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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Feb 15. 2024

[도시훈담] 꿈꾸는 엄마들을 위한 서시

오늘 아주 가슴 뛰는 인터뷰를 하고 왔다. 모든 인터뷰가 저마다의 교훈을 줬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주인공은 비영리 임팩트 투자사의 대표님이다. 대화 내용이 방대하고 밀도가 깊어 모든 내용을 여기에 공유할 수는 없다만 내게 경종을 울린 대목이 몇 가지 있었다.


첫번째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아내, 엄마로서의 역할 때문에 꿈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 대표님은 글로벌 아동 노동 착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30대 초반의 나이에 인턴의 지위로 아이들을 구조하는 활동을 했고, 30대 중반엔 자녀의 손을 잡고 유학길을 떠났다.


20대 중반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지만 꿈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단 한번도 내려놓지 않았다고 한다. 놀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결단을 내릴 때마다 배우자 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어요?" 돌아오는 대답은 너무 담담해 더욱 가슴에 파고들었다.


"제 꿈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이라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어요."


돌이켜보면 나는 내가 기혼자가 됐다는 이유로, 언젠가 어느 아이의 엄마가 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의 활동 범위를 제약해왔던 것 같다. 이런 나의 방정식이 어쩌면 '가족'이라는 테두리에 숨고자 하는 자기 합리화의 일환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깜보는 내가 하고 싶다고 말한 것을 하지말라고 단 한번도 말린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두번째 충격은 끊임없는 자기 확장이다. 이 대표님이 보유하고 있는 학위는 총 다섯개다. 학사 하나 석사 네개. 소위 말하는 학위 사냥꾼은 아니다. 모든 학위가 저마다의 필요를 갖고 있었고, 대표님은 그 학위를 통해서 원하는 바를 얻었다고 말했다. 고등학생때부터 꿈꿔온 일을 위해 4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엄청난 에너지와 행동력으로 하나씩 꾸려온 그의 삶이 경이로워 보였다.


무엇보다 '이정도 나이가 됐으면', '이 정도 학교를 나왔으면', '애 엄마니까' 따위의 사회가 붙인 단서 같은 걸 쉽게 건너뛰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그 추진력이 눈부셨다.


가정을 이루고 지키는 일도 무척 가치있는 일이지만 이 가치를 위해 일과 가정 중 양자택일로 귀결되는 흐름이 늘 아쉽게 느껴졌다. 슬기로운 타협점은 정녕 없는 것일까 고민하던 시기에 만난 대표님의 삶은 어두운 바다의 등대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다.


물론 꿈이라는게 사실 아주 거창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상기할 수 있는 노동 활동은 단순 생계수단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한 인간의 영혼에 흐르는 혈액같은 것이랄까. 내 안에도 조용히 키우고 있는 불씨가 몇개 있다. 기혼자라는 틀과 사회적인 단서를 방패로 그 불씨를 꺼뜨리는 일은 절대로 없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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