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수레바퀴는 잔혹할 만큼 정직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원할 것 같았던 대제국들이 몰락의 길로 접어들 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공통된 서사가 존재했다. 그것은 외부의 강력한 침략 이전에 내부에서부터 시작된 균열, 즉 군주의 오판과 시스템의 경직화라는 비극적 교향곡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세계 질서의 격변은 과연 과거 대제국들이 걸어갔던 그 황혼의 길과 얼마나 닮아 있는가.
대제국의 몰락은 대개 한 명의 탁월하지 못한 지도자, 혹은 그가 속한 지배층의 치명적인 판단 미스에서 비롯된다. 로마 제국을 예로 들어보자. 로마의 쇠퇴는 단순히 게르만족의 침입 때문이 아니었다. 로마의 지도자들은 제국의 팽창이 한계에 다다랐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군비 확장을 멈추지 않았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 화폐 가치를 인위적으로 하락시키는 최악의 경제적 실책을 저질렀다. 이는 곧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시민들의 충성심 하락으로 이어졌으며, 결국 제국은 안에서부터 썩어 문드러졌다.
스페인 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대륙에서 유입된 막대한 은을 산업 자본으로 전환하는 대신, 가톨릭 수호라는 명분 아래 유럽 전역의 종교 전쟁에 쏟아부은 펠리페 2세의 고집은 제국의 파산을 불러왔다. 무적함대의 패배는 단순한 해전의 결과가 아니라, 변화하는 대양의 패러다임을 읽지 못한 지도부의 전략적 실명이 빚어낸 참사였다. 이처럼 제국의 황혼기에 나타나는 통치자의 특징은 '현실과의 괴리'다. 그들은 과거의 영광에 취해 변화하는 세계의 흐름을 거부하고, 고립된 아집 속에서 국가의 명운을 건 도박을 감행한다.
패권의 교체기는 필연적으로 대규모 유혈 충돌을 수반했다.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신흥 강국이 부상하고 기존 패권국이 이를 억제하려 할 때 발생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는 자신의 해상 패권을 과신한 나머지 무리한 원정을 감행하다 스파르타에 무릎을 꿇었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대영제국이 패권을 상실한 과정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은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지위를 독일과 미국에 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유지라는 구시대적 유산에 집착했다. 두 차례의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전쟁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패권을 미국에 넘겨주어야 했다.
기존 패권국이 전쟁에서 패배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전술적 무능보다 '전략적 유연성'의 부재에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세상에서 낡은 무기와 낡은 동맹 체제를 고수한다. 상대는 비대칭 전력과 새로운 외교적 수사로 무장하고 도전해 오는데, 거인은 여전히 과거의 전장에서 쉐도우 복싱을 하고 있는 격이다.
오늘날 세계 제1의 패권국 미국이 겪고 있는 진통은 과거 제국들의 몰락 징후와 소름 끼칠 정도로 흡사하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이후 가속화된 '미국 우선주의'는 제국의 도덕적 권위와 국제적 리더십을 스스로 파괴하는 자충수가 되었다. 패권은 단순히 군사력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동맹국들의 자발적인 동의와 신뢰라는 '소프트 파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동맹을 파트너가 아닌 수탈의 대상으로 여겼고, 국제 기구와 협약에서 탈퇴하며 스스로 고립의 길을 택했다.
이는 대영제국이 몰락 직전 보호무역으로 회귀하며 영연방 체제의 균열을 자초했던 모습과 닮아 있다. 또한 내부적으로 심화된 정치적 양극화와 인종 갈등은 로마 말기 원로원의 정쟁을 연상시킨다. 외부의 적을 상정하여 내부의 결속을 꾀하려는 시도는 빈번하지만, 정작 국가의 기초 체력인 사회적 통합과 경제적 공정성은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지도자의 한순간의 판단 미스가 정책으로 굳어지고, 이것이 수년간 반복되면서 미국이라는 거함은 서서히 침몰의 궤적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피터 헤그세스라는 함량미달의 사람을 국방부 장관에 임명할 때부터, 미국의 몰락은 예상된 것 이었다. 병권을 쥔 군대의 수장이 철없는 바보 일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우리는 지난 과거의 인류역사에서 지켜본 바 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군인은 미국의 델타포스나 네이비씰 데브그루가 아니다. 가장 무서운 군인은 소년병이다. 아이들에게 총 쥐어주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사춘기 철부지가 총을 들면 정말 무섭다. 전문적인 조직폭력배보다 중딩 양아치가 더 무서운 이유도 그러하다.
