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생이 ‘백말띠’라는 거대한 사기

by 한병철 Mikhail Khan

붉은 말이 하얀 가면을 쓰고 살아온 세월


1966년, 대한민국은 근대화의 열망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시기였다. 그해 태어난 이들은 스스로를 ‘백말띠’라 믿으며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살아왔다. ‘백말띠 여자는 기가 세다’, ‘백말띠 해에 태어나면 팔자가 사납다’는 등의 근거 없는 속설은 그들의 삶에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하지만 역학적 진실은 냉정하다. 1966년 병오년(丙午年)의 ‘병(丙)’은 불의 기운인 적색을 의미하며, ‘오(午)’는 말을 뜻한다. 즉, 그들은 백말이 아니라 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붉은 말(赤馬)’이었다.


수백만 명의 인생이 상징 색깔조차 틀린 채 정의되어 왔다는 사실은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선다. 이는 한 시대의 집단적 착각이자,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무속과 명리학이라는 체계가 얼마나 허술한 모래성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폭로하는 서글픈 증거다. 평생을 백색의 순결함이나 강렬함으로 자신을 규정해온 이들에게, 실상은 붉은색이었다는 통보는 그들이 믿어온 운명론적 기반 자체를 흔드는 일이다.



1966년 ‘붉은 말’이 ‘백말’로 둔갑한 근본 원인- 일본 미신과 한국 정서의 결합


가장 유력한 원인은 일본의 ‘아부나이(위험한) 병오년’ 전설의 유입이었다. 17세기 일본 에도 시대, 방화 사건을 일으킨 소녀가 병오년생이었다는 설화에서 유래된 "병오년생 여자는 팔자가 세다"는 미신이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으로 건너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에 이미 존재하던 "백말띠(경오년) 여자가 기가 세다"는 토속 미신과 ‘기가 센 말띠’라는 공통분모로 결합하며, 병오년이 백말띠라는 이름으로 치환되었다. 즉 1966년 백말띠 풍문은 일제강점기의 유산이다.

또한, 천간과 지지가 모두 불(火)로 이루어져 60갑자 중 기운이 가장 강렬한 병오년의 특성을 시각화하기 위해, 붉은 말보다는 더 신성하고 거친 이미지를 가진 ‘백말’의 상징을 차용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여기에 과거 역술인들의 상업적 마케팅과 구전 오류가 더해져 오해는 더욱 고착되었다.

언론의 보도 실태-오보와 팩트체크의 공존


언론은 이러한 오류를 확산시키는 통로이자, 동시에 바로잡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1960~80년대 기사들은 역학적 고증 없이 병오년생을 ‘백말띠’라 칭하며 결혼 시장의 불이익이나 출산율 저하 문제를 다루었다. 최근까지도 2026년 병오년을 앞두고 1966년생 기업인을 ‘백말띠’로 지칭하는 등 대중적 인식을 그대로 투영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반면, 2000년대 이후 제민일보, 울산매일, 여성신문 등 양식 있는 매체들은 이를 ‘사회적 착시’로 규정했다. 이들은 병오년 미신이 일본에서 수입된 근거 없는 것임을 밝히고, 1966년생 여성들이 겪은 사회적 차별과 프레임의 부당함을 팩트체크 형식으로 비판해 왔다.


결국 언론과 대중이 집단적으로 혼동한 결정적 계기는 ‘공포의 각인’ 때문이었다. 1966년 당시 일본에서 미신으로 인해 출산율이 25%나 폭락한 충격적인 뉴스가 한국에 전해졌고, 이 뉴스가 한국인에게 익숙한 ‘백말’이라는 용어와 결합하며 강력한 잔상을 남겼다.


반복적인 보도와 구전은 ‘병오년=적마’라는 역학적 사실보다 ‘병오년=기가 센 백말띠’라는 사회적 낙인을 우선하게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1966년의 백말띠 기록들은 역학적 진실이 아닌, 당대의 사회적 미신과 집단적 공포가 기록된 흔적이다.


무지한 무자격자들이 만든 가짜 서사


이러한 대규모 오류가 반세기 넘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면에는 소위 ‘운명학’을 다룬다는 이들의 무지와 무책임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부터 무속과 명리학계에는 공인된 자격 검증 시스템이 부재했다. 누구나 책 몇 권 읽고 산에 들어가 기도를 마쳤다며 깃발을 내걸면 ‘도사’나 ‘원장’이 될 수 있었다.


1966년 당시, 일본에서 건너온 ‘병오년 미신(남편을 잡아먹는 여자)’이 한국에 상륙했을 때, 무속인들과 일부 명술가들은 이를 검증 없이 받아들였다. 일본의 설화적 공포를 한국 특유의 ‘백말띠’ 프레임에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다. 진짜 백말띠인 경오년(1990년 등)보다 병오년의 불(火) 기운이 주는 강렬함이 미신적 공포를 조장하기에 더 적합했기 때문일까.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내뱉은 "올해는 백말띠라 위험하다"라는 한마디는 신문 칼럼과 입소문을 타고 진리로 굳어졌다. 지식의 생산자가 무식하면 소비자는 왜곡된 정보를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결국, 1966년생들은 무자격자들이 주도한 ‘가짜 뉴스’의 최대 피해자가 된 셈이다. 명리학이 정말 인간의 운명을 논하는 심오한 학문이었다면, 당대의 학자들은 목소리를 높여 "이것은 백말이 아니라 붉은 말이다"라고 교정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대중의 공포에 편승하거나, 자신들도 모르는 무지를 침묵으로 가렸다.


