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아이스크림

요리 명칭의 형용모순과 본질의 상실

by 한병철 Mikhail Khan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요리에 있어서 그 이름은 단순히 식재료의 나열을 넘어, 조리 방식과 역사적 맥락, 그리고 그 음식이 지향하는 미학적 종착지를 규정하는 설계도와 같다. 그러나 작금의 식탁 위에는 이름과 실체가 따로 노는, 이른바 '형용모순'의 요리들이 무분별하게 통용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취향의 분화가 아니라, 요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정명(正名)'의 가치가 훼손된 결과다.


trans.jpg 정통 인도식 소고기 카레


1. 존재할 수 없는 요리들 : 형용모순의 식탁


우리 주변에는 명칭 자체로 이미 논리적 파탄에 이른 요리들이 실재한다. 이들은 대중의 편의나 상업적 수사에 의해 본래의 의미를 거세당한 채 박제되었다.


정통 인도 소고기 카레 : 오래전부터 한국에서는 ‘정통 인도 소고기 카레’라는 것이 판매되었었다. 힌두교도가 대다수인 인도에서 소는 숭배의 대상이자 살생이 금기시되는 영물이다. 인도 요리의 정수를 뜻하는 '정통'과 '소고기'라는 단어는 결코 한 문장에 공존할 수 없다. 이는 마치 '채식주의자를 위한 삼겹살 파티'라는 말처럼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뼈 없는 감자탕 : 감자탕의 '감자'가 채소 감자가 아닌 돼지 척추 뼈의 특정 부위를 지칭한다는 설이 지배적일 만큼, 이 요리의 핵심은 뼈와 그 사이의 골막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육수다. 뼈를 제거한 감자탕은 이름의 근거를 스스로 부정하는 격이며, 엄밀히 말해 '우거지 고깃국'이라 명명함이 옳다.


무알코올 칵테일 : 칵테일(Cocktail)은 본래 기주(Base)가 되는 술에 다른 음료나 첨가물을 섞는 행위를 전제로 한다. 알코올이 배제된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칵테일이 아닌 복합 음료(Mocktail) 혹은 에이드로 분류되어야 한다. 주객이 전도된 명칭이다.


익힌 육회 볶음밥 : '회(膾)'는 가열하지 않은 날고기를 뜻한다. 열을 가해 단백질을 변성시킨 순간, 그것은 이미 회로서의 자격을 상실한다. '익힌 육회'라는 말은 '차가운 열기'처럼 논리적 성립이 불가능한 오류다.

images.jpg 육회 볶음밥


2. 물짜장, 그 형용모순의 극치


전북 지역의 별미로 알려진 '물짜장'은 요리 명칭이 어떻게 본질을 왜곡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짜장(炸醬)의 핵심은 '작(炸)'에 있다. 이는 '불에 튀기듯 볶는다'는 뜻이다. 즉, 춘장을 기름에 볶아 수분을 날리고 풍미를 극대화하는 과정이 짜장면의 정체성이다. 반면 물짜장은 춘장에 전분물을 풀어 걸쭉하고 투명한 형태를 띤다.


조리법상 이는 짜장이 아니라 '울면'이나 '유산슬'의 변주에 가깝다. 춘장을 볶지도 않았고, 짜장의 검은 색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요리에 '물'이라는 접두사를 붙여 짜장의 범주에 편입시킨 것은 명백한 오기(誤記)다. 이는 개념의 확장이 아니라 개념의 파괴다.


2026-04-13 09;55;50.PNG 물짜장


3. '찍먹' 탕수육 : 요리의 완결성을 부정하는 행위

오늘날 한국 사회를 양분하는 '부먹'과 '찍먹'의 논쟁은 본래 존재해서는 안 될 논쟁이다. 탕수육(糖醋肉)이라는 이름과 그 조리 원리를 들여다보면 '찍먹'은 요리의 미완성 상태를 뜻하기 때문이다.


탕수육의 이름에서 '탕(糖)'과 '초(醋)'는 설탕과 식초를 뜻하지만, 동시에 이들을 배합한 소스를 고기 튀김에 입히는 '유(溜)'기법을 전제로 한다. 진정한 탕수육은 갓 튀겨낸 고기와 소스를 센 불에서 단시간에 볶아내어, 튀김옷의 기공 사이로 소스가 스며들어 눅진함과 바삭함이 공존하는 '코팅' 상태를 만드는 요리다.

소스와 고기를 분리하여 서빙하는 '찍먹'은 배달 문화가 낳은 고육지책에 불과하다. 이동 시간 동안 튀김이 눅눅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이 어느덧 하나의 취향으로 격상된 것이다. 소스를 찍지 않은 고기 튀김은 그 자체로 훌륭한 안주인 '덴뿌라(고기튀김)'일 수는 있으나, 조리 과정을 마무리 짓지 않은 그것을 '탕수육'이라 부르는 것은 요리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조리학적 완성도를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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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正名)의 회복을 위하여


요리의 이름은 그 음식이 지녀야 할 마땅한 도리이자 약속이다. 물짜장은 짜장이 아니고, 소스를 찍어 먹는 고기 튀김은 엄밀히 말해 아직 탕수육이 아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이 모순된 명칭들은 요리의 본질을 흐리고 식문화의 깊이를 얕게 만든다.


물짜장이나 찍먹탕수육은 마치 ‘뜨거운 아이스크림’, ‘살아 있는 시체’, ‘소리없는 아우성’, ‘비건 함박스테이크’, ‘구운 생선회’처럼 형용모순에 빠진 잘못된 개념이다.

탕수육 찍먹은 탕수육이 아니라 '고기튀김'이다. 중국집에서 일명 '뎀뿌라'라고 불리는 음식이지, 탕수육이 될 수 없다. 물짜장도 마찬가지다. 물짜장이 아니라 울면으로 불러야 하며, 중국 현지 요리의 범주에서는 '로면'에 해당한다.


편의와 취향이라는 이름 아래 요리의 정의가 훼손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제는 식탁 위에서도 이름을 바로잡는 정명이 필요하다. 본질을 잃은 명칭은 결국 우리 미각의 기준마저 모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Gemini_Generated_Image_3vfv1f3vfv1f3vfv.png 펄펄 끓고 있는 뜨거운 아이스크림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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