접근성이 좋아졌다. 하지만 대량 생산을 위한 개량종 유입과 과도한 방목으로 인한 고원의 사막화가 문제로 지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지크족과 위구르족 목민들이 지켜온 전통 방식의 양고기는 여전히 중국 부유층들이 가장 선호하는 ‘전설의 식재료’로 군림하고 있다.


5. 인간은 왜 양고기에 열광하는가


양고기는 인간이 가장 먼저 길들인 가축 중 하나이며, 파르나소스와 파미르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가축이 맺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장소다.


두 지역의 양고기가 맛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들은 인간이 준 인공적인 사료가 아니라, 대지가 내어준 향기로운 허브와 맑은 빙하수를 먹고 자랐기 때문이다. 파르나소스의 양갈비 한 대와 파미르의 수주육 한 점은 단순히 단백질을 섭취하는 행위를 넘어, 그 척박하고도 아름다운 산맥의 정기를 몸속으로 받아들이는 미식적 성찬(聖餐)이다.


결국 최고의 양고기란, 인간의 기술이 더해진 맛이 아니라 대지의 테루아를 가장 순수하게 보존한 맛임을 이 두 산맥은 증명하고 있다.


중국의 동부지역에서 소비되는 양고기는 대개 내몽골 산이 대부분이며, 신강성 파미르 양고기는 중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내몽골산 양고기만 해도 매우 맛있는데, 베이징의 양고기 훠궈집에서 접할 수 있다. 양고기가 어찌나 찰진지, 접시를 거꾸로 뒤집어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다.


IMG_9239.JPG 베이징 유명 쇄양육점 만항기(滿恒記)의 양고기. 이 접시를 거꾸로 뒤집어도 떨어지지 않는다.
IMG_9243.JPG 베이징 쇄양육점 만항기(滿恒記)의 동과(銅鍋)


한국 양고기 시장을 폭발적으로 키운 것은 양꼬치이다. 그런데 호주산 양은 체구가 커서 꼬치용 고기를 대량으로 생산하기에 적합하고 가성비가 좋다. 즉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리스 파르나소스 산에 가서 ‘파이다키아(Paidakia)’ 양갈비 구이를 먹어보았고, 신강성을 여행하며 파미르 양고기도 맛을 보았다. 진심으로 인생 양고기라 할 만 하였다. 신강성 쿠처에서 먹었던 양고기는 세월이 좀 흐른 지금에도 잊혀지지 않는다.


중국과 그리스의 양고기는 현재 한국에 수입되고 있지 않다. 한국과의 축산물 검역 협정이 체결되어 있지 않거나, 구제역 등 방역 문제로 수입이 금지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맛있는 양고기를 한국에서는 접할 수 없다.


이제는 시내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양꼬치 식당에 가서, 조선족 사장들과 대화해 보면 아쉬움이 묻어난다. 중국산 양고기가 맛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데, 수입되지 않아서 아쉽다는 것 이다. 호주산을 먹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양꼬치집 사장이나 손님인 나 자신도 아쉽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팁 하나.

중앙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양과 염소는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인도 지역의 양도 털이 많지 않으며, 염소처럼 생겼다. 우리가 알고 있는 털이 북실북실한 양은 호주와 뉴질랜드에 서식하는 양 이어서,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양과 다르다. 현지인들도 자주 착각한다고 한다.


아프리카 케냐의 마사이족 부락에서 한달을 살 때, 현지 마사이족이 가르쳐준 구별 방법이 있다. 꼬리가 위로 서 있으면 염소이고, 꼬리가 아래로 처져 있으면 양 이라는 것이었다. 마사이족들은 염소는 성미가 못돼서 꼬리가 발딱 서고, 양은 순해서 꼬리가 처진다고 표현했다.


여러분들이 중앙아시아나 인도, 아프리카에서 염소라고 생각되는 동물을 만나면, 사실은 염소가 아니라 양 일수도 있다. 이런 종자의 염소와 양은 고기맛도 상당히 비슷하여 구별이 쉽지 않다. 그런데 양 보다 염소가 싸기 때문에, 현지 정육점에서는 염소고기를 양고기로 속여 팔기도 한다. 여행중에 이런 상황을 접하게 되면 현명하게 선택하시길 바란다.


Marco_Polo_sheep_pair_by_Fábio_Olmos_(cropped).jpg 중앙아시아의 양
unnamed (1).jpg 인도의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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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한국의 식당에서 호주와 뉴질랜드의 청정 목초를 먹고 자란 양고기를 쉽게 만난다. 하지만 진정한 양고기 미식의 정점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언젠가 태양신의 발치인 파르나소스와 야생 파의 고향 총령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곳의 양고기를 맛보는 ‘성지 순례’를 꿈꾸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파미르 양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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