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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닐 May 14. 2021

무작위의 나날 01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엉키고 꼬이다가 끊어지기를 반복하는 나는 글을 자주 쓰지 못한다. 어쩌면 다 다른 생각들이 드문드문 고개를 들었다 감추고 휘발해버리기 때문에? 가끔 판단해보려 한다. 성인형 ADHD의 증상들을 읽어보면서 내가 해당되지는 않는지. 너무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날아가버리는 내 머리 속에 말들은 내가 따라가잡지 못한다. 악 나는 이렇게 무거운 느낌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데 글은 자꾸만 그렇게 쓰인다. 이상하다. 내 행동양식이 스스로 이상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기억력이 나쁜건지 주의력이 결핍된 건지 분간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무언가를 온전히 기억해두거나 담아두는 일에 소질이 없다. 그저 순간 순간 새로운 감정이나 생각이 퍼뜩거리고. 그래서 나는 그런 나를 어떤 형태를 가진 틀에 담으려 하지 않고 나체의 기록을 해보려고 한다. 너무 무의식의 흐름이 지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면밀히 주시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간에 그런 일이 어려워 의지로 노력을 하는 것이다. 


이런식으로만 살아지는 나의 뇌에 무슨 일반적이지 않은 병리학적 문제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심이 드는 때가 언제냐면 특히나 매일매일 꿈을 꾸는 밤을 새삼스럽게 여길때나 내가 경험하는 현재의 시간이 이상할정도로 현실감이 들지 않을때. 자주 그런 경험을 한다. 내 주위를 둘러싼 모든 일들과 풍경들과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이 마치 다른 차원의 프레임 속에서 이어지는 픽셀들의 모임처럼 느껴지는 감상들. 아니 생각해보면 내가 살아가는 거의 모든 순간들이 그런식으로 다가온다. 왜 그런것일까? 옛날에도 궁금했다.



아 나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고싶다. 이렇게 별 소득도 없고 결국 없어지고 말 생각들을 숨 쉬는 것보다 자주 하는 일은 정말 피곤하고 성가시다. 나같은 사람에게 명상같은 수련이 필요한것인가. 그러면 조금 나아질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차크라 명상에 흥미가 생겨 생각날때 해보곤 했는데. 요즘은 일이 바쁘고 그럴 여유가 없어 하지 못했다.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남는 것은 고작 다섯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이다. 그 안에 밥도 해먹어야하고 필요한 것도 사야하고 약간의 청소도 해야하고 몸도 씻어야 하고 멀리 떨어진 친구와 수다도 떨어야한다. 그 동안에도 머릿속의 잡음들은 끊이지 않는다. 그것들은 심지어 내 눈이 감기고 잠이 드는 깊은 밤에도 이어져 잠을 자는 근 6시간 동안 줄기차게 생생하고 이상한 꿈을 꾸게 만든다. 

어제는 은수와 같은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도 저런 장면의 꿈을 꾸자고 얘기하고 잠들었는데 아침이 오기 전 마지막으로 꾼 꿈 속에서 정말 그것을 이루기도 했다. 내가 잘 모르는 낯선 곳의 알록달록하고 작은 건물들 사이의 좁은 뒷골목이었다. 옆에서 은수는 내 초록색 외투를 입고 있었고 피리를 꺼내 불어 첨밀밀의 멜로디를 연주했다. 


꿈을 매일같이 꾸는 것은 굉장히 피곤하다. 그렇지만 이런 꿈을 꾸는 날은 재밌기 때문에 꼭 나쁘지만은 않다.  


나는 지금 내가 사는 동네 중에서도 가장 멀리 걸어와 생일 선물로 받은 기프티콘을 쓰기 위해 스타벅스 매장 3층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서 글을 나르고있다. 사람들이 꽤 많은 이 층에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노트북이나 책으로 작업에 몰두중이다. 같은 시간과 장소를 경험하면서도 각자의 사물과 사고에만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의 풍경을 보다보면 우리가 살고있는 이러한 삶의 모습들이 본디 이런 모습이어야 하는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삶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져야 하는 걸까? 이런 물음을 가질때면 항상 어지럼증을 느낀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시간을 살아내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도 이상하다. 넘쳐나는 사람들과 태초의 시간부터 쌓인 역사들이 산재한데도 불구하고 세상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한 답을 모르고 그것에 대한 답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모든 것에 일일이 답을 내리고 사려고 하지만서도 절대적인 답은 결코 하나도 없다. 그런 세상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하고 그의 일부인 나도 마찬가지다. 


해답없고 방향없는 이 글은 이유나 목적 없이 발행된다. 아니다 목적이 있네. 탐구의 목적이 있다. 


내 방 한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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