음양오행, 그 좁고 낡은 감옥


문제의 핵심은 비단 1966년의 색깔 논쟁에만 있지 않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명리학의 기초가 되는 음양오행(陰陽五行)체계 자체가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극히 불완전하고 폐쇄적이라는 데 있다.


명리학은 하늘의 기운(천간)과 땅의 기운(지지)을 조합해 인간의 운명을 점친다. 여기서 음양은 태양과 달을 의미하고, 오행은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라는 태양계의 다섯 행성을 의미한다. 고대인들의 눈에는 이것이 우주의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태양계조차도 광활한 우주의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만약 음양오행이 우주를 관통하는 보편적 진리라면, 인류가 다른 행성으로 이주했을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당장 화성(Mars)만 가도 이 체계는 무너진다. 화성에는 포보스, 다이모스라는 두 개의 달이 있다. 음양(陰陽)에서 말하는 ‘단 하나의 달’이라는 전제는 화성 거주자에게는 성립하지 않는다. 목성에 가면 달은 무려 95개로 늘어난다. 또한, 태양계의 행성은 이미 5개가 아님이 밝혀진 지 오래다. 천왕성, 해왕성은 물론이고 수많은 왜소행성이 존재한다. 왜 인간의 운명에는 토성까지만 영향을 미치고, 해왕성의 기운은 작동하지 않는단 말인가?


음양오행설이 성립하던 고대에는 화성에는 달이 두 개, 목성에는 수십개의 달이 있다는 것을 몰랐었다. 목성에서는 음양체계가 아니라 ‘95음1양’ 체계가 되어야 논리적으로 옳다. 지구에서 제일 가까운 알파 센타우리 태양계는 4,37광년 떨어져 있는데, 이곳은 태양이 3 개 있는 쌍성계이다. 스타워즈 다투인 행성에는 태양이 2개 있듯이, 알파 센타우리에서는 프록시마 센타우리 (Proxima Centauri)까지 무려 3개의 태양이 번갈아 뜬다. '하나의 태양(양)'과 '하나의 달(음)'을 전제로 만들어진 지구의 사주명리학은 이 행성에서는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고만다.



이처럼 명리학은 고대인들이 육안으로 관찰 가능한 범위 내에서 설정한 ‘로컬 법칙’에 불과하다. 지구라는 작은 행성, 그것도 동양이라는 국지적인 지역에서 관찰된 현상을 우주의 절대 법칙인 양 확대해석한 것이다. 은하계만 벗어나도, 아니 태양계 내의 다른 행성만 가도 작동하지 않는 철학을 ‘우주의 섭리’라고 부르는 것은 난센스다.


미신으로 전락한 학문의 자화상


현대의 명리학은 학문이라기보다 관습적인 미신에 가깝다. 그 체계가 시대의 변화와 과학적 발견을 수용하지 못한 채 수천 년 전의 낡은 텍스트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문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보편성’과 ‘재현성’이 결여되어 있다.

1966년을 적마가 아닌 백말로 부르며 수십 년을 보낸 언론과 술사들의 행태는, 이 분야가 얼마나 논리적 일관성이 없는지를 자인한 꼴이다. 만약 명리학이 정밀한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학문이었다면, 색깔 하나를 틀리는 기초적인 오류는 발생할 수도, 유지될 수도 없었다.

이 계통에 종사하는 이들의 자질 또한 도마 위에 오른다. 현대의 명술가들은 심리학이나 상담학의 기술을 빌려와 그럴듯한 조언을 건네지만, 그 뿌리가 되는 오행의 설정 자체가 천문학적 사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그들은 우주의 원리를 말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고대의 통계적 오류와 상업적 공포 마케팅의 유산을 팔고 있는 것에 다름없다.



적마(赤馬)의 귀환과 미신의 종말


1966년생들은 이제 곧 환갑을 지나 인생의 황혼기로 접어든다. 이제라도 그들이 알아야 할 사실은, 자신들이 ‘불길한 백말’이 아니라 ‘열정적인 붉은 말’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백말이든 붉은 말이든 그것이 개인의 인격과 성취를 결정짓는 절대적인 변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백말띠 논쟁’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검증되지 않은 권위에 눈과 귀를 맡길 때, 한 시대의 집단 지성이 얼마나 쉽게 마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무자격자들이 판을 치고, 불완전한 이론이 진리로 추앙받는 곳에서 운명의 주인은 ‘나’가 아닌 ‘술사의 혀’가 된다.

음양오행은 인류가 우주의 질서를 이해하려 노력했던 초기 단계의 흔적으로서 문화적 가치는 있을지언정, 현대인의 삶을 규정하는 나침반이 되기엔 너무나 낡고 파손되었다. 1966년생들이 겪은 이 거대한 명칭의 오류는 명리학이라는 거대 담론이 품고 있는 허구성을 드러내는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다.


깨어 있는 개인의 삶을 위하여


우리는 이제 낡은 역학의 감옥에서 걸어 나와야 한다. 우주는 오행(五行)보다 훨씬 광활하며, 인간의 운명은 60개의 갑자 안에 갇히기엔 너무나 복잡하고 경이롭다. 1966년생들이 백말띠라는 허상을 깨고 자신의 진짜 색깔인 적마(赤馬)를 마주하듯, 우리 사회 역시 명리학이라는 미신적 외피를 벗어던지고 과학적 사고와 합리적 이성을 바탕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더 이상 무자격자의 입담에 흔들리거나, 목성 너머의 진실을 보지 못하는 좁은 철학에 삶을 의탁해서는 안 된다.


올해 환갑이 된 1966년생, 당신들은 백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당신들의 운명은 애초에 말의 색깔 따위에 적혀 있지 않았다. 그것이 이 해프닝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마지막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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