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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Jun 03. 2022

칼국수 공짜로 먹는 법

어쩌다 색시

깜보가 사교적인 성향도 아니고 (대외적으로는) 말 수가 적은 편이라 소심한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2년 이상 지내보니, 그가 조용할 때는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말 할 가치가 없어서 굳이 안 하는 거였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만난 이해관계자나 집주인을 집요하게 쪼는 모습에 깜짝 놀란 적이 많다.


그런 그의 매력이 가장 돋보일 때는 단연 물건값을 깎을 때다. 고가의 결제를 하거나 할인의 여지가 있을 때 그는 서슴없이 딜을 제안한다. 자기가 부를 수 있는 최저가를 외친다. 나는 상인 앞에서 겸연쩍은 척 '아이 오빠도 참~' 이러면서 배시시 웃지만 가게를 나서자마자 '굿잡 맨 역시 내 남편 개짱'거린다.


물론 자중했으면 하는 순간도 있다. 함께 재택근무 한 날, 세수도 안 한 몰골로 모자만 눌러쓰고 그의 오랜 단골 칼국수집에 갔다. 깜보도 엉덩이가 다 늘어난 회색 추리닝을 입었다.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깜보는 사장님에게 '저 왔어요~! 제 아내에요!' 이러면서 마스크를 깠다.


사장님은 그를 반기다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색시 데리고 왔어?' 색시의 왼쪽 인중엔 왕여드름이 존재감을 발하고 있었다. 사장님이 부디 김치 양념으로 착각하길 간절히 빌었다. 감사하게도 사장님은 그날 음식 값을 받지 않으셨다. 예쁘게 잘 살라는 말과 함께.


식당을 나서면서 말했다. "오빠 우리 몰골보고 음식값 안 받으신거 아냐?", "(태연하게) 그럴 수도 있겠다" 쨌든 나는 보기와는 다르게 먼저 아는 척하고 친한 척하는 걸 정말 못하는데 남편 덕분에 정말 맛있는 음식을 공짜로 먹었다. 이런 기회만 주어진다면 인중 여드름 몇 번 더 깔 수 있어. 프라자 칼국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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