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숙명과 ‘新천하삼분지계’

3차 세계대전의 서곡

by 한병철 Mikhail Khan

지리라는 이름의 변하지 않는 감옥


인간은 역사를 바꾸고 문명을 건설하지만, 그 터전이 되는 지형과 위치는 결코 바꿀 수 없다. 프리드리히 라첼(Friedrich Ratzel)이 설파한 지정학적 결정론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국가의 운명은 그 나라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에 의해 80% 이상 결정된다. 한반도는 대륙 세력의 끝단이자 해양 세력의 시작점이라는 숙명적 위치로 인해 역사 내내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어왔다.


우리는 지금 1945년 이후 유지되어 온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균열을 목격하고 있다. 1, 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직접 겪었던 세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전쟁에 대한 공포와 도덕적 억지력은 희박해졌다. 인류는 다시금 주기적인 파괴의 본능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미국, 러시아, 중국이라는 세 거인이 있다. 이들이 구축하려는 ‘신 천하삼분지계’는 단순한 세력 균형을 넘어, 지구를 세 개의 거대 블록으로 분할 통치하려는 중세적 봉건 질서의 귀환을 예고한다.


전쟁의 망각과 '피의 주기론'


인류는 평균적으로 80년에서 100년을 주기로 거대한 문명사적 충돌을 겪어왔다. 이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완전히 사라지고, 전쟁을 ‘서사’나 ‘게임’으로만 인식하는 세대가 의사결정권을 가질 때 발생한다.


1차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러시아(구소련), 중국은 침략자(독일, 일본)에 맞서 싸운 정의로운 승전국이었다. 그러나 8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과거 자신들이 타도했던 전범국들의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 '민족 자결주의'나 '국제법'은 이미 수사적 표현으로 전락했으며, 오직 '실효적 지배'와 '지정학적 알박기'만이 국제 정치의 유일한 언어가 되었다. 이제 생존하는 지구인들에게 전쟁은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당장 내일 아침의 뉴스 헤드라인이 될 수 있는 현실적 선택지가 되었다.


최근 트럼프의 행보는 그가 권력을 내려놓을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예상하게 한다. 권력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는 자, 영구집권을 꿈꾸는 자의 행동과 말로를 우리는 2024년 12월 3일 밤 10시경에 목격한 바 있다. 그런데 트럼프도 동일한 궤적을 답습하려는 듯 보인다. 지금 상황을 분석해보면, 아마도 트럼프는 여러 가지 사고를 저질러서 나토를 탈퇴하고 계엄령을 선포할 가능성이 높다.



신 천하삼분지계의 실체 - 미국·러시아·중국의 분할 통치 전략


현대판 천하삼분지계는 과거 나폴레옹 시대나 냉전 시대와는 다르다. 이는 이념적 대립보다는 '지정학적 실리'와 '공간적 독점'에 기반한다.


1) 미국의 아메리카 요새화 (Fortress America)

트럼프 현상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변화는 고립주의가 아니라 '전략적 선택과 집중'이다.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며 자원을 낭비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자신의 완벽한 영향력 하에 두는 '신 먼로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일명 돈로주의라고 불리는 그것이다.


• 베네수엘라와 자원 통제 : 미국은 서반구 최대의 석유 매장량을 가진 베네수엘라를 정치·군사적으로 압박하여 아메리카 대륙의 에너지 자급력을 완성하려 한다.


• 그린란드와 북극권 선점 : 기후 변화로 열리는 북극 항로는 새로운 지정학적 요충지다. 미국이 그린란드 매입을 언급하거나 군사적 관여를 높이는 것은 북반구 상공의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함이다.

2) 러시아의 유라시아 복원과 동유럽 침공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시작일 뿐이다. 푸틴의 지정학적 목표는 소련 시절의 위성국가를 넘어, 동유럽 전체를 러시아의 안전보장권 내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 폴란드와 발트 3국의 위기 :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와 벨라루스를 잇는 수바우키 회랑은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화약고다. 폴란드가 징병제 부활을 논의하고 GDP의 4% 이상을 국방비로 쏟아붓는 것은 3차 세계대전의 전장이 자신들의 앞마당이 될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 에너지 패권의 무기화 : 러시아는 유럽의 자원 의존도를 이용해 유럽 연합(EU)의 분열을 획책하며, 최종적으로는 독일과 프랑스마저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두려는 야욕을 숨기지 않는다.

