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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닐 Jul 11. 2021

무작위의 나날 03

흩어지는 욕망에 대하여


나는 살고있다. 흠 그보다 나는 살아지고 있다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길 모양이 바뀌면 바뀌는대로 음표를 주워먹는 리듬게임처럼 나는 살아지고있다. 


생각 없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고 그렇기에 그 중 하나를 붙잡지 못하고 다 방생하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나에게 저절로 오는 것들에 곁을 허락한다. 나만 이렇게 사는걸까? 내가 보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끔가다 하나에 꽂혀서 오래도록 그것을 연마해 자기것으로 만드는 것 같다. 출근시간 회사 단지 앞 사거리에서 긴머리를 날리며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이름모를 그 남자. 그 남자도 언젠가 보드에 꽂혀서 매일같이 탔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너무나 사랑하게 된 나머지 출근길마다 보드를 타는 것이겠지. 또 누가 있을까. 처음부터 글을 좋아했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 좋아 글 쓰는 선태오빠도 그렇다. 글 쓰는게 좋고 이야기가 좋아 전공을 하고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고 글만 쓰는 사람. 너무 많은 고뇌나 의심을 하기 전에 일단 붓을 들어 꾸준히 작업을 해온 내 친구 예림이. 가벼운 작업이 하고싶어지면 가벼운 만화를 연재하면서 또 소같은 꾸준함을 내보이는 그 애. 그 외에도 사진이 좋아 카메라를 수집하듯이 모으고 포트폴리오 몇개를 쌓을 수 있을만큼 사진을 찍어온 다수의 주변 사람들. 

나에게는 도무지 없는 면이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렇다. 


좋아하는 것이 많고 욕망하는 것이 많다. 거의 모든것을 좋아하고 거의 모든것을 욕망한다. 그림을 그릴때는 더 멋지고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싶었고 그러다 길을 잃으면 답이 있고 정확한 일을 하고싶었다. 그래서 건축, 실내 디자인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은 전혀 반대의 것을 다시 꿈꾼다. 가령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거나 자체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거나 사진을 찍거나 내 취향의 음악같은 것을 모으고 꽤나 전문적으로 전시하는 사람이거나, 무엇이 됐든 내 것을 꾸준히 창작하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답없는 것들이 내 것같다. 내 옷 같고, 내가 해야하는 일 처럼 느껴진다. 답이 있는 일을 하고 싶고 직장인이 되고싶었던 그 시기는 나를 잠시 툭 치고간 방황의 시간이었던가 싶다. 하필 그것이 내게 주어진 것이 되었지만. 왜냐하면 이 중에 그게 젤 쉬웠다. 시험공부처럼, 뭘 준비해야하고 어필해야하는지 분명하니까. 그래 이런 내가 지금 직장인이 되버린것은 그것이 나에게 개중 가장 쉬운 일이었기 때문이지. 


벽엔 영화포스터를 붙여놓고 째지한 밴드음악을 종일 틀어놓고 책과 낙서장 필름카메라로 어질러진 나의 작은 방. 나는 이토록 다양한 예술적인 일들을 모두 사랑한다. 그것은 나의 운명같다. 알면서도 반대의 삶을 살고있는 나는 당장 어떤 액션을 취하는게 어렵다. 그것이 또 나의 숙명같다. 이렇다보면 나의 고뇌는 끝이 없을 수 밖에 없지. 바래본다. 나도 한가지를 고집되게 욕심 내어 솔찬히 갈고닦을 수 있기를. 



5월쯤 반포한강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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