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손 Jun 03. 2022

불법주차에 대응하는 법

혼인신고의 기억

#1. 지난 4월, 우리 부부의 화두는 불법주차였다. 어느 이웃놈이 말도 없이 우리 자리에 주차한 일을 계기로 오뚜기 주차 금지 표지를 구매했고, 아주 큰 박스에 담겨 도착했다.


표지에 휴대폰 번호와 같이 쓸 이름은 '최귀팔'로 정했다. 그가 운영하는 사업체의 이름은 태백상사. 내 딴엔 아주 성질머리 고약한 술톤의 50대 중반 캐릭터를 구상해 가족 회의 끝에 최종 선정한 이름이다. 우리 본명을 쓰지 않기로 한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본명이 신실하고 유약한 개신교 부부의 인상을 풍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내 본명은 '은혜'다.)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공유했더니 '왜 다 정하고 말하냐, 김일두라는 이름이 더 세게 느껴지지 않냐'는 둥 자기 일마냥 과몰입했다. 솔직히 좀 감동받았다. 최귀팔 오뚜기 표지를 설치한 후 우리 주차 구역엔 파리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는다.


#2.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혼인신고를 했다. 서류를 채우던 깜보는 법적인 부부가 되는 것을 앞두고 기분이 어떻냐고 물었다. 내가 잠깐 생각에 빠진 동안 남편이 말을 이어갔다. "사기 결혼 당하는 걸까봐 걱정돼? 알고보니 내가 최귀팔이고?"


신고날 연차를 썼던 그는 재택 근무 중인 내 옆에서 사이즈를 교환해온 꼬까신을 닦고, 닦은 꼬까를 신고 패션쇼를 열다가 문에 설치한 봉에 잠깐 매달려 근력 운동을 하고, 내 이름을 개사한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하루를 보냈다. 그가 세번째쯤 봉에 매달렸을 때 사기 결혼일까봐 걱정되냐고 묻던 목소리가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구청 야간 연장 근무 시간을 활용해 진은혜는 최귀팔과 혼인 신고를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같이 사냐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