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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Jun 03. 2022

왜 같이 사냐건

그저 웃지요

남편은 아주 점잖고 선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왈가닥에 욕쟁이니까 내 완충재 역할을 해주리라 믿었다.


예식 날 눈물이 날 것 같으면 메이크업과 스냅 비용을 떠올리라는 이모님의 말을 상기하며 폭발 모먼트를 버텼는데, 그때마다 남편은 내 손을 꽉 잡으며 귓속말을 해왔다. '개똥', '미오똥', '미오 입냄새'. 덕분에 눈물샘이 뿌리까지 말랐다.


신혼 여행 후 시부모님 댁에 방문했을 때 그는 텍스트가 수두루 빽빽한 머그컵에 커피를 마셨다. 자기 인생 최고의 머그컵이라는 부연 설명과 함께. 

이상한 머그의 실물 공개


'어 컵에 그려진 사람 셰익스피어 아냐? 이 글자는 다 뭐야?',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욕설만 추린 머그야', '이런걸 어디서 구했어? 대체 언제?', '대학생 때 아마존에서 샀어.' 알고 보니 아직 판매 중인 제품이다. 제품명은 '셰익스피어식 모욕 머그'(Shakespearean Insults mug), 판매처는 '실직한 철학자들의 조합'(The Unemployed Philosophers Guild)이다.


허니문 휴가의 마지막 날 오후 6-7시경. 무기력하게 누워있다가 서로 붙잡고 괴성을 질렀다. 다시 보니 선비라서라기 보다는 다른 이유로 같이 살기로 결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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