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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Mar 23. 2022

공장 웨딩홀에서 잊지 못할 결혼식 꾸리기

많은 하객을 울린 아빠와 친구의 축하

“따뜻하고 유쾌한게 딱 너다운 결혼식이었어.”


지난 3월 12일부로 내 인생에 ‘결혼 기념일’이 추가됐다. 초호화 베뉴나 유명 해외 브랜드 웨딩드레스 같은 임팩트는 없는, 외관상으로는 평범한 결혼식이었지만 내가 추구하는 바를 모두 충족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가족들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가족 행사 같은 결혼식 보다는 ‘동창회’나 ‘파티’ 분위기의 결혼식을 꿈꿔왔다. 또한 내게 결혼식은 신부가 최고로 예뻐야 하는 날이 아니라 신부가 최고로 예쁜 축하를 받는 날이 돼야했다. 


감사하게도 나는 그날 아버지와 오랜 친구로부터 아름다운 축하의 말을 선물 받았다. 덕분에 내 인생의 장면이 보다 풍부해졌다. 


3월 12일 많은 하객을 울렸던 아빠의 덕담과 친구의 축사를 공유한다. 



<아빠의 덕담>

우선 어려운 시국에 저희 혼사에 찾아 주신 양가 지인분께 감사인사부터 드립니다. 


인생의 선배요 경험으로 당부하고자 잠시 이자리에 섰습니다. 말 많으면 잔소리요 평범한 이야기해봐야 별 감흥 없습니다. 몇 마디 당부보다 두둑한 봉투가 더 설득력이 있다는 웃 선배의 조언도 있잖습니까.


짧게 말하고자 합니다. 내 딸 은혜야. 당당하고 괄괄한 성격이 니 매력이지만 OO에게는 양보하는 법도 배우거라. 둘째 사위 OO아. 가족이 된 걸 환영한다. 지난 33년 동안 내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은혜의 단짝 친구 같은 배우자가 되어다오. 


먼저 살아보니 부부의 행복 지름길은 신뢰와 건강이더군요. OO아, 은혜야. 거친 파도와 어둠이 곳곳에 도사린 이 세상에서 둘은 서로를 비춰주는 등대가 돼 주거라. 등대가 빛을 내지 못하면 뱃사람은 표류하고 만 단다. 그러니 부디 아프지마라. 


다시 한 번 어려운 시기에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하기 위해 이 자리를 밝혀 주셔서 감사합니다.


<20년지기 친구의 축사>

사랑하는 내 오랜 친구 덤보, 은혜에게.


어느덧 20년 지기가 된 우리는 서로의 가장 서툴고 못났던 순간들을 함께 했지. ㅂㅂ아파트 108동과 109동 사이 벤치에서, 부산대 앞보다 보잘 것 없어서 우릴 당황시켰던 이문동과 왕십리에서, 조그만 서로의 자취방에서 함께 울고 웃으면서. 너와 함께 있으면, 힘듦을 토로하다가도 늘 우리만 아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게 됐어. 기가 막힌 유머 감각을 지닌 유쾌한 너를 아내로 맞이하다니, OO씨의 아내 복, 내 남편만큼이나 넘치는 게 분명해 보인다.


은혜야. 부산 사투리로 애살 넘치고 똑부러지는 네가, 다정하고 따뜻한 OO씨를 만나 인생을 함께 하기로 했다고 했을 때. 나는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나더라. 우리는 서로의 가장 연약한 구석을 잘 알잖아. 그걸 꼭 안아주고 채워줄 수 있는 반쪽을 만난 것 같아서 너무 기쁘고 벅차더라고. OO씨와 함께 할 너의 앞날이 아름답고 평화로울 게 분명해서 안심이 된다. 둘이어서 곱절로 행복한 순간들을 마음껏 즐기며 살아, 친구야.


고등학생 때, 겨울이 되면 우리가 살던 아파트 단지에 꼬마전구들이 가득 달렸던 거 기억해? 야자를 마친 늦은 밤에 그 반짝이는 길을 너와 함께 걸으며 추운지도 모르고 한참 웃던 기억이 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추억들 중 하나야. 이제 앞으로 너는 인생이라는 여정을 네 인생 최고의 친구가 될 OO씨와 함께 하겠지. 은혜야, OO씨와 함께 가장 너 다운 걸음으로 쉼없이 웃으며 걸어 나가기를. 꼬마전구들처럼 반짝이는 무수한 행복과 사랑의 순간들이 두 사람의 앞날에 가득할 거야. 사랑하는 친구야, 결혼 축하해.


 너의 오랜 친구 XX로부터.


예식 날 다소 신난 내 모습


혹시나 친구로부터 결혼식 축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이가 있다면, 온갖 수식어와 미사여구 대신 둘의 애틋한 추억을 소환할 것을 당부하고 싶다. 나 역시 ‘꼬마전구’ 대목에서 울음이 터지고 말았으니까. (다행히 초고를 보고 운 덕에 예식날에는 울지 않았다)  


내 인생 최초의 친구인 아빠. 그리고 방송국 PD이자 누군가의 아내이기에 앞서 나의 친구였던 XX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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