3) 중국의 대동아 공영권 재건 (신중화 질서)

중국은 시진핑 체제 이후 '도광양회'를 버리고 '유소작위'를 넘어 '분발유위'로 나아갔다. 그 핵심은 대만 침공을 통한 '제1열도선'의 파괴다.


• 대만 침공과 태평양 진출 : 대만은 단순한 섬이 아니라 미국 해양 패권을 저지하는 마지노선이다. 중국이 대만을 점령하는 순간, 일본과 한국의 해상 보급로는 중국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 일본의 재무장과 아시아 전운 : 일본은 '전쟁 가능한 국가'로 빠르게 탈바꿈하고 있다. 대만 유사시 일본의 개입은 기정사실화되었으며, 이는 동중국해에서 대규모 국제전이 발생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최근 일본의 20대에서 다카이치 총리의 지지율은 92.4%라는 경이적인 숫자를 기록했다. 이런 숫자는 일본이 우경화를 넘어서서 급격하게 전쟁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음을 대변한다.



왜 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이 높은가?


세 강대국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그 경계선에 있는 '중간국'들을 약탈함으로써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려 한다. 이는 과거 1930년대의 블록 경제화와 유사한 징후를 보인다.

첫째, 경제적 한계점이다. 글로벌 성장이 정체되면서 자국 우선주의가 득세하고, 이는 타국의 자원과 시장을 강압적으로 탈취하는 전쟁으로 이어진다.

둘째, 지도자들의 정치적 필요성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 모두 내부적인 사회 갈등을 겪고 있으며, 이를 외부의 적으로 돌리기 위한 전쟁의 유혹을 강하게 느낀다.

셋째, 기술적 비대칭성이다. 드론, AI, 극초음속 미사일 등 신무기의 등장은 강대국으로 하여금 "빠르고 피해 없는 승리"가 가능하다는 오판을 하게 만든다.

전문가들은 미국, 러시아, 중국이 손을 잡고 세계대전을 일으킬 가능성을 경고한다. 여기서의 ‘세계대전’은 전통적인 전면전일 수도 있지만, 세 강대국이 합의하에 중소 국가들을 각자의 블록으로 편입시키는 과정에서의 ‘연쇄적 지역전’ 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 세 국가는 서로 핵을 보유한 강대국들이기에 직접적인 충돌은 피할 것이다. 대신 그들은 약소국이나 완충지대에 있는 국가들을 제물로 삼아 세력권을 확정 지을 것이다. 전쟁의 상흔이 잊혀진 대중은 민족주의와 자국 우선주의에 매몰되어 이러한 확장을 지지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21세기형 3차세계대전의 서막이다.

한국의 운명은?


지정학은 우리에게 묻는다. 중국의 거대한 그림자 아래서 안락한 '번영하는 속국'이 될 것인가, 아니면 거친 풍파를 뚫고 나가는 '자립적 강대국'이 될 것인가? 한국이 중국 중심의 동양 세계관에서 탈피해 아시아를 주도하기 위해선 세 가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


① 사상적으로 소중화(小中華) 의식의 타파, ② '고슴도치 전략'을 넘어선 군사적 억지력, ③ 경제적 무기화이다.


역사는 준비된 자의 편이다


지정학적 위치는 고정되어 있지만, 그 위치가 주는 '역할'은 가변적이다. 19세기 말 우리는 지정학적 무지로 인해 식민지의 길을 걸었다. 21세기의 '신 천하삼분지계'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고 있다.

3차대전의 시계는 이미 카운트다운이 진행되었다. 미국, 러시아, 중국은 각자의 지배 영역을 획정하기 위해 조만간 거대한 충돌 혹은 합의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반도가 제2의 우크라이나나 제2의 폴란드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힘의 논리를 철저히 숭상하는 냉혹한 국제 정치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전쟁의 기억이 사라진 시대, 평화는 구호가 아니라 오직 '압도적인 힘'에 의해서만 담보된다. 한국은 중국의 속국으로 남기에는 너무나 커졌고, 홀로 서기에는 아직 위험하다. 그러나 우리가 기술, 군사, 사상적 독립을 이뤄낸다면, 3차 세계대전의 화마 속에서도 우리는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 새로운 아시아의 질서를 설계하는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정학적 운명은 극복할 수 없는 벽이 아니라, 우리가 딛고 올라서야 할 거대한 계단이다. 단군 할아버지가 땅에 말뚝을 잘못 박았다고 푸념하기 이전에, 우리가 한반도의 지정학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만들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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