현재 미국이 페르시아만에서 이란과 벌이는 갈등은 미국의 패권적 역량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설령 미국이 이 전쟁에서 군사적으로 승리한다 한들, 그것은 상처뿐인 영광일 가능성이 높다. 과거 로마가 동방의 사산조 페르시아와 수백 년간 소모전을 벌이며 국력을 탕진했던 것처럼, 미국 역시 중동이라는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250살 먹은 중2병 걸린 양아치 불량배가 2500살 먹은 산전 수전 다 겪은 페르시아라는 노인을 이길 가능성은 별로 없다. 2500년이라는 제국의 역사는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 전쟁은 결국 ‘피로스의 승리 (Pyrrhic Victory)’ 일 뿐이다. 기원전 3세기, 에피루스의 왕 피로스가 로마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자신의 정예 병력 대부분을 잃자 ‘이런 승리를 한 번 더 했다가는 우리는 완전히 망할 것이다’라고 탄식하였는데, 미군 지상군의 이란 진격은 피로스 왕 보다도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 전쟁은 세계 패권을 놓고 벌이는 정면승부는 아니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는 미국의 '패권 상실'을 공식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란이 미국의 뒤를 이어 패권국이 될 가능성은 전무하다. 하지만 이란은 미국이 더 이상 세계의 경찰 노릇을 완벽히 수행할 수 없음을 만천하에 증명하는 '스포일러' 역할을 하고 있다. 거인이 작은 가시에 찔려 신음하는 모습은 다른 도전국들에게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
그렇다면 미국 이후의 세계는 누가 주도할 것인가? 역사는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단일 국가가 압도적 패권을 차지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중국은 경제와 기술력을 앞세워 미국의 자리를 위협하지만,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의 부재로 인해 세계의 진정한 리더로 인정받기엔 한계가 명확하다. 오히려 향후의 세계는 인도, 유럽연합, 그리고 부상하는 신흥 경제 블록들이 각자의 세력권을 형성하는 '다극화된 질서'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경제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가장 강력한 후보이나, 가치 체계의 보편성 부족과 인구 절벽이 걸림돌이다. 인도는 막대한 인구와 성장 잠재력을 지녔으나, 인프라와 내부 통합 문제가 변수다. 따라서 EU, 브릭스(BRICS) 등 지역별 블록이 각자의 세력권을 형성하는 '신중세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
과거 고대 제국들이 망할 때 일어났던 전쟁들은 영토의 경계와 국제 패권을 확정 짓는 전쟁이었다면, 현대의 이란-미국 갈등은 국제 질서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전쟁이다. 제국은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할 때 무너진다. 지도자의 오만한 판단과 변화를 거부하는 정책이 결합될 때, 몰락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이 된다.
미국이 현재의 실책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훗날 역사가들은 오늘날을 '아메리카 평화(Pax Americana)'가 종말을 고한 시점으로 기록할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그 교훈을 배우는 자만이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지금 미국에 필요한 것은 강력한 군사력이 아니라, 자신들이 세운 가치로 세상을 다시 설득할 수 있는 겸허한 지혜와 전략적 재설계다.
지역별 블록이 각자의 세력권을 형성하는 '신중세 시대'가 도래한다면, 이것은 한국에게는 위기가 아니라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돌기 마련이니, 두고 볼 일이다.
이번 이란-미국 전쟁이 흥미로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